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9.jpg 경상북도 경주시 양복면 용당리 감은사서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1959년 12월 경북(慶北) 월성군(月城郡) 양북면(陽北面) 용당리(龍堂里) 감은사(感恩寺) 터 동서(東西) 2기(基)의 3층 석탑(石塔) 중 서쪽에 있는 3층 석탑(石塔) 해체수리(解體修理) 때 3층 탑신(塔身)에서 발견된 일련의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이다. 원래 감(龕) 안에 사리기(舍利器)가 장치되었던 것이나 감(龕)은 발견 당시 이미 부식(腐蝕) 대파(大破)되어 있었다.

1.청동사각감(靑銅四角龕)감(龕)은 깊숙한 장방형 상자에 방추형(方錐形)뚜껑을 덮고 4귀에 발을 단 형태이다. 측면에는 각각 사천왕상(四天王像) 1구와 그 좌우 8능형의 바탕에 새겨진 수환(獸環) 상하, 즉 측면 가장자리에 초화형(草花形)이 장식되었다. 이들 장식은 모두 별도로 동판(銅板)에 새겨서 잔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꽃과 잎을 교대로 배치하고 그 사이르 어자문(魚子文)으로 메운 가는 장식판으로 단을 돌렸다. 밑에는 ㄱ자형의 받침이 4귀에 붙어 있다.

뚜껑 둘레에는 몸뚱이 부분 가장자리를 장식한 것과 같은 문양(文樣)의 장식판으로 단을 돌리고 다시 초화형(草花形)을 연속시킨 장식판이 대각선으로 十자형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과 같은 정4각형 장식판을 덮고 중앙에 4능형 고리를 달았다. 여러 조각 가운데 사천왕상(四天王像)들은 모두 주상(鑄象)이며 제작 당시부터 일부 손상을 입은 흔적이 있다. 모두 몸에 화려한 갑주(甲)를 입었고 그 중 2구는 복부(腹部)에 사자형이 있다. 머리에는 원형 두광(頭光)이 있고 한 손은 허리에 대고 한 손에는 탑(塔)·보주(寶珠)·극(戟)·금강저(金剛杵)를 들었으며 발에는 소(牛)·주유(侏儒)가 있다. 이 사천왕상(四天王像)들의 자세·옷의 무늬 등은 중국 당대(當代)의 조상(彫像)에서 볼 수 있는 바이지만 표현 기법은 오히려 중앙 아시아의 조상과 상통하여 매우 주목된다(사천왕상(四天王像) 높이 21.6cm내외). 이 감(龕) 안에 사리기(舍利器)를 넣었는데 신개(身蓋)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신부(身部) 두면(頭面) 상부(上部)에 소형 자물쇠를 붙이고 비녀못을 꽂았다.

2.청동제사리탑(靑銅製舍利塔)기단(基壇)·신부(身部)·보개(寶蓋)의 3부분으로 구성된 보좌형(寶座形)의 사리기(舍利器)이다. 기단(基壇)은 정 4각형으로 복련형(伏蓮形)의 복판연화(複瓣蓮華)와 당초문(唐草文)으로 장식된 하대(下臺) 위의 1면에 2좌(座)씩의 고식 면상(眠象)을 투각(透刻)한 정 4각형 외벽을 세우고 그 안에 하단 정 4각형, 상당 8각형의 중대(中臺)를 얹었다. 외벽과 중대(中臺) 사이에는 각 면 2구씩의 신장(神將)을 별주하여 배치하고 있다. 상대 상면 주위에는 앙연(仰蓮)을 새기고 그 안에 2단의 정사각형 난간(欄干)을 돌린 중앙에 사리병(舍利甁)을 안치하였다. 이 주위에는 4귀에 진악상(秦樂像)과 그 사이에 동자상(童子像) 1구씩을 배치하여 장엄을 다하였다.

사리병(舍利甁)은 복발형(覆鉢形)과 연판(蓮瓣)·보주(寶珠)로 된 청동(靑銅) 외피 속에 넣었는데 복발형(覆鉢形)의 4면에는 고리가 달리고 그 위의 연판(蓮瓣)은 풍만 장대해 보인다. 수정제(水晶製) 보주(寶珠)는 2중의 작은 연판 위에 얹었고 청동을 오려 만든 화염(火焰)을 씌웠다. 이 안의 사리병(舍利甁)은 수정제(水晶製)로(높이 3.8cm)금선(金線)과 금입(金粒)으로 뚜껑이 덮여 있었다.
 
10530.jpg  청동제사리기(靑銅製舍利器)  보물  제366-1호
기단(基壇)·신부(身部)·보개(寶蓋)의 3부분으로 구성된 보좌형(寶座形)의 사리기(舍利器)이다. 기단(基壇)은 정4각형으로 복련형(伏蓮形)의 복판(複瓣) 연화(蓮華)와 당초문(唐草文)으로 장식된 하대(下臺) 위의 1면에 2좌(座)씩의 고식 안상(眼象)을 투각(透刻)한 정4각형 외벽을 세우고 그 안에 하단 정4각형, 상단 8각형의 중대(中臺)를 얹었다. 외벽과 중대(中臺) 사이에는 각 면 2구씩의 신장(神將)을 별주하여 배치하고 있다. 상대 상면 주위에는 앙련(仰蓮)을 새기고 그 안에 2단의 정사각형 난간(欄干)을 돌린 중앙에 사리병(舍利甁)을 안치하였다. 이 주위에는 4귀에 주악상(奏樂像)과 그 사이에 동자상(童子像) 1구씩을 배치하여 장엄을 다하였다.

사리병(舍利甁)은 복발형(覆鉢形)과 연판(蓮瓣)·보주(寶珠)로 된 청동(靑銅) 외피 속에 넣었는데 복발형(覆鉢形)의 4면에는 고리가 달리고 그 위의 연판(蓮瓣)은 풍만 장대해 보인다. 수정제(水晶製) 보주(寶珠)는 2중의 작은 연판 위에 얹었고 청동을 오려 만든 화염(火焰)을 씌웠다. 이 안의 사리병(舍利甁)은 수정제(水晶製)로(높이 3.8㎝) 금선(金線)과 금립(金粒)으로 뚜껑이 덮여 있었다.
 
10531.jpg  청동제사각감(靑銅製四角龕) 보물  제366-2호
감(龕)은 깊숙한 장방형 상자에 방추형(方錐形) 뚜껑을 덮고 4귀에 발을 단 형태이다. 측면에는 각각 사천왕상(四天王像) 1구와 그 좌우 8능형의 바탕에 새겨진 수환(獸環) 그리고 수환(獸環) 상하, 즉 측면 가장자리에 초화형(草花形)이 장식되었다. 이들 장식은 모두 별도로 동판(銅板)에 새겨서 잔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꽃과 잎을 교대로 배치하고 그 사이를 어자문(魚子文)으로 메운 가는 장식판으로 단을 돌렸다. 밑에는 ㄱ자형의 받침이 4귀에 붙어 있다.

뚜껑 둘레에는 몸뚱이 부분 가장자리를 장식한 것과 같은 문양(文樣)의 장식판으로 단을 돌리고 다시 초화형(草花形)을 연속시킨 장식판이 대각선으로 십(十)자형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과 같은 정4각형 장식판을 덮고 중앙에 4능형 고리를 달았다.

여러 조각 가운데 사천왕상(四天王像)들은 모두 주상(鑄像)이며 제작 당시부터 일부 손상을 입은 흔적이 있다. 모두 몸에 화려한 갑배(甲胄)를 입었고 그 중 2구는 복부(腹部)에 사자형이 있다. 머리에는 원형 두광(頭光)이 있고 한 손은 허리에 대고 한 손에는 탑(塔) ·보주(寶珠) ·삭극(삭戟) ·금강저(金剛杵)를 들었으며 발 밑에는 소(牛) ·주유(侏儒)가 있다. 이 사천왕상(四天王像)들의 자세 ·옷의 무늬 등은 중국 당대(唐代)의 조상(彫像)에서 볼 수 있는 바이지만 표현 기법은 오히려 중앙 아시아의 조상과 상통하여 매우 주목된다(사천왕상(四天王像) 높이 21.6㎝ 내외).

이 감(龕) 안에 사리기(舍利器)를 넣었는데 신개(身蓋)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신부(身部) 두면(頭面) 상부(上部)에 소형 자물쇠를 붙이고 비녀못을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