기독교

하나님의 이름 29 - 36. 애쉬 오클라/엘 칸나 /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문성식 2021. 3. 17. 23:50


 

 

      하나님의 이름

 


29. 애쉬 오클라/엘 칸나 /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함에 반하는 것은 모조리 제거하시는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분은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완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다해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의 자비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높여지기를 열망하는 열정을 갖게 된다. 이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나와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고, 또한 주님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는 주님의 열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구하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3-24)

 

30. 하쉠 /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하쉠은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다.(앞의 ‘하’는 정관사다) 성경은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의 성전을 하나님의 이름이 임하시는 장소, 즉 백성들이 기도하고 기도가 상달되는 장소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빌립보서 2:9-10절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셨고, 그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 8:28-29)

 

31. 멜렉 / 하나님은 왕이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멜렉, 즉 왕이라고 믿었다.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지구상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왕이라고 믿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하늘 보좌의 상징이라고 이해했으며,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그 백성을 원수들에게서 구하시고 온 세계를 다스리는 왕권을 세우시리라고 기대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완전한 순종을 통해 하늘의 왕국을 세우신 왕의 왕으로 나타낸다. 지난 2천 년 동안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법을 받아들인 모든 나라와 족속과 사람과 언어 가운데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여호와 멜렉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온 세계를 감찰하시고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평화와 의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시 72:1-3)

 

32. 이쉬 / 하나님은 남편이시다.


‘이쉬’는 ‘남편’을 뜻하는 히브리 말로, 호세아 2:16절(전반부)에 나온다. 히브리 성경에서 ‘바알’이라는 말도 때로는 ‘남편’으로 해석되지만(또한 ‘주’, ‘소유자’, ‘주인’으로 해석됨) 보통은 가나안의 풍요의 신인 바알 신을 뜻한다.(호세아 1:16절 후반부에 나오는 ‘바알’은 ‘주인’의 의미) 놀랍게도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의 남편으로 묘사할 때 이 말이 사용되었다. 물론 우리가 바알에게 기도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이상적인 남편이신 하나님, 백성을 위해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나타낸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6-20)


33. 믹달오즈 / 하나님은 견고한 망대이시다.


하나님을 묘사하는 이름 중 마온 / 마츠쎄 / 마겐 / 메추다 / 믹달오즈 같은 이름들은 시편에서 다수 등장할 뿐 아니라 성경 다른 권에서도 여러 번 나온다. 피난처, 방패, 산성, 처소, 견고한 망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나를 감찰하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1-2)


34. 쇼페트 /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


공의는 궁극적으로 법과 규칙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에 기초한다. 온 땅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심판자’라는 말은 ‘왕’이라는 말에 비교되기도 했다. 쇼페트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완전한 공의를 요구하는 의로우신 하나님, 하지만 그 아들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악을 씻을 길을 제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시 94:15)


35. 미크웨 이스라엘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다. 


소망은 우리에게 큰 안정을 준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임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과 험난한 시간도 견디게 해 준다. 소망은 환경과 상관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준다. 성경적인 소망은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 인자하심, 능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온전히 참고 견딜 때에 소망이 역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소망이 자라난다. 이 세상의 축복을 소망하더라도,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이후에 올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뿐 아니라 당신의 기쁨을 우리와 영원히 나누고 싶어하신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미크웨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이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 17:7-8, 13)

    

36. 압 / 아바 / 파테르 /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름과 칭호가 풍성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한 분에게 집중한다. 사실상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과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선포함으로써 그들에게 충격을 주고 경악하게 하셨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아버지 되신 하나님에 대해 알려 주셨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담대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ㅔ 가르치셨던 기도를 할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