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1. 중관
1) 반야 공사상과 중관학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색이 그대로 공이고, 공이 그대로 색이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라고 번역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색, 수, 상, 행, 식은 5온(五蘊)이기에,
이 구절은 ‘5온이 그대로 공이고, 공이 그대로 5온이다’로 풀이된다.
그리고 5온이란 나와 나를 둘러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가리키기에
이 구절은 다시 ‘모든 것이 그대로 공이고, 공이 그대로 모든 것이다’로
바꿔 쓸 수 있다.
‘공’이란 말은 쑤냐(Su-nya)라는 범어를 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쑤냐는 ‘텅 비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것이 그대로 공이다’라는 말은
‘모든 것이 그대로 텅 비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반야심경』에서는 공의 경지에
5온도 없고 12처도 없으며 18계도 없고 12연기도 없으며
사성제도 없다고 설한다[空中 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5온이나 12처, 18계는 모두 세상만사에 대한 불교적 분류 방식들이다.
동일한 세상만사를 간략히 분류하면 5온이 되고,
더 세분하면 12처가 되며, 좀 더 세분하면 18계가 되는 것이다.
이런 5온, 12처, 18계설은
모두 부처님께서 무아의 진리를 설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교리들이었다.
또 12연기와 사성제는 깨달음과 관계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궁극적 경지에는 5온, 12처, 18계와 같은 세상만사는 물론이고,
12연기와 사성제와 같은 불교의 핵심교리조차 없다고 설하는 것이다.
겉보기에 이 세상도 부정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조차 부정하는 듯하다.
그러면 『반야심경』에서는
어째서 이렇게 세상만사가 텅 비어 있고
불교의 핵심교리들이 모두 없다고 부정하는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흔히 뗏목에 비유된다.
세찬 물살이 흐르는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과 같은 배가 필요하다.
강의 이쪽 언덕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윤회의 세계에 비유되고,
강의 저쪽 언덕은 열반의 세계에 비유된다.
윤회의 강둑[此岸]에서 열반의 강둑[彼岸]으로 건너가기 위해
우리는 뗏목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널 경우 뗏목에서 내린 후
저쪽 강둑으로 올라가야 강을 건너는 일이 끝나듯이,
불교 신행자의 경우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뗏목을 타고
피안의 열반에 도달한 후에는 그 가르침의 뗏목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저 쪽 강기슭에 도착했는데도 뗏목을 타고 있으면
아직 열반의 언덕에 완전히 도달한 것이 못 된다.
진정한 열반의 언덕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조차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궁극적 경지인 열반의 경지,
다시 말해 공의 경지에는 ‘5온도 없고, 12처도 없고 …
사성제도 없다’고 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분석에 의해 세상만사를 설명하는 불교 교학의 한 분야가
바로 중관학(中觀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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