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제401호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종 목 | 보물 제4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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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
분 류 |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불상 |
수량/면적 | 1구 |
지 정 일 | 1964.09.03 |
소 재 지 |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
시 대 | 통일신라 |
소 유 자 | 이건희 |
관 리 자 | 호암미술관 |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고 몸체만 남아있는 전체 높이 32.3㎝의 불상으로 민간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전래한 장소나 소장하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일제시대 일본인으로부터 입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전체에 도금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곳곳에 푸른 녹이 덮여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나 높이는 낮다. 얼굴은 네모나고 눈은 옆으로 길게 올라가 있으며, 코와 입은 작고 볼에 두툼하게 살이 올라 있다. 풍만하면서도 평면적인 얼굴 모습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양식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넓은 양 어깨에 걸친 옷은 길게 내려서 U자형의 옷깃을 보이면서 몸 전체를 감싸고 있다. 가슴에는 속에 입은 옷과 띠매듭을 나타내었는데, 이것도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허리 아래로 내려 역시 손바닥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머리와 몸체의 아래 위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주조 기술에 따르는 것으로 역시 통일신라의 금동불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으로 작달막하고 살찐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옷의 표현에 있어서는 생동감과 부피감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조각 표현은 평면적으로 굳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옷주름도 형식화가 되어가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으로 보인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고 불신(佛身)뿐인 여래입상(如來立像)으로, 민간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금동불상(金銅佛像)으로서는 가장 크고 우수한 작품의 하나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肉계)가 있으나 낮은 편이며, 나발(螺髮)의 표시도 분명하지 않다. 상호(相好)는 네모난 모양으로 매우 풍만하면서도 평면적인데, 이것은 시대가 내려오면서 신라불(新羅佛)로서의 변모를 보이는 것이다. 삼도(三道)의 표시가 있으나 목은 짧고, 오른손은 들어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였으며 왼손은 내려서 여원인(與願印)을 하였다. 넓은 두 어깨에 걸친 통견의(通肩衣)는 길게 내려서 U자형 옷깃을 보이면서 전신(全身)을 덮고 흘러내려 두 발 이외의 몸의 굴곡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내의와 군의(裙衣)의 매듭을 나타내었는데, 이것도 신라 여래 입상의 두 양식중의 하나다. 옷주름은 몸의 두 다리와 양측을 따라서 조각되었는데, 도식적(圖式的)이며 선각(線刻)으로 세부(細部)를 표시하였다. 후면에는 머리 및 상하(上下)에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주조 기술에 따르는 것으로 신라 금동불(金銅佛)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리고 전체에 도금 흔적이 남아 있으며 곳곳에 푸른 녹이 덮여 있다. 전래한 장소나 그 후의 소장(所藏)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일제(日帝) 때 일인(日人)으로부터 입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작품 크기에 비하여 그 솜씨는 특이한 점이 적고, 상호(相好)의 평면성(平面性) 및 의문(衣文)의 형식화 등의 점에서 연대(年代)는 8세기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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