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32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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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제주 제주시 삼도2동 983-1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동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장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耽羅誌)에 의하면 세종(世宗)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개건(改建)과 중수(重修)를 거쳤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그 수법으로 보아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관덕(觀德)이란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라 하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평소에 마을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이며 문무(文武)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함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그 수법으로 보아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관덕(觀德)이란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라 하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평소에 마을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이며 문무(文武)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함이었다.
창호와 벽체를 가설하지 않고 사방이 모두 개방되었다. 장대석을 바른층쌓기한 2중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26개의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는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창방 아래 인방을 바로 짜올렸다.
공포는 평방(平枋) 없이 기둥 위에 바로 짜올렸는데 쇠서 2개를 둔 이익공식(二翼工式)이며, 기둥 사이에는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혀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세개씩 두었는데 이 화반 위에 운공(雲工)을 보〔樑〕 방향으로 놓아 외일출목도리(外一出目道里)를 직접 받치고 있다.
바닥의 전면 1칸폭은 마루를 깔지 않고 2중기단의 바닥으로 하고, 후면 3칸폭에만 우물마루를 깔았다. 누정 안에는 앞뒤 일렬로 네개씩 높은 기둥〔高柱〕을 세워 대들보〔大樑〕를 걸고 동자주(童子柱 : 세로 세운 짧은 받침)를 세워 종보〔宗樑〕를 받쳤으며, 다시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이들 대공들은 도리 밑의 장혀〔長舌〕와 나란하게 놓인 뜬창방으로 연결되었는데, 이러한 가구수법은 누정건축에 흔히 있는 것이다. 건물내부의 포벽(包壁)에는 건립 당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7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관덕정의 편액은 세종대와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였으나 화재로 손실되어 현재의 글씨는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아溪) 이산해(李山海)의 작품인 것으로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남사록(南사錄)」에 의해 밝혀졌다. 내용은 두보(杜甫)의 취과양주귤만헌(醉過楊州橘滿軒), 상산사호(商山四皓), 적벽대첩도(赤壁大捷圖), 대수렵도(大狩獵圖), 진중서성탄금도(陣中西城彈琴圖), 홍문연(鴻門宴),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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