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문화】
제3절 불상
1.불상의 탄생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5백여 년이 지나서야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불상이 없었던 시기의 초기 불교미술을 일반적으로 불상이 없는 시대의
불교미술이라 하여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라 부른다.
불상이 없었던 시기에는 보리수·법륜·불족·탑 등이 예배 대상이었다.
고대 인도 중기에 해당하는 쿠샨왕조 시기, 즉 기원후 1세기경에
간다라와 마투라 지방에서 불상이 탄생했다.
이 두 지역의 당시 역사가 분명하지 않아 불상 제작 시기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즉 불상의 간다라설과 마투라설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다행히 요즘은 학계에서 간다라와 마투라 동시설로 견해가 일치되고 있다.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 제작된 불상은 그 모습이 전혀 달라
각각 독자적으로 불상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2.불상의 도상적(圖像的) 특징
불교미술에는 탑이나 불상을 조성하거나 불화를 봉안할 때
갖추어야 할 일정한 형식이 있다.
예를 들면 불상을 조성할 때 부처님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32상 80종호이다.
이러한 일정한 틀을 우리는 도상(圖像)이라 한다.
따라서 불교미술에서는 이 도상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상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부처님이 앉는 대좌(臺座), 부처님의 몸인 불신(佛身),
부처님의 몸을 장엄하는 광배(光背)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부처님 몸과 광배에 대해서만 32상 80종호에 규정되어 있고,
대좌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32상 80종호는 부처님이 갖춘 관상(觀相)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32상은 대상(大相)이라 하여 기본적인 특상(特相)을 말한다.
80종호(種好)는 소상(小相)이라 하여 대상을 전제로 한 세부의 특징으로
80수호(隨好)라고도 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권에서 이르기를
“대왕의 태자께는 실로 32상이 있습니다.
만일 집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요,
집을 떠나면 반드시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따라서 32상은 원래 대인(大人) 즉 대장부(大丈夫)의 특수한 상으로서,
세간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출세간에서는 여래(如來)가 갖추어야 하는 상이다.
이것은 불상을 조성하는 데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1) 불신(佛身)
32상 80종호가 모든 부처님의 형상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가진 부처님의 모습을 규정한 것을 조각이나 그림에 모두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2상 80종호의 규정이 불상을 만드는 기본 도상이 된 것은 사실이고,
이에 따라 조성된 불상은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비슷한 모습이 된 요체인 것이다.
① 머리카락
부처님의 머리 모양은 원래 비구들과 마찬가지로 머리털을 깎은 형태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불상이 조성되던 당시에는 다르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의 정상에 높은 육계(肉琦)가 표현되고,
머리카락은 나선형으로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게 했다.
이것은 원래 성자들이 긴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려 묶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② 백호(白毫)
부처님의 이마에 난 흰 털을 말한다.
원래는 ‘중도일승의 법(中道一乘의 法)’을 상징한다고 한다.
불상에는 수정 같은 보석을 끼우거나 도드라지게 새기기도 하며,
흰 털을 직접 그려넣기도 한다.
③ 귀
귀인(貴人)의 상호에서 긴 귀는 빠뜨릴 수 없는 특징이기 때문에
이것을 불상에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④ 손
초기 불상에는 손바닥에 바퀴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법의 전도를 뜻하는 이 바퀴무늬는
후대에 이르면서 점차 사실적인 손금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 불상은 이러한 특징을 받아들여 선운사 금동 지장보살상 등
몇몇 불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손금으로 표현되어 있다.
(2) 광배(光背)
32상 80종호의 규범에는 “한 길이나 되는 빛이 비친다.”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것을 형상으로 나타내면 광배가 된다.
부처님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장엄하게 드러내기 위해
빛의 발산을 표현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빛은 머리에만 비칠 수도 있고 전신에 모두 비칠 수도 있다.
즉 두광(頭光)과 전신광(全身光)이 그것이며,
이것을 형상화하면 머리광배와 전신광배가 된다.
(3) 대좌(臺座)
대좌는 앉는 자리를 말하며, 좌(座)또는 좌대(座臺)라고 한다.
불상은 불신, 광배, 대좌가 하나를 이루어야 완성되기 때문에
불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러나 불상의 규범인 32상 80종호에는 대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대좌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참선할 때 앉았던 풀방석이 유래가 된다.
이것이 부처님을 신격화함에 따라 금강보좌(金剛寶座)로 변하는데,
불상이 다양해지면서 보살상, 신장상 등이 등장하고, 대좌는 한층 더 다채롭게 변한다.
대좌의 종류는 《대지도론》에서 언급한 사자좌(獅子座)와 연화좌(蓮華座)가
보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손가짐[印契]
불상을 보고 무슨 부처님인가를 판단할 경우,
대개 몇 가지를 종합해서 정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손 모양이다.
사실 불상의 손을 보면 제각기 달라서 가히 천차만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여러 모양의 손 모양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특정한 모양을 나타낸 것과,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수인(手印)이라 부르고, 후자를 계인(契印)이라 한다.
수인과 계인을 합쳐서 ‘인계(印契)’라 부르고, 산스크리트로는
‘무드라(Mudra)’라고 부르기도 한다.
① 수인(手印)
수인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 5인에서부터 아미타부처님의 9품인,
비로자나부처님의 지권인 등 다양하다.
이들을 다시 모든 불상에 다 사용되는 통인(通印)과
한 불상에만 쓸 수 있는 별인(別印)으로 구별한다.
선정인과 여원인, 시무외인 등은 통인이며,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천지인 등은 석가모니불상의 별인이고,
아미타불상의 별인은 9품인이다.
비로자나불상은 지권인, 약사불상은 약기인, 미륵불상은 용화수인이 별인이다.
■ 천지인(天地印)
천지인은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 있는 수인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하늘 위와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唯我獨尊 一切皆苦我當安之).”라고 외쳤다.
이 때 아기부처님의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향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아기 부처님 목욕시키는 의식[灌浴式, 灌頂式] 때
볼 수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다.
■ 선정인(禪定印)
선정인은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의 수인이다.
왼손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어 놓은 형식이다.
부처님은 출가 후 여러 스승을 찾아 다니며 가르침을 구했다.
그 가운데는 오랜 기간에 걸친 고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뒤에 부처님은 고행을 그만두고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의 손 모양이 바로 선정인이다.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항마촉지인은 부처님이 마왕 파순의 항복을 받기 위해
자신의 수행을 지신(地神)에게 증명해보라고 말하면서 지은 수인이다.
선정인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이 날이 바로 12월 8일 성도절(成道節)로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다.
성도절은 부처님이 수많은 마왕의 군대를 항복받고 깨달은 날이며,
인간의 몸으로 신의 세계를 뛰어 넘어 대자유인의 시대를 연 날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불상 가운데도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부처님이 가장 많다.
석굴암 부처님의 손 모양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불전(佛傳) 미술에서는 이 항마의 장면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 설법인(說法印, 轉法輪印)
설법인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지은 수인이다.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경지가 너무 심오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주저했지만,
범천(梵天)의 간청으로 법을 설할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전에 함께 고행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들을 찾아 나섰다.
녹야원에 도착한 부처님은 다섯 사람의 수행자를 위해 처음 법을 설했는데,
이것을 일컬어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처음으로 돌렸다는 의미다.
현재 바라나시 녹야원에 있는 사르나트박물관의 초전법륜상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불상이 대표적이나,
그 예가 많지 않다.
■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
시무외여원인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합친 것으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상징하는 수인이다.
시무외인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다.
여원인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이 두 수인은 처음에는 달리 표현되었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시무외여원인으로 함께 표현되고 있다.
시무외여원인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삼국시대의 불상에 나타난다.
석가모니불상뿐만 아니라 다른 불상에도 표현된다.
따라서 어느 부처님이나 두루 취하는 수인이기 때문에
별인(別印)과 구별해서 통인(通印)이라고 한다.
■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과 구품인(九品印)
아미타정인은 선정인을 약간 달리한 것으로
두 손을 배쪽에 가까운 다리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의 엄지는 끝을 맞대고 다른 손가락은 펴서 서로 깍지 낀 모양이다.
부처님의 가장 큰 바람은 모든 중생을 자비로 구제하는 것인데,
중생들의 근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맞는 설법이 필요했다.
구품인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품[根機]과 생[往生]을 상배·중배·하배로 나누고,
다시 각각 상중하 3품으로 구분하는 구품왕생(九品往生)으로 이루어져 있다.
■ 지권인(智券印)
지권인은 밀교 가운데 태장계의 주존불인 마하비로자나부처님,
즉 대일여래가 짓는 손가짐이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각각의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으로 감추고
다른 손가락들로 감싸 주먹을 쥔다.
이런 두 손을 아래 위로 겹치고, 왼손의 검지는 세워서
오른손의 주먹 속으로 넣는 모양이다.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迷)와 오(悟)가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손 모양을 통해서 이러한 진리를 즉시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 약기인(藥器印)
약사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수인(手印)과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인 지물(持物)에 있다.
먼저 지물인 약기(藥器)에 대해 살펴보면,
우리나라 약사불상은 보주(寶珠) 형태와 약그릇[藥器] 형태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약사불상은 약그릇으로 보주형의 지물을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둥근 보주형으로 만든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보주의 의미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제10에 의하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해주고 빈궁에서 벗어나게 하며,
아울러 어떠한 독(毒)도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공덕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성질을 갖는 보주는 현세구복 신앙의 성격이 강한
관음보살, 지장보살, 약사불의 지물로 사용된다.
둘째로는 약호(藥壺)나 약합(藥盒)을 단순화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② 계인(契人)
계인은 손에 물건을 든 수인을 말한다.
약사부처님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상이 계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보살상, 신장상, 나한상들이 계인을 하고 있다.
수많은 보살상과 신장상과 나한상들은 각각 다른 지물을 들고 있기 때문에
종류는 그만큼 다양하다.
법구(法具), 무구(武具), 약기(藥器), 동물, 식물, 옥류(玉類), 건축물, 장신구,
별, 자연현상 등 모든 것이 그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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