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 -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 7. 선 - 1) 선(禪)의 기원

문성식 2016. 11. 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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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7. 선
        1) 선(禪)의 기원 선은 고대 인도의 명상법인 요가(yoga)에서 비롯되어 붓다의 명상과 정각(正覺)을 통하여 새로운 불교의 실천 수행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요가의 기원은 B. C 3000년 경 고대 인도의 원주민들에 의해 실시되었다. 따라서 요가 명상인 선(禪)은 약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가라는 말은 사유(思惟) 혹은 명상(冥想)이라는 의미인데 ‘명상을 통하여 오감(五感)을 제어하고 산란한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 즉 모든 감각기관을 움직이지 않고 집중(執中)하여 마음을 통일시켜 적정상태에 머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가는 삼매(三昧, sama-dhi), 선나(禪那, dhya-na)라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선나(禪那)로 사용되어 오다가 선(禪)이라는 말로 일반화되었으며, 대승불교에서는 선바라밀(禪波羅蜜)이라고 하였다.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에서 설하는 브라흐만교에서는 요가의 명상을 통하여 브라만과 아트만이 본래 하나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를 체득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붓다의 선정(禪定)은 제법의 본질인 연기(緣起)의 법을 깨닫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부처님은 출가하여 여러 수행자를 찾아 수행하는 가운데 수정주의(修定主義) 사상가를 찾아가 선정법을 닦았다. 이들의 주장은 요가의 선정을 통하여 정신집중을 이루어 일체의 정신적인 작용이 정지되어 적정(寂靜)의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고(苦)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처님은 이 선정법을 차례로 닦아 최고의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선정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선정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선정의 상태에 있을 때는 일체의 고에서 해탈된 경지를 얻을 수 있으나 선정에서 벗어나면 또 다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괴로움의 상태로 돌아오게 됨을 알고, 이러한 수정주의의 수행으로는 결코 완전하고 안온무고(安穩無苦)한 해탈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서 수정주의를 버렸다. 그리고 다시 고행주의(苦行主義) 수행자를 찾아가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한 혹독한 고행을 닦았다. 고행주의자들은 인간이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육체가 있기 때문이며 육체를 괴롭혀 최극한의 경지에 이르면 정신적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온갖 어려운 최고의 고행을 모두 경험하였으나 육체적인 고행으로는 정신적 해탈의 경지를 얻을 수 없다고 결론내리고 고행주의를 버렸다. 그리고 네란자라 강물에서 목욕하고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공양 받고 보리수나무 아래에 금강보좌를 만들어 깊은 선정에 들어갔다. 생로병사의 인간의 근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길을 깊이 명상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새벽하늘의 샛별을 보고 스스로의 힘으로 연기의 법을 깨달았다. 부처님은 선정의 실천구조를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ana)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통 ‘지관(止觀)’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 '지'는 사마타, 즉 삼매(三昧)로서 마음을 집중하여 산란심이 없는 경지를 말하고, '관'은 비파사나로서 만법의 근원인 진리[緣起]를 관찰하여 깨닫는 것을 말한다. 즉 '지'는 번뇌가 없는 정적(靜的)인 마음상태인 선정을 가리키는 말이며, '관'은 선정에서 일어나는 동적(動的)인 상태인 지혜를 나타내는 말이다. 부처님이 수정주의의 선정설(禪定說)을 버렸다는 것은 그것이 지의 상태에 머물러 버리는 선정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고(苦)에서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지(止)의 선정에서 더 나아가 연기의 법을 관찰하는 지혜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깨달음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지관쌍수(止觀雙修)의 선정설을 확립하였다. 원시불교의 주요한 선정설로는 사선(四禪), 팔등지(八等持), 구차제정(九次第定)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은 사선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선정이 가미되어 성립된 것으로 다음과 같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
          ① 사선(四禪) : 초선(初禪), 제이선(第二禪), 제삼선(第三禪), 제사선(第四禪). ② 팔등지(八等持) : 사선+사무색정(四無色定 :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③ 구차제정 : 팔등지+멸진정(滅盡定).
        부파불교의 대표적 선정설로는 사념처관(四念處觀)과 오정심관(五停心觀)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염처(念處)란 곧 정신통일을 말한다.
          사념처관(四念處觀) ① 신념처관(身念處觀) : 이 몸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함. ② 수념처관(受念處觀) : 고락(苦樂) 등 감각 작용이 모두 고(苦)라고 관함. ③ 심념처관(心念處觀) : 의식[識心]이 생멸하여 항상하지 않음을 관함. ④ 법념처관(法念處觀) : 제법이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무자성(無自性)임을 관함. 오정심관(五停心觀) ① 부정관(不淨觀) : 탐욕이 많은 사람들이 닦음. 육체의 부정한 모양을 관찰하게 하여 자신의 육체에 대한 탐욕심과 집착심을 끊게 만드는 선정의 수행. ② 자비관(慈悲觀) :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닦음. 일체의 중생이 과거생으로 보면 모두가 나의 부모 형제 아님이 없음을 관찰하여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분노와 화내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선정의 수행. ③ 인연관(因緣觀) : 전도(顚倒)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닦음. 일체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여 도리에 맞는 마음을 가지기 위한 선정의 수행. ④ 계분별관(界分別觀) : 모든 존재를 실체로 보는 사람들이 닦음. 일체의 현상하는 모든 존재는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관찰하여, 모든 존재를 바르게 보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선정의 수행. ⑤ 수식관(數息觀) : 마음이 산란한 사람들이 닦음. 자연계의 대기호흡을 관찰하고, 자신의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선정의 수행.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 선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경으로서는 대략『금강경』, 『화엄경』, 『유마경』, 『능가경』 등을 꼽을 수 있다. 반야의 공사상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설하고 있는데, 일체 모든 것은 연기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독립적인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무자성의 공을 체득하는 것이 대승선이다. 『금강경』에서는 ‘즉비(卽非)의 논리’로 공이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다. 즉 ‘불법은 불법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불법이다[佛法者 卽非佛法 是名佛法]’라고 즉비(卽非)의 부정의 논리를 전개하여 공을 설하고 있다. 그리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라고 하는 무주(無住)사상 역시 선사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화엄경』의 해인삼매를 통하여 설하고 있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논리는 중생이 바로 부처[衆生卽佛]라는 돈오선의 이론적 기초가 되고 있다. 『유마경』의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 ‘생사 즉 열반[生死卽涅槃]’이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은 선의 실천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능가경』에서는 자각성지(自覺聖智)의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나는 최정각(最正覺)을 이룬 그 날 밤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일자(一字)도 설하지 않았다”라는 ‘일자불설(一字不說)’설을 주장하여 ‘이심전심, 불립문자(以心傳心 不立文字)’의 선사상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