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5.jpg 전라북도 남원시 내면 입석리 실상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높이 5m.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의 서쪽 분지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선종 9산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하였다. 이 석등은 실상사 보광명전 앞뜰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밑에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평면은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받침부분의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8장의 꽃잎을 대칭적으로 새겼다.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창을 뚫었는데, 창 주위로 구멍들이 나 있어 창문을 달기 위해 뚫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모두 위로 치켜올려진 상태로, 돌출된 꽃모양 조각을 얹었다. 머리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팔각기둥의 전형적인 간주석(竿柱石)과 달리 고복형(鼓腹形) 간주석을 지닌 석등으로서, 그 전체적인 형태는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 앞 석등이나 임실용암리석등(보물 제267호)과 유사하여 이 지방에서 유행된 석등형식으로 볼 수 있다.

 

8각의 지대석 위에 올려진 하대(下臺)는 이중으로 구획되어 하단부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그 위로 잎이 넓은 8엽(八葉)의 복엽복판(複葉覆瓣)을 매우 얕게 새겼다.

 

그리고 각 판의 끝단에는 높게 솟아오른 귀꽃이 석 줄의 구름무늬를 이루며 장식되었다. 하대 위에는 3단의 간석받침이 있으며, 그 위로 간석이 놓여 있다.

 

간석은 고복형을 이루고 있는데, 3단의 마디로 층급을 구획하였다. 즉, 돌출된 마디마다 중앙부를 세줄의 띠와 클로버형의 꽃무늬장식으로 연결하였고, 그 상하단에는 단엽(單葉)의 연판을 묘사하였다.

마디와 마디 사이의 잘룩한 부분에는 세줄의 돌출장식선이 둘러져 있다. 간석 위로는 3단의 상대받침을 만들었고, 그 위에 올려진 상대는 하대의 연판과 달리 단엽의 중판(重瓣)으로 조각하였다. 그리고 연판마다 꽃무늬장식을 첨가한 점이 독특하다.

상대 위에 올려진 화사석(火舍石) 역시 8면으로 이루어져, 면마다 직방형의 화창(火窓)을 뚫었고, 그 주위로 두 줄의 선각장식을 하였다. 또한, 창호(窓戶)를 고정시키기 위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화사석 위에 놓인 옥개석은 낙수면을 단엽의 연판으로 장식하고, 상부에 또 하나의 연판을 중첩시켜 덮고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즉, 기왓골이나 우동(隅棟)의 표현이 없이 각 연판의 구획선으로만 장식하였다. 연판 끝에는 하대와 동일한 형태의 귀꽃이 장식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절단, 탈락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그 상태가 완전하며 간주석에 표현된 석 줄의 띠와 꽃무늬가 동일하게 장식된 복발(覆鉢)과 그 위로 3단의 마디를 구성한 뒤, 귀꽃이 장식된 보개(寶蓋)를 올려놓았다.

보개의 상부면은 한단 높게 돌출시켜 당초문(唐草文)을 새겼다. 그 위로 끝이 뾰족한 연봉형 보주(寶珠)가 놓여 있는데, 특히 중앙에는 선각으로 원형장식을 새긴 점이 특이하다.

 

현재 이 석등의 측면에는 등을 켤 때 오르내리는 용도로 사용된 석조계단이 남아 있다. 이것은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유일한 예로서, 석등이 공양구(供養具)로서의 장식적인 의미와 더불어 실용적 등기(燈器)로 사용된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석등의 조성 연대는 실상사의 창건(828년)과 비슷한 시기인 9세기 중엽 이후로 보이며, 크기가 장중하고 화려한 장식과 단정한 비례미가 돋보이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