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jpg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5.5m.

 

고려시대에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만복사의 옛터에 서 있는 탑이다. 원래 이곳에는 절터 중앙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79년부터 1985년까지 7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많은 건물지와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재 탑은 4층까지만 남아있고, 5층 이상은 모두 없어졌다.

 

이 탑은 현재 4층 옥개석(屋蓋石)까지 남아 있으며 기단 구조는 명확하지 않으나 2층기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층기단의 갑석(甲石)으로 추정되는 부재만이 길 위에 드러나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하에 매몰된 부분은 별석(別石)의 지대석(地臺石)과 기단 면석(面石)이며, 각 면석의 중앙에는 탱주(撑柱 : 받침기둥) 하나가 각출(刻出)되어 있다고 한다.

드러난 기단은 정방형의 돌로서 각 면에는 넓은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새겼으며, 갑석은 1매의 판석으로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과 탑신(塔身)굄은 표현되지 않았다.

 

1층탑신은 비교적 높은 방주형(方柱形)의 부재로서 각 면 좌우에 얇은 우주를 새겼다. 옥개석은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양식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것으로, 옥개석은 양 전각(轉刻)에 이르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마치 목조건물의 옥개곡선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윗면에는 1단, 아래에는 2단의 받침을 갖추고 있다.

 

이 탑에서 주목되는 것은 2층에서 4층에 이르기까지 탑신과 옥개 사이에 별석의 탑신 받침대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2층 이상의 탑신은 모두 폭에 비하여 높이가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옥개석 역시 1층옥개와 같이 낮고 넓고 체감률도 매우 적다. 탑신 받침대는 방형의 판석으로 밑에는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상면에는 1단의 탑신 굄을 각출하였다.

 

이러한 양식은 홍제동오층석탑(弘濟洞五層石塔)·신복사지삼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 등 고려탑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의 낙산사칠층석탑(洛山寺七層石塔) 등으로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이러한 받침대의 출현은 목조탑에서 난간이 탑신을 두르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난간부의 퇴화양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양식은 주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