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3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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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
소재지 | 창경궁 |
지정일 | 1963.01.21 |
수량 | 1동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창경궁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궁문. 정면 3칸(13.35m), 측면 2칸(6.48m)의 2층 우진각지붕건물.
창경궁의 정문(正門)이다.
창경궁 창건 때인 1484년(성종 15)에 처음 지어졌고,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다. 그뒤 1834년의 보수 등 여러 차례의 수리를 겪었으며 1961년 이후의 거듭된 단청공사로 옛 아름다움을 잃었다.
문 양옆으로 궁장(宮墻 : 궁궐을 싸고 있는 돌담)이 이어져 있고, 그 끝에 십자각(十字閣)을 두어 행각(行閣)과 연결하였으며 행각 가운데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각(水閣)을 마련하였다. 물길 한복판에는 옥천교(玉川橋)를 걸쳐놓아 명정문(明政門) 쪽으로 가는 통로로 삼았다.
위층 기둥의 길이는 8척(尺), 아래층 기둥은 14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포는 다포계로 포작수가 내7포·외5포이며, 따라서 출목(出目) 수는 내3출목·외2출목이다. 쇠서〔牛舌〕의 조각형태가 꼿꼿하고 날카로워 조선 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1층은 가운데 기둥 사이에 2짝문을 3곳에 달았고 문짝 위에 홍살〔紅箭〕을 베풀었으며, 그 위쪽 천장의 가운데 칸은 서까래를 노출시키고 양 옆칸은 반은 반자로 막고 반은 노출시켰다.
문 왼쪽(북쪽)에 2층으로 연결되는 꺾은 계단을 가설하였는데 2층은 4면 모두 판장문을 달아 열고 닫을 수 있게 하였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공포는 1층의 공포와 동일한 특징을 띠고 있으며, 다만 기둥 사이가 좁아져서 공포의 수가 줄어들었다. 공포 위에는 도리를 얹고 다시 부연(副椽 : 서까래)을 내단 겹처마를 받쳤는데 추녀의 사래 끝에 토수(吐首 : 龍頭나 鬼頭 모양의 장식)를 끼웠다.
지붕 위에는 회반죽을 바른 높은 마루를 만들고 용마루에는 용을 돋을새김한 취두(鷲頭 : 매 머리모양의 장식), 내림마루에는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을 배열하여 건물의 위엄을 나타냈다.
광해군 때 재건된 창경궁 및 창덕궁의 여러 건물들과 함께 17세기 전반기에 속하는 목조건축의 연구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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