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14.jpg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높이 2m.

광배는 결실되었고 왼팔이 잘려 나갔으며 발목 이하는 땅에 묻힌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표현 양식은 잘 볼 수 있다.

불신은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 양감 있는 허벅지 등 신체의 굴곡이 강조되었고 전체적인 비례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몸에 꼭 붙여 옷자락을 잡고 있는 오른팔이나 처진 어깨 등에서는 다소 어색하고 긴장감이 줄어든 느낌을 준다.

목 깃이 두꺼운 통견(通肩)의 불의(佛衣)는 가슴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양팔을 걸쳐 돌아 내려가고 양다리에서는 각기 동심타원형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팔을 감고 돌아 양옆으로 내려간 불의는 물결치듯 구불구불 흘러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와 같이 옷깃에 반전(反轉)이 있는 통견의 불의가 흘러내려 대퇴부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양다리 표면에서 반원형의 주름이 대칭으로 표현되는 불의 양식은 이른바 우전왕상식불상양식(憂塡王像式佛像樣式)으로 일컬어진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그 대표적인 예로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사암불입상(砂巖佛立像) 그리고 선산출토의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등의 많은 금동불에서 찾아볼 수 있어 통일신라의 불상에 이러한 양식이 크게 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석교리석불입상은 옷깃의 반전이 없고 다리 위에 표현된 주름 형태도 동심타원형을 이루고 있어 이 양식에서 형식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오른팔을 몸에 꼭 붙여 유연성을 잃고 있는 모습과도 연관되는 것 같다.

이 양식이 좀더 형식화되고 경직된다면 거창양평동석조여래입상(居昌陽平洞石造如來立像, 보물 제377호)이나 함안대산리석불(咸安大山里石佛, 보물 제71호)과 같은 도식적인 모습으로 변모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석교리석불입상은 양감과 긴장감 넘치는 신체, 유연한 자세, 탄력 있는 묘선 등의 특징을 가지는 8세기 중엽 불상 양식보다는, 신체가 경직되어 가고 옷주름 표현이 이완되고 형식화되어 가는 점 등에서 시대적인 변모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창양평동석불입상이나 함안대산리석조보살입상 또는 예천동본동석불입상 등 9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불상들보다는 덜 도식화된 양식의 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