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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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131 |
소재지 | 임고면 |
지정일 | 1979.12.28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정대준 |
관리자 | .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넓은 대지에 연당이 있는 이 집은 1756년(영조 32)에 지었다고 전한다. 일심당(一心堂)은 그 때 붙여진 정침의 당호라고 한다.
튼ㅁ자형으로 구성된 몸체가 잡석난적(雜石亂積)한 석단(石端)위에 서남방향을 향해 있고 그 앞마당 남쪽으로 50m거리의 계변(溪邊)에는 3간 정자가 세워져 있다. 안채는 ㄱ자형 고패집이고 아래채와 사랑채는 ㅡ자형집이다. 안채의 안방과 부엌의 상호배치는 횡접(橫接)하는 영남대가의 보편적 형식을 보이며 안방의 전면은 2간의 퇴청이고 아랫방에는 뒤편에 골방을 두었으나 웃방 후면은 툇마루이다. 부엌은 길이가 3간이며 부엌 밑으로는 3간의 마루고방으로 그치고 있다.
대청 건너에는 “작은방”1간이 있고 그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다. 부엌 아래 곳간(庫間)끝과 작은방 툇마루 끝에는 각기 대각점(對角點)에 일각문을 두었으며 그 사이가 동간상거(棟間相距)해서 튼ㅁ자를 이루게 하였다. 대문이 따로 있긴 하나 각기 후원과 외방(外方)의 출입, 통행의 편리를 고려한 구성이라 하겠다. 아래채는 안쪽에서부터 마루고방 1간과 작은 온돌방(안사랑), 방앗간(디딜방아), 외양간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양간은 너비의 간살이를 앞뒤로 조금씩 넓히고 있다. 사랑채(대문채)의 길이는 7간인데 중심에 대문을 두었다. 큰사랑은 온돌이 단간이고 대청도 1간이나 대청의 전후면에 분합문을 달아 마루방과 같이 꾸몄으며 온돌과 대청의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큰사랑과 대문 사이에는 작은 온돌방을 두었다. 대문 왼편은 1칸의 곳간, 온돌방, 마루가 상접(相接)해 있으며 온돌방은 작은사랑격이지만 사랑방과 마루를 대문 양편에 둔 것은 이 집에 원래 접빈(接賓)이 많았던 때문이라 짐작된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한단 높은 기단위에 앉혔으며 각 동을 튼ㅁ자형으로 안배한 것은 안마당을 넓히는 효과도 함께 얻고 있다고 하겠다. 대문 외정에는 원래 몇간의 마판(馬版)이 있었으나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마판 전용 건물이 따로 갖추어졌던 것은 바깥사랑방· 마루의 복수존재(復數存在)와 함께 상류인의 기마래왕(騎馬來往)이 보편적이었던 점과 일상 내빈이 부절(不絶)이던 과거사회의 생활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정자는 내곡(內曲)하는 계류(溪流)의 북변(北邊)에 정남을 향해 있으며 그 동하에는 부정형 연지(蓮池)를 두고 있는데 정명(亭名)은 연정(蓮亭)이다. 길이 3간 너비 3간의 ㄱ자형 집이며 청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온돌방을 두었다. 온돌은 간반이고 동온돌은 2간반인데 방앞에 각기 1간씩의 툇마루가 아닌 넓은 청을 두어 대청과 연결시키고 있어 이를 모두 대청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대청의 평면은 역 ㄱ형을 이루었으며 간수도 4간으로 증가하였다. 대청을 넓히는 대신에 양편 온돌과 유기적으로 접촉이 되도록 횡장(橫張)한 점, 동온돌 1간을 더 두기 위해 그 후면으로 간살이를 늘려잡아 ㄱ자형이 되게한 구상(構想)의 묘는 유례가 드문 것이라 하겠다. 정자의 동측3간에는 네개의 퇴주(退柱)를 세우고 그 위에 날개지붕을 얹었다. 이것은 차양(遮陽)과 풍우(風雨)를 위해 보완한 소위 “차양”이지만 바로 그 밑에 연지(蓮池)가 있는 경관 조성에도 보탬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소전(所傳)에는 정용준씨(鄭容俊氏)의 9대조가 영조(英祖)32년(1750) 몸채와 함께 병건(병建)한 것이라 한다.
대청 건너에는 “작은방”1간이 있고 그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다. 부엌 아래 곳간(庫間)끝과 작은방 툇마루 끝에는 각기 대각점(對角點)에 일각문을 두었으며 그 사이가 동간상거(棟間相距)해서 튼ㅁ자를 이루게 하였다. 대문이 따로 있긴 하나 각기 후원과 외방(外方)의 출입, 통행의 편리를 고려한 구성이라 하겠다. 아래채는 안쪽에서부터 마루고방 1간과 작은 온돌방(안사랑), 방앗간(디딜방아), 외양간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양간은 너비의 간살이를 앞뒤로 조금씩 넓히고 있다. 사랑채(대문채)의 길이는 7간인데 중심에 대문을 두었다. 큰사랑은 온돌이 단간이고 대청도 1간이나 대청의 전후면에 분합문을 달아 마루방과 같이 꾸몄으며 온돌과 대청의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큰사랑과 대문 사이에는 작은 온돌방을 두었다. 대문 왼편은 1칸의 곳간, 온돌방, 마루가 상접(相接)해 있으며 온돌방은 작은사랑격이지만 사랑방과 마루를 대문 양편에 둔 것은 이 집에 원래 접빈(接賓)이 많았던 때문이라 짐작된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한단 높은 기단위에 앉혔으며 각 동을 튼ㅁ자형으로 안배한 것은 안마당을 넓히는 효과도 함께 얻고 있다고 하겠다. 대문 외정에는 원래 몇간의 마판(馬版)이 있었으나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마판 전용 건물이 따로 갖추어졌던 것은 바깥사랑방· 마루의 복수존재(復數存在)와 함께 상류인의 기마래왕(騎馬來往)이 보편적이었던 점과 일상 내빈이 부절(不絶)이던 과거사회의 생활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정자는 내곡(內曲)하는 계류(溪流)의 북변(北邊)에 정남을 향해 있으며 그 동하에는 부정형 연지(蓮池)를 두고 있는데 정명(亭名)은 연정(蓮亭)이다. 길이 3간 너비 3간의 ㄱ자형 집이며 청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온돌방을 두었다. 온돌은 간반이고 동온돌은 2간반인데 방앞에 각기 1간씩의 툇마루가 아닌 넓은 청을 두어 대청과 연결시키고 있어 이를 모두 대청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대청의 평면은 역 ㄱ형을 이루었으며 간수도 4간으로 증가하였다. 대청을 넓히는 대신에 양편 온돌과 유기적으로 접촉이 되도록 횡장(橫張)한 점, 동온돌 1간을 더 두기 위해 그 후면으로 간살이를 늘려잡아 ㄱ자형이 되게한 구상(構想)의 묘는 유례가 드문 것이라 하겠다. 정자의 동측3간에는 네개의 퇴주(退柱)를 세우고 그 위에 날개지붕을 얹었다. 이것은 차양(遮陽)과 풍우(風雨)를 위해 보완한 소위 “차양”이지만 바로 그 밑에 연지(蓮池)가 있는 경관 조성에도 보탬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소전(所傳)에는 정용준씨(鄭容俊氏)의 9대조가 영조(英祖)32년(1750) 몸채와 함께 병건(병建)한 것이라 한다.
사랑채
행랑채
연정 및 연못
중요민속자료 107-1 |
일심당 |
영천 정용준씨 가옥의 안채는 2칸 크기 안방과 4칸 크기 대청·건넌방을 일자로 배열하였고, 안방 아래로 3칸 크기의 큰 부엌과 긴 광채를 두었다. 이러한 ㄱ자집 형식은 영남지역의 큰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
중요민속자료 107-2 |
동서협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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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07-3 |
사랑채 |
영천 정용준씨 가옥의 사랑채는 대문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一자집이다. 사랑방·대청·대문·광·작은사랑·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문 왼쪽에 있는 문간채와 연결된 형태이다. 사랑방은 온돌방이며, 대청 3면에 여닫이문을 달아 사랑방의 협소함을 보완하였다. |
중요민속자료 107-4 |
행랑채 |
영천 정용준씨 가옥의 행랑채는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해 주고 있는 一자형 평면을 갖춘 집이다. 외양간과 방앗간, 광으로 이루어졌다. 방앗간에는 디딜방아를 설치하였으며, 안채에 있는 광채와 마주보고 있는 형태이다. |
중요민속자료 107-5 |
연정및연못 |
영천 정용준씨 가옥 밖의 작은 계곡에 있는 연못과 정자이다. 깊은 산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연못은 계곡을 크게 넓혀서 만들었는데 인공의 티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럽다. 정자는 온돌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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