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本書)는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명신(名臣)이며 학자였던 학봉(鶴峰) 김성일선생(金誠一先生)의 종가(宗家)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典籍) 중 보물 905호로 일괄(一括) 지정된 것이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중종(中宗) 33, 1538∼선조(宣祖) 26, 1593)은 자(字)는 사순(士純), 호(號)가 학봉(鶴峰). 본관(本貫)은 의성(義城), 진사(進士) 진(璡)의 4자(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1564년(명종 1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568년(선조 1)에 문과(文科)에 급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서 사관(史官)을 겸하였으며, 이(吏) ·병조(兵曹)의 낭관(郎官)을 거쳐 1576년(선조 9)에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이듬해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에 다녀왔다. 이어 대간(臺諫) ·홍문관(弘文館)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1579년(선조 12)에 함경도순무어사(咸鏡道巡撫御史)로 나가 6진(鎭) 등 국경지대(國境地帶)까지 두루 살펴보았고, 1583년(선조 16)에는 다시 황해도순무어사(黃海道巡撫御史)로 나가 민정(民情)을 살피고 돌아왔다. 1590년(선조 23)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에 가서 이듬해 2월에 귀국복명(歸國復命)했다. 이때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이 일본이 곧 침입(侵入)할 것이라고 복명(復命)하자,
학봉은 일본이 꼭 침입하지 않으리라고 단정(斷定)하지는 않으면서 민심(民心)의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복명(復命)하였다. 그 뒤 대사성(大司成)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전일 일본사행(日本使行) 때의 귀국복명(歸國復命)이 문제가 되어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가 되고 이어 임란(壬亂)이 발발하자, 왕이 처벌을 명했으나 유성룡(柳成龍)의 변호로 풀려나 초유사(招諭使)에 임명(任命)되어 함양(咸陽) ·죽산(竹山) 등지에서 격문(檄文)을 띄워 곽재우(郭再祐)의 도움을 받아 의병(義兵)을 일으켜 경상도 일역(一域)에서 전공(戰功)을 많이 세웠다. 이어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가 되어 관하(管下) 각지(各地)를 순행(巡行)하며 진심갈력(盡心竭力)하여 독전(督戰)하다가 이듬해 진주공관(晋州公館)에서 순직(殉職)하였다.
학봉은 16세기에 활약한 학자이며, 애국자(愛國者)였다. 학문적으로는 퇴계(退溪)의 학통을 계승하여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李栽)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退溪學派)의 정맥(正脈)으로 전한다. 정치적(政治的)으로는 간관(諫官)으로 있을 적에 직언(直言)으로 유명하여 전상호(殿上虎)란 별명을 얻었으며, 소답(疏답)을 통하여 정책(政策)의 개선, 민생고(民生苦)의 해결(解決)을 위한 의견을 많이 진달하였다. 그리고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日本)에 가서는 오만(傲慢) ·무례(無禮)한 일인(日人)들의 태도에 대해 예법(禮法)에 맞게 처신함으로써 사신의 체통을 잃지 않았다. 단, 귀국복명(歸國復命)으로 인한 약간의 오해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는 일인(日人)의 침구(侵寇)에 동요된 민심을 진정시키려는 애국충정(愛國衷情)의 발로(發露)였던 것이다. 학봉(鶴峰) 이후(以後) 일본(日本)에 가는 사신(使臣)들은 제반예의(諸般禮儀)에 있어 학봉(鶴峰)이 행(行)한 전례(前例)를 표준으로 삼아왔으며, 일본 또한 우리 사신(使臣)에 대한 예의(禮儀)가 전과는 달라지게 한 외교가(外交家)이기도 하다. 또 임란(壬亂) 때에는 초유사(招諭使)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로서 구국(救國)에 앞장 서서 진주성(晋州城)을 비롯한 경상도일역(慶尙道一域)을 방수(防守)하는 데 큰 공훈(功勳)을 세우고 끝내는 과로(過勞)로 순국(殉國)한 충신(忠臣)이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고 문충(文忠)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안동(安東)의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祭享)되고, 역시 안동의 호계서원(虎溪書院), 나주(羅州)의 대곡서원(大谷書院), 영양(英陽)의 영산서원(英山書院), 진주(晋州)의 경림서원(慶林書院) 외 많은 서원(書院)에 종향(從享)되었다. 저서로는 시문(詩文)을 모은 학봉집(鶴峰集) 외에 해원차록(海援차錄), 조천록(朝天錄), 북정록(北征錄), 상례고증(喪禮考證) 등이 전한다.
1.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 2. 사기(史記) 3. 증수부주자치통감절요속편(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 김한철(金漢啓)(1414∼1461) 소장인(所藏人)이 있음. 표지배접(表紙褙接)은 남을진(南乙珍)등의 성명(姓名)이 보이는 문서(文書)를 사용하였음. 4. 증수부주자치통감절요속편(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俗編) 5. 당유선생집(唐柳先生集) 6.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전집(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前集) 7.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34권 표지제첨지인쇄(表紙題簽紙印刷) 8.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9. 전한서(前漢書) 10.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 김수동(金壽童)(1457∼1512)의 내사본(內賜本) 11. 주문공교창여선생집(朱文公校昌黎先生集) 12. 오조명신신행록(전집)(五朝名臣信行錄(前集)) 13. 삼조명신신행록(후집)(三朝名臣信行錄(後集)) 14. 독서속록(讀書續錄) 15.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김성일(金誠一)의 내사본(內賜本) 16. 주자대전(朱子大全): 학봉수택본(鶴峰手澤本) 17. 회제선생집(晦齊先生集): 학봉(鶴峰)의 내사본(內賜本)인 듯 18. 봉선잡의(奉先雜儀): 학봉(鶴峰)의 내사본(內賜本) 19.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학봉(鶴峰)의 내사본(內賜本) 20.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학봉(鶴峰)의 내사본(內賜本) 21.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 22. 학봉호당양제(鶴峰湖堂양製): 학봉(鶴峰)이 사가독서시(賜暇讀書時) 제술(製述) 23. 문충공서고(文忠公書稿): 학봉(鶴峰)이 아들 집(潗)과 부인(夫人)에게 보낸 서간(書簡) 및 시고(詩稿). 24. 문충공수간(文忠公手柬): 학봉(鶴峰)이 자(子) 집(潗)에게 준 서간(書簡) 25. 학봉수적첩(鶴峰手蹟帖): 학봉수적(鶴峰手蹟)에 임회(林檜)·서소(徐消)·김시양(金時讓)·황여일(黃汝一)의 자필서발(自筆序跋) 26. 진주수성절차(晋州守城節次): 학봉(鶴峰)이 경상감사시(慶尙監司時) 진주수성승첩장초고(晋州守城勝捷狀初槁) 27. 영모첩(永慕帖): 학봉(鶴峰)에서부터 그의 11세손(世孫) 김흥락(金興洛)까지 필적(筆蹟) 28. 학계첩(學契帖): 학봉(鶴峰)의 부친 (父親) 김진(金璡)이 결성(結成)한 학계첩 29. 선현유묵(先賢遺墨): 일인 귤강광(橘康廣)과 이덕형(李德馨)·박성(朴惺)의 서간(書簡) 30. 선현유묵(先賢遺墨): 이로(李魯)·유영순(柳永詢)의 필적(筆蹟) 31. 선현유묵(先賢遺墨): 임회(林檜)·이식(李植) 등 6인 32.학봉시장(鶴峰諡狀): 민점(閔點)이 찬(撰)한 학봉(鶴峰) 시장(諡狀). 33. 퇴계사전초(退溪史傳草): 퇴계(退溪)의 사전(史傳)으로 학봉(鶴峰)의 자필(自筆) 초고본(草稿本). 34. 조천일기(朝天日記): 학봉(鶴峰)이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北京)에 갔을 때의 일기(日記) 35. 기묘일기부북정일기(己卯日記附北征日記): 학봉(鶴峰)의 귀향시(歸鄕時) 일기(日記)와 함경도(咸鏡道) 순무어사시(巡撫御史時) 일기(日記) 36. 학봉선생해사록: 학봉(鶴峰)의 일본사행시(日本使行時) 소작(所作)과 최립·박이장(朴而章)의 시(詩). 37. 상례고증(喪禮考證): 학봉자필(鶴峰自筆)의 상례고증(喪禮考證) 초고본(草稿本) 38. 학봉일기초(경연일기)(鶴峰日記草(經筵日記)): 학봉(鶴峰)이 사관(史官)으로 재직시(在職時) 초(草)한 경연일기(經筵日記) 39. 용사사적(龍蛇事蹟): 이로(李魯)가 임난시(任亂時) 학봉(鶴峰)의 구국활동상(救國活動相)을 적은 사료(史料) 40. 용사사적(문수지)(龍蛇事蹟(文殊志)): 이로(李魯)가 임난시(任亂時) 학봉(鶴峰)의 구국활동전말(救國活動顚末)을 적은 사료(史料) 41. 석문정사중수일기(石門精舍重修日記): 학봉(鶴峰)의 정자(亭子) 석문정사(石門精舍)의 중수사실(重修事實)을 적은 김성월(金成鉞)의 일기(日記) 42. 원규(院規): 학봉(鶴峰)을 제향(祭享)하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의 원규(院規) 43. 사마회첩(司馬會帖): 선조(宣祖) 34년(1601) 신축사마시동방입격자(辛丑司馬試同榜入格者)의 계회첩도(契會帖圖) 44. 만력사십삼년이월일(萬曆四十三年二月日) 향록초안(鄕錄草案): 광해(光海) 7년(1615)의 안동향반(安東鄕班)의 명부(名簿) 161인 45. 정해유월일(丁亥六月日) 향록(鄕錄): 인조(仁祖) 25년(1647)의 안동향반(安東鄕班)의 명부(名簿) 324인 46. 천하총도(天下摠圖): 안음(安陰)·산음(山陰) 등의 지명(地名)이 적힌 지도(地圖)임. 47. 예기대문(禮記大文): 구독점(句讀點), 사성표시(四聲表示) 등이 있고, 동파자체(東坡字體)의 각본(刻本) 48. 찬주부음자치통감외기증의(纂註附音資治通鑑外紀增義): 희구본 49. 대명율강해(大明律講解): 가정십오년(嘉靖十五年)(1536) 유월(六月)에 수교(受敎)하여 경주부(慶州府)에서 인출(印出) 50. 음주전문춘추괄례시말좌전 구독직해(音註全文春秋括例始末左傳) 구독직해(句讀直解) 51.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선조(宣祖)4년 학봉(鶴峰)의 내사본(內賜本)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동시(同時) 인출(印出)된 듯 52. 당태종이위공문대직해(唐太宗李衛公問對直解) 53. 상채선생어록(上蔡先生語錄): 송(宋)의 학자(學者) 사량좌(謝良佐)의 어록(語錄) 54. 상례고증(喪禮考證): 학봉(鶴峰) 초고(草稿)인 상례고증(喪禮考證)을 정서(淨書)한 것임 55. 선현유묵(先賢遺墨): 김효원(金孝元), 이숭길(李崇吉) 등 3인의 시고(詩稿)와 간찰합(簡札合) 4편 56. 선배유묵부금호필적(先輩遺墨附錦湖筆蹟): 곽기수(郭期壽), 최위(崔暐), 조정(趙靖) 등 4인의 시고(詩稿)와 부(附)에는 이재(李栽), 이상정(李象靖)의 필적(筆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