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논산시 양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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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작봉산(鵲峰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창건 및 연혁〕
쌍계사는 고려시대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명 ‘백암(白菴)’으로도 불리었다. 번성했을 때에는 호남과 호서의 대찰이라 할 정도로 대가람을 이루었었으나 지금은 사세(寺勢)가 많이 위축되어 번성했을 때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창건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봉황루에 걸려 있는 ‘쌍계사재중수기(雙溪寺再重修記)’에는 신라때 창건이라 적고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쌍계사중건비명(雙溪寺重建碑銘)’에 “白菴一洞慧明道場”이라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 초기에는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조성한 ‘관음보살조성비문(觀音菩薩造成碑文)’(1993년)에는 은진 관촉사의 대불(大佛)을 조성한 혜명(慧明)대사가 창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적고 있다. 은진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19년(968년)에 조성되었다.
창건 후 쌍계사는 고려시대를 거쳐 상당히 번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번성했을 때에는 중층(重層)의 대웅전을 비롯해 극락전과 관음전, 선원(禪院), 동서당(東西堂), 명월당(明月堂), 백운당(白雲堂), 장경각(藏經閣), 향로전(香爐殿), 삼보당(三寶堂), 해회요(海會寮) 등 500~600간의 대가람을 이루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 전각들은 모두 불타버렸으며, 고려 말에 와서 중건되기에 이른다. ‘雙溪寺重建碑銘’에는 쌍계사가 오랜 역사를 가진 명찰(名刹)로서 ‘白菴’이란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고려 말의 대문장가인 행촌(杏村) 이암(李?)(1297~1364)이 중건을 발원하고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년)이 연기문(緣起文)을 적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쌍계사는 고려 말에 와서 다시 번영했음을 알 수 있으나 조선시대 전반기의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존하는 선서도절(禪書都節)의 사집교과서(四集敎科書) 목판과 월인석보상절(月印釋譜詳節)과 조당집(祖堂集) 20권 등이 모두 이곳 쌍계사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에도 계속해서 번영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그 중 월인석보(보물 582호)는 조선 선조2년(1569년)에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白介萬)이 시주하여 활자를 새기고 쌍계사에 보관하였던 것인데, 현재는 갑사에 소장되고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간단하기는 하지만 쌍계사가 기록되어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之十八 忠淸道 恩津
<山川>條 “佛明山 在縣東三十三里 山自靑山縣?率山?? 而西至本縣 分爲三 東佛明 南摩耶 北般若”
<佛宇>條 “雙溪寺 在佛明山”
그러나 쌍계사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병화(兵火)로 불타버리고 만다. 이후 숙종 42년(1716년) 승려 자영(自英)이 대웅전을 중층으로 중건하지만 영조 12년(1736년) 11월에 화재로 전소된다. 다시 영조 15년(1739년)에 성능(性能)과 고찰(古察) 등의 승려들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雙溪寺重建碑銘’는 이때의 중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건 후 계속해 쌍계사는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았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가람고(伽藍攷)」, 「대동지지(大東地志)」,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등의 문헌과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해동지도(海東地圖)」 등의 지도에서도 절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① 「輿地圖書」 忠淸道 恩津
<山川>條 “佛明山 在縣東三十里 自高山北秀峴南麓來”
<寺刹>條 “雙溪寺 縣東三十里 在佛明山”
“金地寺 縣東二十五里 在佛明山麓”
② 「伽藍攷」 忠淸道 恩津
“雙溪寺 在佛明山 縣東三十里 金地寺 在佛明山 縣東二十五里”
③ 「大東地志」 忠淸道 恩津 <山川>條
“佛明山 東南三十三里 高山界 ○ 雙溪寺”
④ 「東國輿地志」 卷之三 忠淸道 恩津
<山川>條 “佛明山 在縣東三十三里 全羅道高山縣界”
<寺刹>條 “雙溪寺 在佛明山”
한편 봉황루에 걸려 있는 ‘불명산쌍계사중수기’는 1842년에 씌어진 것으로 전문을 파악할 수 없으나 여러 현감(縣監)과 함께 멀리 군위현감까지 시주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와서도 쌍계사는 중수공사에 지방 관아가 관여하고 있을 정도로 주목을 받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근래에 들어와 1932년에는 대웅전 이하 명부전과 산신각을 일신하였으며, 나한전을 창건하고 단청을 하는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다.
〔당우〕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나한전(羅漢殿)·명부전(冥府殿)·칠성각(七星閣)·봉황루(鳳皇樓)·영명각(靈明閣)·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문병·봉설(鳳舌)·용두(龍頭)의 장식과 문양이 화려하며, 내부에 봉안된 삼존불 위에는 각기 다른 닫집을 달아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정면의 꽃살문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보기 드문 것이다.
특히, 오른쪽 세번째 기둥은 굵은 칡덩굴로 만든 것인데, 노인들이 이 기둥을 안고 기도하면 죽을 때 고통을 면하게 된다고 한다. 봉황루는 2층의 누각으로서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한 고색이 짙은 건물이며, 영명각은 행정당국이 금강유역을 개발하면서 연고가 없는 무덤의 혼백을 모아 봉안한 전각이다.
〔문화재〕
문화재로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0호로 지정된 부도와 쌍계사중건비명이 있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는 취봉당혜찬대사지도(翠峰堂慧燦大師之屠) 등 9기가 있는데, 대부분이 석종형(石鐘型)이고 옥개석이 있는 것도 있다.
또, 중건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장방형의 비신(碑身)이 있는데, 김낙증(金樂曾)이 찬하고 이화중(李華重)이 글씨를 쓰고 김낙조(金樂祖)가 새긴 것이다.
〔가람배치〕
쌍계초등학교에서 602번 지방도를 벗어나 작봉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저자거리와 절골을 지나 절에 이르게 된다. 절의 바로 아래에는 절골저수지가 있고, 저수지를 끼고 돌아가는 산모퉁이에 松林으로 둘러싸인 부도밭이 있다. 이곳에는 영조 15년(1739년)에 세워진 쌍계사중건비명(雙溪寺重建碑銘)과 취봉당혜찬대사지도(翠峰堂慧燦大師之屠)를 비롯한 9기의 부도가 있다.
부도전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절의 동쪽에서 흘러내린 계곡과 만나게 된다. 일주문이나 천왕문 등 절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하게 되는 문은 없으며, 계곡에 난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사역이 전개된다. 계곡을 건넌 곳에 조금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뒤로 2중의 높은 축대가 있다. 최근에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축대이다. 축대 가운데 있는 계단을 오르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면서 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을 향해 약간 비탈을 이룬 한가운데는 정면에 ‘雙溪寺’라 쓴 현판을 건 봉황루(鳳凰樓)가 있다. 봉황루 뒤편의 마당도 상당히 넓은 편이며, 그 마당 뒤편으로 한 단 높게 마련된 대지 위에 중심전각인 대웅전이 위치하고 있다. 봉황루와 대웅전은 작봉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지형에 따라 북향을 하고 있으며, 중심축이 거의 일치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봉황루와 대웅전 사이의 마당은 동서로 긴 모양으로 서쪽 끝에는 명부전이 동향으로 있고, 반대편에 요사인 明月堂이 있어 마당을 한정하고 있다.
대웅전은 앞마당보다 한 단 높게 조성한 대지 위에 있다. 이 대지 역시 동서로 긴 형태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이 대지의 서쪽에는 동향한 나한전과 북향한 칠성각겸산신각(七星閣兼山神閣)이 있어 영역을 한정하고 있다. 반대편인 동쪽에는 새로 조성한 관음보살좌상과 함께 관음보살조성비문이 있으며, 그 뒤로 계곡이 이어진다.
쌍계사가 위치한 곳은 깊은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터전이 매우 넓어 기록에서처럼 500~600간 규모로 호서와 호남의 대가람이 위치했음직하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봉황루를 비롯해 명부전과 나한전, 칠성각겸산신각 및 명월당 뿐이어서 넓은 터전에 건물에 의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고 허전함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교통정보〕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논산 IC → 602번 지방도 양촌방면 → 쌍계초등학교 앞에서 남쪽으로 우회전(안내 표지판 있음) → 골짜기 끝까지 직진(약 5분) → 쌍계사
대중교통
논산 연무대에서 양촌행 버스(하루 2회) → 저자거리 하차 → 도보(약30분)
〔도움전화〕
쌍계사 041-741-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