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불화,탱화

태안사 泰安寺

문성식 2015. 7. 30. 23:32
소재지 : 곡성군 죽곡면 
원문참조 및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사진출처 : 문화재청 

0161.jpg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桐裏山)에 있는 절.

 

〔연 혁〕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며, 대안사(大安寺)라고도 한다.

“동리산태안사사적(桐裏山泰安寺事蹟)”에 의하면 창건 당시의 이름은 대안사(大安寺)였으며, 천보원년(天寶元年 壬午 : 新羅景德王元年, 742) 2월, 세 명의 신승(三箇神僧)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혜철대사가 이곳에 주석하기 이전에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의 기록에 의해 알 수 있다. “有舍名曰大安其寺也”라는 기록인데 사(舍)라 칭한 것으로 보아 이 당시의 규모는 매우 초라한 규모였을 것으로 보인다. 혜철대사 주석 이후 태안사는 매우 번창하게 되되었다. 혜철대사가 이곳 동리산을 선문의 장소로 택한 이유에 대해 “谷城郡 동남쪽에 산이 있어 桐裏라 하였고, 이 가운데 작은 집이 있어 大安이라 이름하였다. 그 절은 수많은 봉우리가 가리어 비치고 하나의 물줄기가 맑게 흐르며, 길은 멀리 아득하여 세속의 무리들로 오는 이가 드물고 경계가 그윽이 깊어 승려들이 머물기에 고요하였다. …… 선사가 석장을 들고 와서 둘러보고 머물 뜻이 있어 이에 敎化의 장을 열고 자질 있는 사람을 받아 들였다”라고 하였다. 즉, 경치가 좋으며, 사회와 격리되어 있어 수행하기에 좋다는 것이 이곳에 선문을 연 계기가 되고 있다.

 

언제 혜철대사가 이곳에 선문을 열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성왕(文聖王) 9년(847) 이전에는 이곳에 주석 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 당시의 사찰현황은 알 수 없다. 태안사지(泰安寺志)의 편사(片史)에는 혜철대사의 손제자(孫弟子)인 광자대사 윤다(允多)가 중창한 당시의 이 사찰현황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고려태조(高麗太祖) 이십년경(二十年頃) 광자선사(廣慈禪師) 중창당시불상간각(重創當時佛像間閣)”이라는 제목 하에 여러 전각에 대한 매우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 금당의 당주가 약사여래철조좌상(藥師如來鐵造坐像)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식당의 당주도 약사철조좌상(藥師鐵造坐像)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태안사는 초기에 약사여래를 매우 중시했던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그 규모가 총 40여동의 건물에 110여 간이었다고 한다. 이때 태안사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추정된다.

 

광자대사 윤다의 입적이후 1684년까지의 태안사의 세부적인 역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223년에는 무신정권 당시 집권자였던 최우가 태안사를 중건했다는 것을 사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당(願堂)이 되어 조정의 지원을 받았다. 1683년(숙종 9) 정심(定心)이 중창하였다. 1737년(영조 13)에 능파각(凌波閣)을 지었는데 능파각은 그 뒤에도 1776년·1809년·1861년·1923년에 각각 중수한 바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태안사는 동리산에 위치하고 있다(泰安寺 在桐裏山)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에도 역시 태안사는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1684년에 태안사가 중창되었던 사실은 사적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여지도서의 기록 역시 태안사가 동리산에 있다(泰安寺 在縣南五十里 桐裡山)는 기록이 있어 조선후기에도 태안사가 계속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태안사의 사적기로는 근래에 만들어진 동리산태안사적과 태안사사적을 들 수 있는데, 그 기록에 있어 매우 자세하며, 다른 사찰의 사적과는 달리 매우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렇듯 계속 사세를 유지해 오다가 한국전쟁 당시 태안사는 능파각, 일주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파괴되게 되었다. 그 당시 곡성경찰서를 태안사로 옮겼으며, 여기서 계속적으로 항쟁을 계속했고 최후까지 저항했으나 모두 순직하게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태안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15개동의 거의 대부분 전각을 잃게 되었다. 이후 1969년 대웅전을 복원하였으며, 이후에도 계속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보전·만세루(萬歲樓)·해회당(海會堂)·선원(禪院)·능파각(凌波閣)·일주문 등이 있다. 이 중 해회당은 네모꼴로 이어진 큰 건물이고, 선원 역시 전국 굴지의 규모이며, 대웅전은 6·25전쟁 때 불탄 것을 곡성군의 보조로 1969년에 재건하였다.

 

또, 능파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어 있고, 일주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혜철의 부도인 보물 제273호의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윤다의 부도인 보물 제274호의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 보물 제275호인 광자대사비, 보물 제956호인 대바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천순명동종 등이 있다.

 

이 중 바라는 승무를 출 때 사용한 것으로, 조선 태종 때 효령대군이 발원하여 만들었으며, 둘레 3m로서 우리 나라 최대의 것이다. 천순명동종은 1465년(세조 11)에서 1475년(성종 6)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공예수법이 뛰어나다.

 

이 절은 1925년 최남선(崔南善)이 찾아와 “신라 이래의 이름 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서 선종(禪宗)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극찬한 곳이다.

 

12.gif 지정문화재 목록 및 해설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273]

대안사광자대사탑[보물 274]

대안사광자대사비[보물 275]

태안사대바라[보물 956]

태안사동종[보물 1349]

태안사능파각[전남 유형 82]

태안사일주문[전남 유형 83] 

태안사[전남 문화재자료 23]

 

〔가람배치〕

전체적인 사찰 배치는 산간의 지형을 적절히 이용해 축대를 쌓아 올리고 이곳에 각각의 건물을 배치했다. 대부분의 선종사찰들이 넓은 평지에 자리를 잡고 이곳에서 중심건물을 중심으로 횡으로 배치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성주사, 보림사 등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태안사는 이와 다르게 오히려 화엄종사찰들이 선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진입로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면 대웅전과 좌우요사(해회당, 적묵당), 그리고 보제루에 의한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이곳이 사찰의 중심공간이 된다. 현재의 모습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찰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중앙마당은 아무런 탑이나 석등을 부가하지 않은 채 비어있는 공간으로 꾸몄으며, 대웅전, 좌우요사 및 보제루를 건립해 닫혀진 공간을 형성했다.

 

대웅전 왼쪽 뒤편 언덕에는 따로 석축을 조성하고 공간을 만들어 최근에 삼성각을 건립했다. 또한 대웅전 오른편 적묵당 뒤로 또한 높은 석축을 사용해 공간을 조성하고 이곳에 약사전을 건립했다. 약사전 뒤로는 매우 높은 석축과 담장을 이용해 선방인 염화실을 만들었으며, 그 오른편으로 따로 석축을 쌓아 넓게 공간을 조성하고 이곳에 이 사찰의 창건주라 할 수 있는 혜철대사의 부도와 비를 모셨다. 계단을 따라 석축을 올아 배알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가능하다. 이 공간은 전체 태안사 배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찰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이 공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태안사는 초창부터 한국 선종사찰의 중심이었고, 이런 모습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부속된 암자 또한 9곳에 이르는데, 천불전, 성귀암, 봉천암, 가은암, 명적암, 삼일암, 보현암, 계현암, 봉서암, 야은정사가 그들이다. 이들 중 천불전은 본 사찰 영역과 매우 인접해 있으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암자로 불리기보다는 본 영역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된다. 천불전은 본 영역 오른편으로 나있는 경사로를 따라 약 20m정도 오르면 넓은 영역이 나타나며, 이곳에 천불전, 산왕각, 요사가 건립되어 있다.

 

태안사는 다른 선종사찰들과 경사진 산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런 연유로 수많은 석축에 의해 대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곳에 각각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다. 또한 전체 주축선을 따라 횡방향이 아닌 종방향의 배치를 주로 하고 있으며, 이런 종방향의 축을 중심으로 동선이동을 하도록 사찰을 구성했다.

 

〔사찰풍경〕 

깨달음은 보는 것도 아니고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사찰이 있을까요. 깨달음의 표상을 친견하는 우리들의 마음 자세를 가르쳐주는 적멸의 공간이 있습니다.

 

곡성 동리산 태안사는 우리나라 선종이 처음 열린 아홉 산문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법등이 꺼지지 않고 이어 내려온 도량입니다. 1200년 동안 태안사는 수행공간의 쇄락과 전소의 아픔 등을 겪으면서도 오직 하나 지켜온 것이 있습니다. 용맹정진하는 수행스님들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경내 뒤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이 깨달음의 세계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즐기는 스님은 바로 혜철스님입니다. 스님은 이곳에 동리산문을 개창한 주인공입니다. 스님의 육신을 사라졌지만 법신은 적인선사조륜청정탑으로 남아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은 전하고 있습니다.

 

적인선사의 가르침은 하심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수행자든 일반 관광객이든 머리를 숙여야만 스님의 법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심을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배알문입니다. 적인선사의 적멸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배알문입니다. 배알문의 높이는 낮습니다. 머리를 숙여야만 적멸의 공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만든 문이지는 알 수 없지만,  배알문 속에는 산사의 길을 걸어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 가르치는 ‘할’이 담겨있습니다.

 

12.gif 교통안내

* 호남고속도로에서 진입하는 방법
광주에서 순천방면으로 40분 정도 달리다 구례, 석곡 진입로(석곡IC)로 진입하여 보성강 (국도18호선)을 따라 압록방향으로 11km 쯤 가면 우측으로 태안교를 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원달방향으로 6km를 가다보면 죽곡면 원달리에 위치한 태안사에 다다를 수 있다. 석곡 IC에서 태안사까지 소요시간(자가용 기준) 20분 정도이다.

* 곡성군 소재지에서 진입하는 방법
곡성읍에서 구례방면으로 국도 17호선을 따라 16km 가다보면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하 는 압록유원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국도 18호선을 따라 죽곡방면으로 6km 가다보면 태안 사로 들어가는 태안교를 접하게 되고 그곳 다리를 건너 다시 원달방향으로 6km를 가다보 면 죽곡면 원달리에 위치한 태안사에 도착할 수 있다. 곡성읍에서 태안사까지 소요시간 (자가용 기준)은 30분 정도이다.

* 순천시 월등면에서 진입하는 방법
순천시에서 국도 18호선을 따라 구례방면으로 24km쯤 가면 황전면 괴목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월등방면으로 4km정도 가면 월등면 소재지에 다다른다. 월등에서 죽곡방면으로 재를 넘어 7km를 가다보면 태안사에 도착할 수 있다. 순천시 월등면에서 태안사까지 소 요시간은 자가용 기준으로 7분 정도이다.

 

12.gif 현지교통

 

12.gif 주변관광지

 

12.gif 입 장 료

 

12.gif 주차시설

 

12.gif 등산로

* 봉두산
1)태안사 - 성기암 - 봉구산 - 고치리 (3시간 코스)
2)상한리 - 북봉 - 봉두산 - 성기암 - 태안사 (3시간 코스)
3)경찰 충혼탑 - 계곡 - 서릉 - 봉두산 - 태안사 (4시간 코스)

 

12.gif 도움전화

태안사 061-362-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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