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기분이 실제 병으로 진행
출산 여성의 50~85%는 '산후 우울기분'을 겪는다. 산후 우울기분은, 불안감·초조함·우울감 등이 출산 후 2~4일 째에 나타나서 5~7일째에 심해지다가 2주일쯤 뒤 저절로 사라지는 증상을 말한다.
산후 우울증은 이같은 산후 우울기분과 달리, 출산하고 1년이 지난 뒤에도 나타날 만큼 발병 시기가 다양하고, 증상이 심하다. 아이를 돌보지 못할 정도로 일상 생활이 어려운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지만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양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거나, 임신 기간 중 우울감을 경험했거나, 모유 수유를 갑자기 중단한 경우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현 교수는 "산후 우울기분을 겪는 산모의 20~25% 정도는 산후 우울증으로 진행된다"며 "산후 우울증이 생기면 아이를 해치는 등의 위험한 상상을 하므로, 산후 우울기분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후 우울증은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작은 일에 쉽게 동요한다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안 생긴다 ▷평소 좋아하던 일도 하기 싫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사소한 일에도 울적해져 눈물이 난다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안정되지 않는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초조하다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날 것 같다 등 10가지 항목 중 9개 이상에 해당되면 산후 우울증으로 볼 수 있다.
◇"산모와 아이, 둘만 있게 하면 안돼"
산후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6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배우자와 함께 가족치료를 받거나, 아이와 함께 모자치료를 받으면 산후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이런 치료를 받으면 양육 방법을 배우기 때문에 불안감이 없어지고, 아이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모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기분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홍진표 교수는 "가족은 육아 이외의 집안 일을 분담해서 산모가 육아 및 가사에 부담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산모와 아이가 오랜 시간 동안 단둘이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우울한 기분이 더 심해지거나, 충동적으로 아이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35세 이상의 고령 산모는 산후 우울증의 고위험군이므로, 산후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출산 전에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 출산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산부인과 주치의·전문가와 미리 상담을 할 필요가 있다.
◇심할 땐 입원치료 받아야
아이를 실제로 해치는 것은 극심한 산후 우울증의 한 종류인 '산후 정신병'일 때 생기는 일이다. 산후 정신병을 겪는 경우는 전체 산모의 1% 미만이지만, 환시·환청·과대망상·피해망상·섬망(과다행동) 등 비교적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 경우 입원을 해서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석현 교수는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 6주 정도는 약물을 계속 복용해야 한다"며 "이때 모유 수유는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