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104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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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통도사성보박물관 |
소재지 | |
지정일 | 1990.09.20 |
수량/면적 | 8폭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통도사 |
관리자 | 통도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통도사(通度寺)의 영산전(靈山殿) 팔상도(八相圖)는 화원(畵員) 포관(抱冠), 유성(有誠), 정관(定寬), 지언(志言), 단오(丹悟), 수민(守旻), 지열(志悅), 오수(悟守), 정순(定諄), 두명(斗明), 상오(尙悟), 광신(廣信), 후문(厚文) 등(等)에 의해 1775년(年)(영조(英祖)51)에 조성(造成)되었다.
팔상도(八相圖)란 불전도(佛傳圖)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석가(釋迦)의 일생(一生)을 팔상(八相)으로 나누어 도설(圖說)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팔상(八相)을 십이상(十二相)으로 하거나 세부 묘사법(描寫法)의 차이는 있으나 가장 보편적이고 불화(佛畵)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라 하겠다. 석가(釋迦)의 팔상(八相)이란 제일(第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제이(第二)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제삼(第三)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제사(第四)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제오(第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제육(第六)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제칠(第七)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제팔(第八)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가리키는데 이들 팔상(八相)에 대하여 명칭상으로는 경론(經論)에 다소 상위(相違)가 있으나 대체로 강도솔(降兜率), 탁태(託胎), 강탄(降誕), 출가(出家), 항마(降魔), 성도(成道), 설법(說法), 열반(涅槃)의 내용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팔상(八相)에 의하면 석가(釋迦)의 일생(一生)은 천(天), 인(人), 불(佛)의 삼상(三相)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중 석가(釋迦)의 불상(佛相)은 성도상(成道相), 설법상(說法相), 열반상(涅槃相)인 것이다. 보통 석가(釋迦)의 설법(說法) 내용(內容)을 경전상(經典上)으로《화엄경(華嚴經)》,《아함경(阿含經)》,《방등경(方等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열반경(涅槃經)》으로 그 순서를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경전내용(經典內容)을 팔상(八相)의 위에서 보면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열반경(涅槃經)은 불상(佛相)으로서 석가생애상(釋迦生涯上)에서 현현(顯現)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卽) 화엄경(華嚴經)은 석가(釋迦) 성도(成道)의 상(相)을, 법화경(法華經)은 전법륜(轉法輪)(설법(說法))의 상(相)을, 열반경(涅槃經)은 입열반(入涅槃)의 상(相)을 각각(各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초기(初期)의 인도(印度)에서는 사상설(四相說)이 있으며, S■rn■tha의 조각(彫刻)에는 탄생(誕生), 성도(成道), 전법륜(轉法輪), 열반(涅槃)의 사상(四相)이 표현(表現)되어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월인석보(月印釋譜)》에 판각인화(板刻印畵)로 된 팔상도(八相圖)가 들어 있고, 그 서문(序文)에 ‘세간(世間)에서 부처의 도리와 출처시종(出處始終)을 알고자 하여도 불과 팔상(八相)에 지나지 않는다 ’고 서술되어 있어서 당시(當時) 팔상도(八相圖)에 대한 인식(認識)을 짐작케 한다.
제일(第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과거(過去) 현재인과경(現在因果經)》에 보이는 바와 같이 석가(釋迦)가 이미 보살육도(菩薩六度)의 행(行)을 마치고 도솔천상(兜率天上)에서 염부주하생(閻浮洲下生)의 시기가 왔음을 천인중(天人衆)에 고(告)하여 도솔천궁(兜率天宮)으로부터 백상(白象)을 타고 내강(來降), 마야부인(摩耶夫人)의 몸에 입태(入胎)하는 내용(內容)이 공통(共通) 화제(畵題)로 되어 있다. 통도사(通度寺)의 팔상도(八相圖)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서는 맨 위쪽 월륜(月輪)안에 백상(白像)을 타고 내강(來降)하는 보살상(菩薩像)과 이를 에워싸고 기악(伎樂)을 연주하며 시종(侍從)하는 모습의 천중상(天衆像)이 묘사(描寫)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단(下段) 좌측(左側)에 마야부인(摩耶夫人)이 여러 시녀(侍女)를 거느리고 잠든 모습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몽(胎夢)을 묘사(描寫)한 것이다. 중간 우측(右側) 의자에 마주 앉아 있는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모습이 있고, 하단(下段) 오른쪽에는 2구(軀)의 신장(神將)이 성(城)을 외호(外護)하고 있다. 건물(建物)이나 수지(樹枝)의 표현기법(表現技法)은 1728년작(年作) 쌍계사(雙谿寺) 팔상도(八相圖)에서와 같이 간략한 표현이 아니라 세밀(細密)하고 색채(色彩)가 풍부한 표현(表現)이다.
제이(第二), 비람강생상(毘籃降生相) : 비람강생상(毘籃降生相)은 마야(摩耶)(M■y■) 부인이 룸비니(Lumbini) 공원에 출유(出遊)하여 그곳에서 태자탄생(太子誕生)의 모습을 묘사(描寫)한 그림이다. 즉(卽) 마야부인(摩耶夫人) 룸비니원출유(藍毗尼園出遊), 불탄우협생(佛誕右脇生), 석범봉접(釋梵奉接), 칠보거수사자후(七步擧手獅子吼), 용왕관불(龍王灌佛), 아사타불인점상(阿私陀佛人占相) 등의 제상(諸相)이 한 도폭(圖幅)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상단부(上段部)에 불탄생상(佛誕生相)이 묘사(描寫)되어 있는데, 마야부 인(摩耶夫人)이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로부터 출생(出生)하시는 불(佛)의 모습과 강탄(降誕) 후(後) 칠보(七步)를 옮겨,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라 하시는 모습이 묘사(描寫)되어 있다. 상단(上段) 좌측(左側)에는 용왕관불상(龍王灌佛相)으로 운상(雲上)의 구룡왕(九龍王)이 청정수(淸淨水)를 토(吐)하여 탄생불(誕生佛)의 몸을 씻겨 주는 모습이 묘사(描寫)되어 있다. 하단(下段) 우측(右側)에는 아사타(阿私陀)(Asita)선인점상(仙人占相)으로 아사타선인(阿私陀仙人)이 정반왕(淨飯王)의 궁(宮)에 들어가서 태자(太子)의 상(相)을 보고 정각(正覺)을 이루어 붓다(佛陀)가 되리라 예언하는 모습이 표현(表現)되어 있다.
제삼(第三),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태자(太子)가 사문출유시(四門出遊時)에 동문(東門)에서는 노인(老人)을 만나고 남문(南門)에서는 병자(病者)를, 서문(西門)에서는 사자(死者)를, 북문(北門)에서는 비구(比丘)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描寫)한 것이다. 상우(上右)부터 동(東), 하우(下右)는 남(南), 하좌(下左)는 서(西), 상좌(上左)는 북(北)으로, 특히 북문(北門)에서 출가사문(出家沙門)을 만나 그림이 종결(終結)되는 것이다. 즉(卽) 인세(人世)의 무상(無常)과 출가(出家)한 사문(沙門)의 수도생활(修道生活)의 고귀함을 깨달으시는 장면인 것이다. 중앙쌍송(中央雙松)의 엉켜있는 모습과 중앙(中央)을 가로지른 전각(殿閣)의 묘사구도(描寫構圖) 는 4장면(場面)을 자연스럽게 분할하여 구분(區分)시켜 주고 있다. 1725년작(年作) 송광사(松廣寺) 팔상도(八相圖)의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나 1728년작(年作) 쌍계사(雙谿寺) 팔상도(八相圖)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에서와 같이 빈 공간(空間)이 거의 없고, 빽빽하게 인물(人物)을 묘사(描寫)하고 있는 점은 역동적(力動的)인 표현(表現)과 함께 생동감(生動感)을 준다.
제사(第四), 유성출가상(瑜城出家相) : 유성출가상(瑜城出家相)은 궁(宮)을 버리고 출가(出家)하는 도상(圖像)이다. 상단(上段)에 태자(太子)가 차닉(車匿)(Chandaka)과 함께 백마건척(白馬건陟)(Kantaka)을 타고 성(城)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묘사(描寫)되어 있다. 이때 제천(諸天), 야차신(夜叉神) 등이 와서 사족(四足)을 받들고 신중(神衆)들이 수종(隨從)하는 모습이 서운(瑞雲)의 활달한 필치(筆致)와 함께 표현(表現)되어 있다. 하단(下段) 가비라성(迦毗羅城)(Kapila-Vastu) 내(內)에는 탁자에 기대어, 혹은 비파(琵琶)를 안고 잠들어 있는 야수다라(耶輸陀羅)(Yasodhar■)와 채녀(채女)들이 묘사(描寫)되어 있고, 맨 아래 우측(右側)에는 성문(城門)에 기대어 잠든 위사(衛士)들이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차닉(車匿)과 건척(건陟)이 돌아와서 정반왕(淨飯王)에게 태자(太子)의 출가(出家)를 고(告)하여 모두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 표현(表現)되어 있다. 화면(畵面)을 가로지른 지그재그식 성벽(城壁)은 석가가 출성(出城)하는 장면(場面)을 효과적(效果的)으로 구분해주는 구도(構圖)로 사용되고 있다.
제오(第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설산수도상은 출성(出城) 후 십년(十年) 수행(修行)하는 도상(圖像)이다. 하단(下段)에 태자(太子)가 말에서 내려 자신(自身)의 머리카락을 칼로 자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옆에 천신(天神)이 태자(太子)의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다. 이 천신(天神)은 제석천(帝釋天)인 것이다. 삭발(削髮)하고 있는 태자(太子) 앞에 꿇어 앉아 있는 차닉(車匿)과 비탄(悲歎)하여 울부짖는 듯이 표현(表現)된 건척(건陟)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오른쪽 아래에는 태자(太子)와 고별(告別)하고 성(城)으로 돌아가는 차닉(車匿)과 건척(건陟)이 묘사(描寫)되어 있다. 상단(上段)에는 고행림(苦行林)에서 수행(修行)을 마친 다음 니연선하(尼連禪河)(Nairanjan■)에 목욕하고 난타파라(難陀波羅)(Nandabala)의 유미(乳미) 공양을 받으시는 모습이 표현(表現)되어 있다. 배경(背景)이 되는 산악(山嶽)의 묘사(描寫)가 청록산수(靑綠山水)를 연상케하며 괴탈감을 갖고 있는 암석(岩石)과 토파(土坡)의 필치(筆致)가 돋보인다. 특히 상단(上段) 맨 뒷쪽에 이 그림을 전체적(全體的)으로 설명(說明)해 주는 설산(雪山)이 구름에 감싸인 채로 백색(白色)처리의 효과(效果)가 잘 되어 있다.
제육(第六),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중앙(中央) 우측(右側) 보리수(菩提樹) 아래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석가(釋迦) 앞에는 각종(各種)의 무기를 든 마군(魔軍)과 칼을 든 마왕 파순(波旬) (P■piy■s)의 모습이, 또 한편에는 마군(魔軍) 퇴거(退去)의 모습이 율동적(律動的)이고 생기(生氣)있게 묘사(描寫)되어 있다. 이러한 극적인 표현(表現)은 석가(釋迦)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48일을 정진(精進)하여 지금까지 그를 유혹하던 온갖 마중(魔衆)을 항복받고 명성(名星)을 보시고 오도(悟道)하시는 모습을 가장 회화적(繪畵的)으로 묘사(描寫)한 것이다. 하단(下段)에는 마군(魔軍)이 퇴거(退去)하는 모습과 상단(上段) 좌측(左側)에는 항마상(降魔相)의 불(佛) 두광(頭光)에 표현된 과거칠불(過去七佛)이 있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팔상도(八相圖) 중 가장 표현적(表現的)이고, 또한 석가(釋迦)가 인간(人間)에서 불(佛)이 되는 획기적인 순간으로, 즉(卽) 불교(佛敎)의 시발점을 여기에 둘 수 있기 때문에 그 도설(圖說)의 중요성은 대단한 것이다.
제칠(第七),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이는 불(佛) 성도후(成道後) 처음으로 녹야원(鹿野苑)에서 설법(說法)하게 되는 모습을 묘사(描寫)한 그림이다. 상단(上段)에는 수미단상(須彌壇上)에 보관(寶冠)을 쓰고 천의(天衣), 화만(華만), 영락(瓔珞)을 걸친 설법(說法)하는 불(佛)과 그 주위에는 협시보살(脇侍菩薩)과 보살중(菩薩衆), 천중(天衆), 외호신중(外護神衆)들의 모습이 묘사(描寫)되어 있으며 불(佛) 위쪽에는 제불(諸佛)의 내영상(來迎像)이 있다. 하단(下段)에는 보탑(寶塔)과 그 위에 합장(合掌)의 불입상(佛立像), 좌우측(左右側)에는 십방세계(十方世界)의 불(佛), 신중(神衆), 성중(聖衆)이 묘사(描寫)되어 있다.
제팔(第八),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불(佛)이 구시나가라(拘戶那竭羅)(Kusirnagara) 쌍수림(雙樹林) 아래서 열반(涅槃)에 드시는 모습이다. 석가(釋迦)의 열반(涅槃)은 비록 육신(肉身)은 없어졌으나 그가 남긴 법(法)은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광경이다. 하단(下段) 불(佛)이 열반(涅槃)에 드신 모습은 의와우협(倚臥右脇) 저지(著地)하여 우주(右주)로써 머리를 괸 자세로 표현되어 있으며 주위에는 비탄하고 있는 비구상(比丘像), 합장(合掌)한 보살상(菩薩像), 외호(外護)하고 있는 신중상(神衆像)이 묘사(描寫)되어 있다. 상단(上段)에는 불(佛)의 입멸(入滅) 후(後) 다비(茶毗)하는 장면이 묘사(描寫)되어 있고, 중앙(中央)에는 불입멸(佛入滅) 후 다비시(茶毗時)에 시자(侍者)를 거느리고 내강(來降)한 마야부인(魔耶夫人)의 모습이 표현(表現)되어 있다.
이상의 통도사 팔상도(八相圖)는 도솔천궁래의상(兜率天宮來儀相)으로부터 열반(涅槃)에 드시기까지를 8폭의 도상(圖像)으로 표현(表現)한 것이다. 이 방대한 문전(文傳), 즉(卽) 팔상도(八相圖)로 압축 묘사(描寫)한 것은 회화상(繪畵上) 다양(多樣)한 소재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그 압축 표현력(表現力)에 있어서도 많은 상상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意味)에서 통도사(通度寺) 영산전(靈山殿) 팔상도(八相圖)는 미술사적(美術史的)인 가치(價値)는 물론, 불교사적(佛敎史的)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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