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 보조국사(普照國師)를 비롯하여 2세(世) 진각국사(眞覺國師), 3세(世) 청진국사(淸眞國師), 4세(世) 충경진명국사(沖鏡眞明國師), 5세(世) 회당자진국사(晦堂慈眞國師), 6세(世) 자정국사(慈精國師), 7세(世) 원감국사(圓鑑國師), 8세(世) 자각국사(慈覺國師), 9세(世) 담당화상(湛堂和尙), 10세(世) 혜감국사(慧鑑國師), 11세(世) 자원국사(慈圓國師), 12세(世) 혜각국사(慧覺國師), 13세(世) 각암국사(覺巖國師), 14세(世) 부암정혜국사(復菴淨慧國師), 15세(世) 홍진국사(弘眞國師), 16세(世) 고봉화상(高峯和尙) 등 송광사(松廣寺)를 중심으로 고려후기(高麗後期)에 활약하던 16인(人)의 고승진영(高僧眞影)으로서 송광사(松廣寺) 국사전(國師殿)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전신좌안(全身左顔) 7분면(分面)의 의자상(椅子像)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진영(眞影)을 중앙(中央)에 안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왼쪽엔 짝수세(世) 7인(人)이 중앙을 향(向)하는 우안(右顔)으로, 오른쪽엔 홀수세(世) 8인(人)이 역시 중앙을 향하여 좌안(左顔)으로 조성(造成)되어 배열되고 있다.

16점의 작품은 규격(規格)이나 제작수법(製作手法)이 거의 같아서 동일 시기에 동일 화사(畵師)에 의하여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화기(畵記)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진영(眞影)의 하단(下段)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나머지 진영에는 시주자(施主者)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는데 화기(畵記)에 의하면 건륭(乾隆)45년(年)(1780) 4월(月) 중성(重成)되어 영당(影堂)에 안치되었으며, 작자(作者)는 금어(金魚), 쾌윤(快玧), 복찬(福璨)인 것으로 되어 있다.

형식(形式)은 모두 전신(全身) 의자상(椅子像)으로 되어 있으나, 의자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한 것도 3세 청진(淸眞), 4세 진명(眞明), 8세 자각(慈覺), 9세 담당(湛堂), 10세 혜감(慧鑑), 12세 혜각(慧覺), 13세 각암(覺巖), 14세 정혜(淨慧), 15세 홍진(弘眞) 진영(眞影) 등 9점(點)에 이른다. 지물(持物)로는 불자(拂子)를 들었거나 보조국사(普照國師)처럼 주장자(柱杖子)를 짚었으며, 지물(持物)이 없는 경우는 선정인(禪定印) 또는 설법(說法)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색조(色調)는 대부분 암갈색의 어두운 배경에 녹색(綠色)을 주색조(主色調)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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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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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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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