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7.jpg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높이 3.4m.

 

거대한 바위를 몸체 뒤의 광배(光背)로 삼고 자연 암반을 대좌(臺座)로 삼은 마애불인데, 매우 도드라지게 조각하여 부피감이 풍부하다. 3m가 넘는 이 불상은 현재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큰 암석 자체를 조각해서 광배(光背)와 한 돌로 조성하였다.

양감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어색한 느낌마저 드는 이 불상은 두 무릎을 밑변으로 하여 정삼각형을 그리면 그 꼭지가 턱에 미치므로, 비교적 안정감 있는 단아한 자세이다.

 

옷은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옷주름 선은 평행으로 밀집한 옷자락 무늬를 선각(線刻)하여 형식화되어 있다. 두 팔도 불신(佛身)과 붙어서, 허리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아 사실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먼 도식적인 불상으로 진행되어 있다. 수인(手印)도 특이한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왼다리 위에 두고, 오른손은 손등을 보이면서 가슴 아래에 붙여 유독 섬세하게 처리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특징적인 수인은 9세기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창 양평동 석조여래입상과 고려불상 양식을 뚜렷이 반영하는 경기도 포초골의 석조여래좌상 등 시대가 내려가는 석조불상들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 수인 연구에도 하나의 밑받침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불상이다.

 

광배는 거신광(擧身光)이며, 얕은 부조로 간략히 새긴 문양 등을 도안화하였다. 그 바깥부분〔外緣部〕은 불꽃무늬〔火焰文〕를 새기고, 그 안에 연주문(連珠文)으로 둘러싸인 둥근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아래위로 배치하였다.

두광의 연주문대(連珠文帶) 안에는 두 줄의 선이 둘러지고, 그 중심부에는 11엽(葉)의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 : 홑잎의 연꽃잎무늬)을 새겼다. 이 광배에 나타난 연주문은 별로 예가 없는 특징적인 것이다. 앉은 자세는 결가부좌로 대좌는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3m가 넘는 이 불상의 현재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데, 풍만하고 단아한 얼굴에 작은 눈·코·입이 알맞게 표출된 것이라든가, 귀가 짧고 양감이 풍부한 신체 등은 9세기 후기의 석불 양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풍만한 신체에 비하여 각 부의 세부 표현이 너무 평평하며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형식화되어 사실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옷주름 선이 선각으로 나타난 점 등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조각에서 더 진전된 것이다. 손 모양도 흔하지 않은 것으로서 이 불상의 확실한 명칭을 밝히기는 어렵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석불군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좀더 진전된 고려시대 불상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