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보물 제398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문성식 2015. 8. 17. 23:11

보물 제398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종    목 보물  제398호
명     칭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활자본/ 금속활자본
수량/면적 1책
지 정 일 1963.09.02
소 재 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대한교과서(주)
관 리 자 대한교과서(주)

월인천강지곡

월인천강지곡

월인천강지곡
설명

조선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에게 명하여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월인천강지곡』이다.

체재의 특색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첫째, 한글은 큰 활자를 쓰고 이에 해당되는 한자는 작은 활자를 썼다. 둘째, 한글의 자체는『용비어천가』와 같으나 원점을 쓰지 않았다. 셋째,『훈민언해』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받침 없는 한자음에 ‘ㅇ’의 종성을 붙이지 않았다.

최초의 한글활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로, 조선 전기의 언어와 어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소헌왕후< 昭憲王后 >가 죽자 세종< 世宗 >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수양대군< 首陽大君 >에게 명하여 석가< 釋迦 >의 일대기< 一代記 >인《석보상절< 釋譜詳節 >》을 편찬하게 하고, 세종< 世宗 >29년에 이를 완성하여 올린 것을 보고 세종< 世宗 >이 각 항목을 따라서 우리말로 찬가< 讚歌 >를 짓고 이름을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이라 하였다.《석보상절< 釋譜詳節 >》과《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은 거의 한꺼번에 작성되어 두 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따로 인간< 印刊 >된 듯하다. 그러나《석보상절< 釋譜詳節>》은 완전하지는 못하나 여러 권의 영본< 零本 >이 발견되었는데《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은 다만 그 낙장< 落張 >된 것이 다행히 국립도서관< 國立圖書館 > 소장< 所藏 >《석보상절< 釋譜詳節 >》책갈피 속에「월인천강지곡상< 月印千江之曲上 >」「월인천강지곡중< 月印千江之曲中 >」이라고 찍힌 별지< 別紙 >가 끼어 있어서, 일찌기 책이 상중하< 上中下 > 3권으로 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했을 뿐이었는데, 다행히 1960년 소유자에 의하여 이 책이 천하에 알려졌고, 1962년에는 통문관<通 文館 >의 이겸로< 李謙魯 > 씨< 氏 >가 실물대< 實物大 >로 영인< 影印 > 발행< 發行 >하였다.

권상< 卷上 >에 실린 것은 기일< 基日 >에서 기일백구십사< 期日百九十四 >까지가 들어 있다. 체재의 특색을 항목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글을 큰 활자로 쓰고 이에 해당하는 한자는 작은 활자를 써서 한글이 주< 主 >요 한자가 종< 從 >임을 나타냈다.

2. 한글의 자체< 字體 >는《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와 같으나《훈민정음< 訓民正音 >》에서 제정한 ■■■■등에는 원점< 圓點 >을 쓰지 않았다.

3.《훈민언해< 訓民諺解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받침없는 한자음< 漢字音 >에 ㅇ의 종성< 終聲 >을 붙이지 않았다.

이상은 이 책이 한글의 표기방법, 또는 한자를 다루는 방법을 지적한 것인데, 이외에도 최초의 한글 활자본< 活字本 >인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조선< 朝鮮 > 초기의 언어와 어법의 새로운 수확, 산일< 散逸 >된《석보상절< 釋譜詳節 >》의 영본< 零本 >으로는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그 전모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된 것 등에서 귀중한 문헌이다. 소자< 小字 >는 갑인자< 甲寅字 > 소활자< 小活字 >이며 대자< 大字 >도 이 책을 인출< 印出 >하기 위하여 새로 주조한 활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