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0.jpg 통도사(通度寺) 대광명전(大光明殿) 삼신불도(三身佛圖)는 1759년(年)(영조(英祖)35)에 양공(良工) 임한(任閑)과 편수(片手) 하윤(夏閏), 옥상(玉尙), 수성(守性), 보관(普寬), 성익(成益), 상심(尙心), 약붕(若朋), 평인(平仁), 태일(太一) 등(等)에 의해 조성(造成)되었다.

불교(佛敎)는 원래(元來) 그 절대적(絶對的)인 경지(境地)에서 보면 형상(形像)도 형체(形體)도 없는 것이어서 그를 표현(表現)할 수 없는 것이겠으나 부득이 그를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가상(假相)의 위에서 표현(表現)한다.

불교(佛敎)에서는 흔히 불(佛)을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의 삼신불(三身佛)로 나누고 있는데, 이는 초기 불교(佛敎)에서의 불신(佛身)은 하나의 의미(意味)를 갖고 있었으나 점차 교리(敎理)가 발달하면서 삼신설(三身說)이 보편화된 것이다.

삼신불도(三身佛圖)는 화엄만차라(華嚴曼茶羅)에서 분화(分化)된 것으로 그 근원(根源)은《화엄경(華嚴經)》의 석가성도(釋迦成道)의 상(相)에 두고 있다. 즉(卽) 인간(人間) 석가가 정각(正覺)을 이루고 눈뜬 세계(世界)는 한없는 세계가 한없이 깊은 광명(光明)에 의해 비추어지고 구명(究明)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를 연화엄세계(蓮華嚴世界)라 하고 근본불(根本佛)을 비노사나불(毘盧舍那佛)이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화엄경(華嚴經)》의 연화엄세계(蓮華嚴世界)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화엄변상도(華嚴變相圖)〉라고 하는데 이를 화엄만차라(華嚴曼茶羅)라 하는 것이다.

8448.jpg 삼신(三身)을 통불교(通佛敎)의 입장(立場)에서 보면, 법신(法身)이란 무상일실(無相一實)의 이체(理體)를 가르키는 것이기 때문에 법신(法身)은 무색무형(無色無形)으로써 설법(說法)함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보신(報身)이란 제선만행과보(諸善萬行果報)의 불신(佛身)이라 하는 의미(意味)로서 십지제대보살(十地諸大菩薩)의 능화(能化)의 불신(佛身)이며, 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이란 성문(聖聞) 연각(緣覺) 지전(地前)의 보살(菩薩)이나 인천(人天) 등에 대하여 설법(說法)하는 불신(佛身)인 것이다.

밀교(密敎) 경전(經典)인《대일경(大日經)》계(系)의 경전(經典)들에서는 법신불(法身佛)인 비노사나(毘盧舍那)를 대일여래(大日如來)라 하여 전법계(全法界)의 체성(體性)이라 하기에 이르렀고, 법성(法性)의 양면인 이(理)와 지(智)로 다시 이를 구분하여 이법신(理法身)을 태장계(胎藏界) 교주(敎主)로 하고 지법신(智法身)을 금강계(金剛界) 교주(敎主)로 하였다. 그래서 선무외(善無畏), 김강지(金剛智), 불공(不空) 등 밀교(密敎)의 대가(大家)들이 밀교(密敎)의 근본경전을 번역해 내는 8세기 이전에는 주로《범강경(梵綱經)》이나《구화엄경(舊華嚴經)》에서 설(說)하고 있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의 모습을 석가불(釋迦佛)의 본원불(本原佛)로 표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삼여래(三如來)를 봉안(奉安)할 때에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로 할 경우와 석가(釋迦), 미타(彌陀), 약사(藥師)의 경우가 있다.

이중 후자(後者)의 경우는 대표적(代表的)인 예(例)가 1744년작(年作) 직지사(直指寺) 대웅전(大雄殿) 삼존불(三尊佛) 후불정화(後佛幀畵)이다.

통도사(通度寺) 대광명전(大光明殿) 삼신불도(三身佛圖)는 전자의 삼여래(三如來)로 3폭(幅)의 정화(幀畵)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중앙(中央) 법신불(法身佛)(nimanakaya)인 비노사나불(毘盧舍那佛)(Vairocana)은 편조(遍照), 광명편조(光明遍照)라고 직역(直譯)하기도 하고 ‘불덕(佛德)이 우주에 편만(遍滿)한 것이 마치 태양광(太陽光)이 우주에 가득한 것과 같다 ’라고 의역(意譯)할 수도 있다.

8449.jpg 도설내용(圖說內容)을 보면, 커다란 파기형전신광배(파箕形全身光背)를 등지고 지권인(智拳印)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앉아 있다.

중앙여래좌상(中央如來坐像) 좌우(左右)에 묘혜(妙慧)의 상징인 문수(文殊)와 만행위덕(萬行威德)의 상징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입신(立身)의 형태(形態)로 하고 그외 나머지 좌우(左右) 육구(六軀)씩 보살보처(菩薩補處)를 이루고 있다.

이통현(李通玄)의《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에 의하면,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은 비노사나(毘盧舍那)와 함께 삼성(三聖)이라 하여 이들은 모두 원융무애(圓融無碍)로 승화(昇華)된다고 한다. 보현보살(普賢菩薩)은《화엄경(華嚴經)》의 제일회(第一會)와 제이회(第二會)의 설주보살(說主菩薩)로 등장한다.

이들 외의 보살(菩薩)들은 법혜(法慧)(제삼회(第三會)), 공덕림(功德林)(제사회(第四會)), 금강당(金剛幢)(제오회(第五會)), 금강장(金剛藏)(제육회(第六會)) 보살(菩薩) 등과 기타 항상 등장하는 보살중(菩薩衆)일 것이다. 이 보살중(菩薩衆)은 모두 중앙(中央) 법신불(法身佛)을 향(向)해 측면관(側面觀)을 이루고 연꽃가지와 지물(持物) 또는 합장(合掌) 등을 하고 있다.

보살중(菩薩衆) 위에는 십대제자상(十大弟子像)이 있고, 그 위 화면(畵面) 제일 상단(上段)에는 신중상(神衆像)이 본존(本尊)을 중심(中心)으로 외호(外護)하는 모습의 원형구도(圓形構圖)를 이루었다. 그러나 신중(神衆)을 표현(表現)할 때에는 사천왕(四天王)이나 팔부중(八部衆)은 여기에 배치(配置)하지 않는다. 이점 역시 통도사(通度寺) 대광명전(大光明殿) 삼신불도(三身佛圖)의 중앙법신불(中央法身佛)은 충실히 따르고 있다.

보신불(報身佛)(Sambhogakaya)인 노사나불(盧舍那佛)은 보살상(菩薩像)의 특징적(特徵的)인 보관(寶冠)을 쓰고 화려(華麗)한 의습표현(衣褶表現)과 원형(圓形)의 두(頭) ·신광(身光)을 하고 있으며 양손을 어깨위로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다.

장식적(裝飾的)인 영락(瓔珞)과 천의(天衣)의 의습(衣褶)처리나 무늬는 고려불화(高麗佛畵)의 전통(傳統)을 잇고 있는 느낌이다. 형식적(形式的)인 면(面)에서, 노사나불(盧舍那佛)의 모습은 1770년작(年作) 송광사(松廣寺)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에서 그 잔영(殘影)을 잇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사나불(盧舍那佛)은 법신불(法身佛)의 협시불(脇侍佛)인 석가불(釋迦佛)과 괘를 같이하여 배치(配置)되어 있다.

하단(下段) 전면(前面)에는 사천왕(四天王)이 배치(配置)되어 있는데, 그 중 슬파(瑟琶)를 든 지국천왕(持國天王)(dhrata■astra)과 보검(寶劍)을 든 증장천왕(增長天王)(Vir■dhaka) 2구(軀)만이 배치(配置)되어 있어 화신불정(化身佛幀)과 짝을 이루어 구성(構成)되어 있다.

상단(上段)에는 타방불(他方佛), 성문중(聲聞衆)이 묘사(描寫)되어 있고, 상단(上段) 후미(後尾)쪽으로 외호중(外護衆)인 신중(神衆) 2구(軀)가 좌우(左右)로 각각(各各) 배치(配置)되어 있다.

이 2점은 법신불(法身佛)의 표현(表現)과는 달리 매우 화려(華麗)한데, 이는 보신불(報身佛)인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섬세우미(纖細優美)하게 표현(表現)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천왕상(四天王像)에 있어서도 매우 유창(流暢)하게 묘사(描寫)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슬파(瑟琶)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안면(顔面)의 묘사(描寫)는 희화적(戱畵的)으로 표현(表現)하고 있어 화면(畵面)에서 생동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율동감(律動感)마저 주고 있다.

화신불(化身佛)(dharmak■ya)인 석가여래불(釋迦如來佛)은 노사나불(盧舍那佛)과 같이 법신불(法身佛)을 보처(補處)하고 있다.

석가여래불(釋迦如來佛)은 법신불(法身佛)의 법의(法衣)가 통견(通肩)으로 표현(表現)된 것과는 달리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표현(表現)되어 있고, 강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結)하고 앉아 있다. 전체적(全體的)인 구도(構圖)는 보신불(報身佛)의 형식(形式)을 하고 있으나 도설내용(圖說內容)에서 차이를 두고 있다. 즉(卽) 하단(下段) 전면(前面)에 배치(配置)된 사천왕(四天王)의 경우 보신불(報身佛)의 사천왕(四天王) 2구(軀)와 짝을 이루어 광목천왕(廣目天王)(Vir■p■ska)과 다문천왕(多聞天王)(Vai■ravana)을 배치(配置)하고 있다.

특히 화신불(化身佛)의 구도(構圖)는 당시(當時) 수많이 조성(造成)되었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의 축소(縮小)라 할 것이다.

이 불화(佛畵)는 1744년작(年作) 직지사(直指寺) 대웅전(大雄殿) 삼신불(三身佛)이나 1804년작(年作)(토벽채색(土壁彩色)) 선운사(禪雲寺) 대웅전장(大雄殿藏) 삼신불(三身佛)이 석가(釋迦), 미타(彌陀), 약사(藥師)를 표현(表現)한 것과는 달리 비노사나(毘盧舍那), 노사나(盧舍那), 석가(釋迦)를 표현(表現)하고 있는 드문 작례(作例)이기도 하다. 더구나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조성(造成)된 삼신불도(三身佛圖)의 작례(作例)가 드문 현재(現在), 통도사(通度寺) 대광명전(大光明殿) 삼신불도(三身佛圖)는 미술사적(美術史的)으로나 불교사학적(佛敎史學的)인 측면(側面)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