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역사

허준(許浚, 1539-1615)

문성식 2015. 6. 14. 23:14

허준 조선 최고의 의서,[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이미지 1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허준(許浚, 1539-1615)은 신묘한 의술로 박애를 실천한 ‘의성(醫聖)’이 되고, 신분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기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그의 일생을 추적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허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대부분은 소설과 드라마의 상상력일 뿐이다.

[동의보감]을 편찬하다

임진왜란으로 큰 혼란을 겪던 조정이 강화회담의 진행으로 잠시나마 한숨을 돌리고 있던 1596년 선조는 허준을 불러 명했다.

“요즘 중국의 방서를 보니 모두 자잘한 것을 가려 모은 것으로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너는 마땅히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라.”

그 무렵 명대의 신의학이 적지 않게 조선에 수입되어, 조선 전기의 의학전통과 섞이는 바람에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전란을 겪으며 기근과 역병이 발생해 제대로 된 의서가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면서 선조는 그 책의 성격을 분명히 제시했다. 첫째, 사람의 질병이 조섭을 잘 못해 생기므로 수양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 둘째,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요점을 추리는 데 힘쓸 것. 셋째, 국산 약 이름을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 왕명을 받은 허준은 정작·양예수·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작업은 중단되었다가 1601년 무렵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부터는 허준이 단독으로 작업했는데, 14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총 240여 종의 의서들을 참고하여 쓴 책이 [동의보감]이다.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학업에 열중

허준은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허곤(許琨)은 무관 출신으로 경상우수사를 지낸 인물이며, 아버지 허론(許碖) 역시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 어머니 김씨가 첩이기는 했으나 천출은 아니었다. 양반 가문의 서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법 권세 있는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란 허준은 “총민하고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두루 밝았다.”고 전한다.

허준이 왜 의학을 선택했고, 어떤 과정을 밟으며 공부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왔던 유의태라는 스승도 허구의 인물이고, 허준이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해 놀랄 만한 깨달음을 얻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작가의 상상력일 뿐이다. 내의원에 들어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 전까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선조 때 유학자인 유희춘(柳希春)의 문집이 유일하다. 그 문집에 남아 있는 허준의 모습은 유희춘이나 일가의 병 치료에 참여하기도 하고, 유희춘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살림살이가 궁색하지 않았고 의술이 제법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1569년 유희춘의 얼굴에 생긴 종기를 완치한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유희춘의 신임을 얻었다.

유희춘은 이조판서에게 허준을 천거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 덕분인지 몇 년 뒤 허준은 종4품 내의원 첨정의 자리에 오른다. 서른한 살에서 서른세 살 사이의 일인 듯하다. 당시 의과의 초시와 복시를 1등으로 합격해서 얻을 수 있는 관직이 종8품이었다고 하니 허준이 얼마나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허준은 의과도 통과하지 않았고 서자 출신이었다. 의원으로서 크게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의원에 들어와 의서 편찬에 참여

파격적인 승진으로 내의원에 들어왔으나 한동안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던 듯하다. 1575년 어의를 보조하여 왕의 맥을 진찰했고, 1581년 선조의 명으로 [찬도방론맥결집성]이라는 진맥학 책의 오류를 바로잡아 책으로 편찬하는 작업을 했으며, 1587년 다른 여러 어의와 함께 왕의 진료에 참가하여 병의 쾌유에 대한 상으로 사슴 가죽을 받았다는 등 몇 년에 한 번씩 단편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왕명으로 진맥학 책을 전술했다는 기록을 보면 학술적으로 인정은 받았던 듯하다.

그러던 중 1590년 광해군의 두창을 고치면서 비로소 남다른 의술을 인정받는다. 당시 왕자의 신분이었던 광해군은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일 정도로 병이 깊었다. 다른 의원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허준이 과감히 나서 병을 고치자 선조는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내리며 그 공을 치하했다. 서얼 출신의 기술관이었던 허준에게 당시의 신분구조상 허용되었던 벼슬은 정3품의 당하관이 최대였다. 그런데 그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중 다시 한번 광해군의 병을 고치면서 동반(東班)에 올라, 신분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동반이란 양반 중 하나인 문관을 뜻하는 것으로, 동반에 올랐다는 것은 곧 완전한 양반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또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자신을 끝까지 따른 문무관이 열일곱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힘겨웠던 피난길을 끝까지 함께한 공을 인정해 허준을 공신에 책봉하고 종1품 숭록대부 벼슬을 내렸다. 품계로만 따지면 좌찬성, 우찬성과 같은 지위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선조는 허준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리려 했다. 1606년 오랫동안 차도가 없던 병세가 호전되자 관직의 최고 단계인 정1품 벼슬을 내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신분 질서를 그르치는 잘못된 조치라고 맹렬히 반대하는 사간원과 사헌부의 반대에 성사되지는 않았다.

유배지에서 편찬한 명저, [동의보감]

조선 왕조가 개국된 이후 의관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에 올랐지만,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다.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망령되어 약을 써서 선조를 죽게 했다.”는 죄로 유배 길에 올라야 했다. 허준의 의술로 목숨을 구한 적이 있던 광해군은 “허준의 의술이 부족하여” 선조를 살리지 못했을 뿐 고의가 아니니 처벌할 수 없다며 감쌌지만, 신분을 뛰어넘은 그의 입지에 문관들의 질시와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상황이다 보니 광해군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귀양살이는 1년 8개월이나 지속되었다.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커다란 시련이었던 이 기간을 허준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 되는 [동의보감] 편찬에 바쳤다. “정(精), 기(氣), 신(神)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의 양생학적 신체관과,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위주로 한 의학적 전통을 높은 수준에서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을 받는 이 책은 이후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오늘날까지도 한의학도에게 널리 읽히는 명저이다. 1609년 사간원의 극심한 반대에도 광해군은 당시 일흔한 살의 허준을 내의원에 복귀시켜 자신의 병을 돌보게 했다. 한양에 돌아온 그는 마침내 완성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게 바쳤고, 이후 역병에 관해 저술한 [신찬벽온방] [벽역신방]을 편찬했다. 그러다 1615년 일흔일곱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 뒤 정1품 보국숭록대부 작위가 추증되었다.

신화가 된 의사

허준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허준은 제서(諸書)에 널리 통달하여 약을 쓰는 데에 노련하다.”는 선조의 평과, “허준이 저미고란 약으로 많은 사람의 두창을 고쳤다.” “근래에 오직 박제가, 손사명, 안덕수, 양예수, 허준 등이 의원으로 이름이 나 있다.”는 이수광의 평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와 조선 의서의 어머니가 되고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허준의 의술은 신화가 되어갔다.

18세기 중엽에 나온 [약파만록]이라는 책에는 허준이 코끼리를 고쳐주어 명성이 자자해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이야기에 살이 붙어, 아픈 호랑이를 고쳐주고 금침을 얻은 허준이 그 금침으로 중국 천자의 병을 고쳐준 뒤 천자의 병을 고치지 못한 죄로 옥에 갇힌 중국 의원들을 풀어주자 그 의원들이 자신들이 아는 것을 모두 책에 적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이라는 설화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사실 이런 신화의 옷을 다 벗기더라도 허준은,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가 역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장중경, 주굉에 이어 세 번째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뛰어난 의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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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진 | 역사저술가
<한국사 인물 이야기>, <제왕의 책>,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등의 책을 썼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인물을 찾아내고 왜곡된 인물들의 참모습을 찾아내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림
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http://www.fartzzang.com
발행201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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