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7. 선
3) 중국 선종사상의 전개
중국에 선(禪)이 전래된 것은 후한(後漢) 이래 선경(禪經)이 번역된 이후의 일이다.
안세고가 소승계의 선경인 『안반수의경』 및 『선행법상경』 등을 번역하였으며,
지루가참이 대승계의 선경인 『반주삼매경』과 『도행반야경』 등을 번역하였다.
특히 수식관을 주로 설하고 있는 『안반수의경』은
달마가 중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중국 선종이 흥기되기 이전에
초기 중국의 습선자(習禪者)들에게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중국 선종은 초기에 천태선과 달마선으로 출발하였으나
뒷날 달마계통의 선종으로 통합되었다.
보리달마에 의해 시작된 달마선은 『능가경』의 ‘불어심위종(佛語心爲宗)’의
‘불심제일(佛心第一)’로 그 사상적 근간을 삼았기 때문에
능가사(楞伽師) 혹은 불심종(佛心宗)이라고 부른다.
달마 능가선의 핵심사상으로는 ‘이입사행(二入四行)’설을 들 수 있는데,
즉 도에 들어가는 두 종류의 문(二入)에는
이치로 들어가는 ‘이입(理入)’과 실천행으로 들어가는 ‘행입(行入)’이 있다고 설한다.
이입(理入)이란
‘경전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종(宗 : 心, 禪)을 깨달아[藉敎悟宗]’,
궁극에는 범부와 성인이 동일한 참성품[眞性], 즉 불성을 깨달음을 말한다.
행입(行入)에는 네 가지의 실천행이 있는데,
보원행(報怨行 : 빚을 갚는 행), 수연행(隨緣行 : 인연에 따르는 행),
무소구행(無所求行 : 구하는 바가 없는 행), 칭법행(稱法行 : 법에 합일된 행)을 말한다.
그리고 달마의 독창적 선법으로 ‘안심법문(安心法門)’을 들고 있는데
‘이입(理入)이란 안심(安心)이며, 안심이란 벽관(壁觀)이다’라는 말에 기인한다.
벽관의 벽(壁)이란 ‘객진위망(客塵僞妄)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벽관이란 모든 번뇌와 거짓된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심불기(心不起)의 순일무잡(純一無雜)한 본래 마음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달마의 벽관을 위주로 한 선법은 혜가에게 전해지고,
혜가는 승찬에게 전하여 능가종을 이루게 된다.
승찬은 『신심명』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 진위는 불분명하다.
능가사들이 남천축일승종(南天竺一乘宗)의 입장에서
무득정관(無得正觀)의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을 때
황매(黃梅)의 쌍봉산(雙峰山)을 중심으로 달마선종의 4조 도신(道信)이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실천불교를 선양하여
그 문하에 500여명의 수선자들이 운집하였으니
이로부터 명실상부한 선종(禪宗) 교단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 도신의 제자 홍인(弘忍)이 쌍봉산의 동산으로 옮겨 수선도량을 개창하여
천여 명의 대중이 모여 수선하였는데
도신, 홍인의 선법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 부른다.
동산법문의 핵심사상은 도신의 ‘수일불이(守一不移)’사상이다.
수일불이란 “공정(空淨)의 눈을 가지고 주의하여 일체를 관하며,
낮과 밤의 구별 없이 오로지 모든 정력을 쏟아 항상 동요함이 없는 것”
이라고 설하고 있는데,
마음을 하나의 사물에 집중시켜 관(觀)하게 하는 구체적인 좌선 실천법이다.
홍인은 도신의 수일불이의 좌선법을 계승하여
‘수본진심(守本眞心)’의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의 본심이 바로 부처임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천경만론(千經萬論)이 각자 본래의 진심을 지키는 것(守本眞心)만 못하다”고 설하여
수본진심을 강조하고 있다.
도신, 홍인의 동산법문의 교단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좌선과 노동을 병행한 생산적 교단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는 훗날 백장청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홍인의 문하에는 뛰어난 십대제자가 있는데
그 중 북종의 신수와 남종의 혜능을 대표하여 ‘남능북수(南能北秀)’라 일컫는다.
낙양과 장안을 중심으로한 제도(帝都)불교를 이끈 북종의 신수는
양 수도의 법주[二京法主]요, 세 황제의 국사[三帝國師]로서
달마 이래의 안심법문을 계승하여 점수(漸修)에 의한 이념선(離念禪)을 선양하고 있다.
『육조단경』에 나타난 신수의 게송, 즉
“몸은 보리의 나무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莫使有塵埃]”는 가르침은
북종의 점수선적 가풍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반면 남종의 혜능은 남방(광동 소관)을 중심으로 한 서민불교를 지향하고 있는데,
무념(無念), 무상(無相) , 무주(無住)를 종지로 하는
식심견성(識心見性)의 돈오(頓悟)적 무념선(無念禪)을 주창하였다.
『단경』의 혜능의 게송, 즉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明鏡亦無臺],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니[佛性常淸淨],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本來無一物],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何處有塵埃]”
라는 구절은 남종의 돈오선적 가풍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당시 정통과 주류의 위치에 있던 북종 신수계를 향해
“사승은 방계요(師承是傍), 법문은 점수(法門是漸)”라고 공격하며
혜능을 달마선의 6조로 현창한 인물이 신회이다.
사실 돈오선은 혜능에 의해 주창되었지만
돈오선의 지위는 신회의 육조현창운동에 의해 확립된다.
혜능 사후 남종선은 신회의 하택종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다가
곧이어 마조의 홍주종과 석두의 석두종 계통으로 넘어가게 된다.
즉 달마, 혜가로부터 비롯되는 중국 선종은
초기의 능가종, 동산법문, 북종선과 남종선의 시대를 거쳐 9세기를 전후하여
강서(江西)의 마조 도일(馬祖道一)과 호남(湖南)의 석두 희천(石頭希遷) 및
그들 문하에서 배출된 뛰어난 선승들의 활약에 의해
조사선(祖師禪)의 생활종교로 발전하게 된다.
마조계 선종의 특징의 하나는
그 문하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수없이 많이 배출되고
다양하고 조직적인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당집』에는 친승제자가 88인, 현도(玄徒)가 천여 명,
『전등록』에는 입실제자가 139인으로 각기 한 지방의 종주로서
행화를 펼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선종이 이미 마조계 홍주종(洪州宗)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혜능으로부터 시작된 조사선의 종지는 마조계 홍주종에 이르러 만개하게 되는데,
그 주요 사상으로는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이 부처이다)’과
‘비심비불(非心非佛 :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
그리고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 평상심이 도이다)’ 등
조사선 특유의 일상성의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홍주종의 뛰어난 선승으로는
서당 지장, 백장 회해, 남전 보원, 대주 혜해 등 수없이 많다.
그 중 백장은 선종 최초로 『선원청규(禪苑淸規)』를 제정하여
이전의 율종(律宗)으로부터 선종교단을 독립시키고 있다.
사실 중국 선종의 비약적인 발전은
선승들이 집단적인 수행생활의 규범과 주체적인 교단의 조직 및 운영 등을 위해
체계적으로 성문화 된 『백장청규(百丈淸規)』의 제정과 더불어 정착되었다.
오늘날 『백장청규』의 전모는 알 수 없으나
선수행자를 위한 중국 특유의 선문규식(禪門規式)으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 대중이 생산노동에 참여해야 하는 보청(普請)의 법을 제정한 것이다.
유명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명구도
이로부터 나오게 된다.
백장의 뛰어난 제자로는 위산과 황벽을 들 수 있다.
위산(噴山)은 제자 앙산(仰山)과 더불어 선종 오가(五家) 중
가장 먼저 위앙종(噴仰宗)을 개창하고 있으며,
황벽은 ‘직하무심(直下無心)’의 무심법문을 강조하였으며,
그 문하에 유명한 임제가 배출되어 임제종(臨濟宗)이 탄생된다.
임제의 사상으로는 ‘무위진인(無位眞人 : 아무 가식이 없는 참사람)’,
‘평상무사(平常無事 : 할 일을 다 마친 일없는 경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곳에 따라 주체적인 삶을 살면,
어느 곳이나 진실의 세계)’ 등
수연자재한 대자유인으로서의 인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석두 문하에 조동종(曹洞宗)과 운문종(雲門宗) 및 법안종(法眼宗)이 개창되어
마조(馬祖) 문하의 위앙종(噴仰宗), 임제종(臨濟宗)과 더불어
선종 오가(五家)가 펼쳐지게 된다.
아울러 임제종에서 분파된 황룡종(黃龍宗)과 양기종(楊岐宗)을 더해
선종에서는 일반적으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부른다.
그리고 송대(宋代)에 이르러
조동종 계통의 굉지정각(宏智正覺)에 의해 묵조선(默照禪)이 제창되고,
임제종 양기파 계통의 대혜 종고(大慧宗豈)에 의해 간화선이 집대성 된다.
묵조선의 묵(默)은 묵묵히 좌선하는 것이며,
조(照)는 비추는 작용(照用)으로서 심성(心性)의 영묘한 깨달음의 작용을 말한다.
즉 묵묵히 좌선하는 그 가운데 영묘한 마음의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앉아있음의 좌선을 매우 중시한다.
간화선은 옛 조사들의 깨달음의 기연(機緣 : 因緣)인
공안(公案: 話頭)을 참구하는 선수행법이다.
공안이란 ‘관공서의 문서’라는 뜻으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절대성의 법칙을 말한다.
선문에서는 불조(佛祖)가 개시한 불법의 도리를 의미하며,
수선자(修禪者)들이 분별의식을 떨쳐버리고 조사들의 공안을 참구하여 깨달아야 할
문제의식(現成公案)으로 보고 있다.
즉 인식주관과 객관대상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분별심과 차별심을 떨쳐버리고
그 곳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두는 일체의 허구적이고 비실제적인 의식의 작용을 끊는
절대적인 참선의 방편이며,
이러한 화두 참구의 목적과 방법은
화두에 대해 간절한 의심을 일으켜
이 의심에 모든 의식작용을 집중시켜
바깥 경계로 의식이 지향하는 것을 끊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직관(直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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