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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우울증, 사회적 편견 없애야 해결

문성식 2015. 6. 9. 14:07

“한국형 우울증, 사회적 편견 없애야 해결 ”

<메디컬 라운지> 하버드대 의대서 자문교수 위촉.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해 대한민국 정신의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우울증 임상연구센터가 우리나라 교수를 자문교수로 위촉한 것이다.

미국 유명 대학의 의사가 한국 에 자문교수로 파견 나온 사례는 많지만, 해외 유명 대학병원에서 한국 의료진에게 먼저 자문교수를 제안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의 이야기다.

해외 전문가와 우울증 공동 연구


	전홍진 교수
전홍진 교수
전홍진 교수가 MGH의 자문교수로 위촉된 것은, 그가 MGH 연수기간(2012년 8월부터 2014년 2월까지)에 보여준 연구 성과 덕분이다. 전 교수는 연수기간에 한국인의 우울증 특징을 명확히 분석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 아시아 사람들의 우울증 양상은 비슷합니다.  감정 표출에 익숙지 않고,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지요."

전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우울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불면증이나 식욕부진 등의 증상 이 나타나도 우울증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도 사회적으로 불이 익을 당할지 몰라 치료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 전 교수는 "결국 한국인들은 장기간 우울증으로 고통받다 자살 시도 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표출을 꺼리지 않고 정신 문제에 대한 이해가 높다. 따라서 미 국의 연구를 기반으로 국내의 우울증을 연구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전 교수는 MGH 연수 중 서양의 임상 데이터를 직접 비교하며 한국의 우울증에 대해 명확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문교수 위촉과 관련해 "해외 전문가들과 공동연구할 경우 다양한 임상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연구가 설계 과정부터 함께 진행되기 때문 에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자신의 질병을 밝힐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돼야"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연수 당시 전홍진 교수.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연수 당시 전홍진 교수.

전 교수는 우울증이 자살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먼저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기 위해서는 우울증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고, 이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한다.

"서양에서도 우울증 환자가 사회적으로 곤란을 겪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 지역에 서는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은 모두 마녀로 몰려 죽임 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신 질환에 대한 관심이 커집니 다. 과거의 마녀사냥 등 정신 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 을 반성하고 변화를 도모하게 됩니다."

전 교수는 "미국의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 변화에는 유 명인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있었던 유명인이 TV 프로그램<오프라 윈프리 쇼> 등에 나와 자신의 병을 공개하고, 치료받으며 정 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전 교수는 미국에서의 체험도 알려줬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어느 학부모 모임에 참가했어 요. 그때 제가 우울증에 대해 연구를 한다고 하자 학부모들이 전문가처럼 질문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정신 질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어릴 때부 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 교수는 전했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 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나타나도 적절한 해법을 찾기 쉬운 것이라고 전 교수 는 분석했다.

자살예방 예산 턱없이 부족한 한국, 정책적 변화 절실

전 교수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면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덴 마크·스웨덴·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의 예를 들었다. 이 나라 국민들은 경제적으 로 여유롭지만 상대적으로 자살률이 높았다. 일조량 부족으로 우울증에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핀란드와 덴마크 정부는 전 국민의 정신건강평가를 주기적으로 시행했다. 이를 계기 로 자살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전 교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범 사례가 미국 보스턴이다. 지난 6년간 보스턴의 75세 이상 노인 자살은 한 건도 없었다. 보스턴만의 독특한 '튜터링' 정책 덕분이다. 보스턴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 도서관에 등록하면 지역 노인과 연결돼 문화적 교류를 하게 되며, 이를 통해 노인들은 사회 적 관계를 맺고 자연스럽게 우울증을 완화·예방할 수 있다고 전 교수는 전했다.

전 교수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자살예방 예산이 매우 적다"고 한탄했다. 서울시의 정신보건 및 자살예방 예산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 민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이라며 "인식과 정책의 변화를 통해 전 국민이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전문가와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의 우울증 문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현정 기자 lhj@chosun.com
사진 조은선 기자
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월간헬스조선 2월호(118페이지)에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