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연사 覺淵寺
소재지 : | 괴산군 칠성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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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참조 및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
사진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보개산(寶蓋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창건 및 연혁〕
각연사의 창건에는 현재까지 두 가지의 이설이 전한다. 하나는 신라 법흥황 때에 유일(有一)대사에 의해 창건된 되었다는 설과 또 다른 하나는 신라말 경순왕시기에 경순왕의 원찰로서 통일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다.
각연사의 창건에는 하나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유일대사께서 이 근처에 절을 짓고자 했다. 처음에는 절터를 현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절말에 잡고 사람들을 모아 공사를 진행 하고 있었는데, 내내 치목한 이후 남은 대패밥이 다음날이면 말끔하게 사라지고 또 다음날에도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매우 신기한 일로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대사는 우연히 수 백마리의 까마귀떼가 날아와 대패밥을 입에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다음날 까마귀떼를 쫓아 가보니 거대한 수풀로 둘러쌓인 산중에 커다란 연못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까마귀떼는 이 연못에 대패밥을 떨어뜨리며 합장하듯 짖어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대사는 연못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세하며, 넓은 자리가 과연 천하의 명당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대사는 쌍곡리의 절을 계속 짓도록 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데려와 연못을 메우고 이곳에 새로운 사찰을 짓고자 했다. 연못을 메우는데 연못 안에서 광채가 보여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 1기의 석불이 계셨다. 이에 황급히 연못 속의 부처님을 꺼내 모시고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석불이 현재 각연사 비로전에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이는 유일대사와 관련된 창건설화로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로우나 그 역사적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각연사의 창건 및 연혁과 역사적인 사실이 부합되는 것은 오히려 통일대사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대웅전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각연사는 신라말 경순왕의 원찰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찰 본 역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통일대사탑비에 따르면 통일대사라는 분은 이 시기에 활동했던 승려였다. 따라서 창건 기록과 통일대사의 활동시기가 비교적 일치하고 있다. 또한 비로전 내에 걸려있었다던 “연풍군 장풍면 태성동 독점원 보개산 각연사 삼세여래 급 관음보살 개금기”에서도 각연사는 통일대사가 창건했다고 하고 있다. 이 외에 각연사의 가장 오래된 성보로 비로전내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상을 들 수 있다.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은 9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0세기 전후에 많은 수의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었다. 각연사의 비로자나불상 역시 이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역시 통일대사가 활동하던 시기와 부합한다. 통일대사 이전에 유일대사께서 각연사를 창건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각연사가 10세기 통일대사에 의해 크게 번창되었다는 것만은 역사적으로 명확하다 하겠다.
고려시대 각연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자료가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고려조에도 사찰이 번창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각연사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나타난다. 충청도 연풍현 불우조에 “각연사는 정자산(亭子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초에 각연사가 사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각연사 인근에는 2기의 부도가 모셔져 있는데 한기의 부도에는 “선적당(善跡堂)”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부도는 조선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조선초에도 사찰의 역사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상량문 기록에는 융경(隆慶, 1567~1572), 순치(順治, 1644~1661), 강희(康熙, 1662~1722)년간에 대웅전을 중수한 바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 당시의 건물은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선 중기에 매우 활발한 중창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찰에 건립되어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비로전이다. 비로전은 1648년에 만들어졌고, 1655년, 1899년, 1927년에 각각 중수하였다고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1768년에 건립했으며, 1771년에는 대웅전 내부의 삼세불을 개금했다고 한다.
근래 들어서도 불사가 계속되었다. 현재 각연사에는 비로전과 대웅전외에도 삼성각, 종각, 선원 및 요사가 건립되어 있다. 이 중 각연사의 요사와 비로전 뒤편의 선원은 1992년에 건립했으며, 삼성각과 종각은 1996년에 건립했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전·대웅전·칠성각·산신각 및 요사채 2동 등이 있다. 이 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인 비로전은 보물 제433호인 각연사 비로자나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집이며, 1975년에 보수하였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융경(隆慶)·순치(順治)·강희(康熙) 연간과 1768년에 중수되었으며, 그 안에는 석가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1771년에 개금한 기록이 전한다.
또, 대웅전내 동편에는 승려상이 있는데, 이 절의 창건자 유일이라는 설과 중국의 달마(達磨)라는 설이 있다. 흙으로 만든 것으로 높이는 130㎝이며, 머리에는 건모를 썼고 결가부좌한 채 양 무릎 위에 놓은 손에는 단장(短杖)을 들고 있는 대장부상이다.
그 밖에도 이 절에는 무게 937.5㎏의 범종(梵鐘)과 법고(法鼓)·운판(雲板)을 비롯하여 보물 제1295호인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와 보물 제1370호인 부도,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선적당(善跡堂)에 있는 부도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부도 및 비로전 동쪽에 있는 석조귀부(石造龜趺)와 팔각옥개석(八角屋蓋石) 등이 있다.
〔가람배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충청도 연풍현 불우조에 “각연사는 정자산(亭子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산천조에 의하면 “정자산은 장풍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내에 전하는 대부분의 기록에 의하면 “보개산 각연사”라는 표현이 더 많이 나타나면 최근에 영건한 일주문 역시 “보개산 각연사”라고 현판을 달고 있다. 현재 각연사가 위치한 주위 산들 중 보개산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산은 확인되지 않는다. 보개는 천개라고도 하면 불단의 위에 만들어져 있는 닫집도 일종의 보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각연사 전면에 펼쳐진 3개의 산 칠보산, 보배산, 덕가산이 절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 보개와 같다하여 보개산이라고 했다고 추정했다.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성리에서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각연사의 경내가 시작됨을 알리는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일주문에는 “보개산 각연사(寶蓋山 覺淵寺)”라고 현판을 달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나타나게 된다. 이 다리를 건너면 각연사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면에 매우 넓은 공간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마당에는 불전은 위치하고 있지 않으며 한 채의 요사가 세워져 있고, 멀리 상단의 대지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정면에 대웅전이 건립되어 있고 왼편으로 범종각, 대웅전 왼쪽 뒤편으로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다. 각 전각의 정면에는 넓은 마당이 만들어져 있다. 대웅전 오른편으로 다른 마당과 통하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넓은 마당이 나타나며 이곳에 비로전이 세워져 있다. 비로전 뒤편으로는 선원이 만들어져 있으나 현재 이 건물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각연사의 경내에 위치한 건물 및 석물 외에 주위 산간에 또 다른 석조문화재가 위치하고 있다. 사찰에서부터 오른편 산간에 만들어진 좁은 길을 따라 약 5분 정도 진행하면 이곳에는 2기의 석종형부도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각연사 남동쪽의 산길을 따라 10분정도 걸으면 통일대사 탑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30분정도 지나 암자골 능선의 중간부에 통일대사 부도가 건립되어 있다.
〔사찰풍경〕
각연사는 칠보산과 보개산의 계곡이 서로 만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역은 꽤 넓은 넓이를 갖춘 땅에 위치하고 있으나, 우뚝 솟은 주위의 거대한 산들로 인해 그리 넓게 느껴지지 않는다. 축대로 조성된 넓은 마당이 대웅전 전면, 비로전 전면, 요사 전면에 만들어져 있으나, 그 어느 곳 하나 넓다라는 느낌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지의 광활함을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광활함 대신에 거대한 산들이 펼치는 절경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면에 병풍처럼 둘러친 칠보산은 경외의 대상으로 다가오며 그 느낌은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각연사를 방문한다면 사찰의 명성에 비해 그 규모가 큼에 한번 놀라게 된다.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사찰이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데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산사가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찰의 앞, 뒤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산,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 뿐 사람의 인기척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곳이다. 가끔 사찰을 찾는 이가 있다하더라도 조용히 법당에 들러 예불할 뿐이다. 조용한 주위의 분위기가 짐짓 자신에 의해 깨질까 염려스러워 감히 소리내어 말하기 어렵다. 많은 유명한 산사가 사람들의 방문에 의해 어수선해지고 다시 이를 피해 선원을 만드는 역사가 계속 진행되는 것에 비한다면 각연사는 진정한 산사의 느낌을 간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용한 산사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각연사가 작고 볼품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각연사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이다. 이미 신라조에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신라말 고려초에는 대단한 사세를 갖고 있던 사찰이었다. 이런 결과 사찰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하고 있고, 경내 곳곳에는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석재가 산재한다. 특히 비로전 내에 모셔져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은 한국 역사에 있어서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성보이다.
각연사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산사의 고요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남지 않은 사찰이다. 우리는 많은 산사들이 번잡하고 어수선하게 변해버리는 모습을 무수히 지켜봐야만 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모습을 갖고 참배객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각연사의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하기를 기대한다.
교통안내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증평->36번 국도->도안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34번국 도->보광산관광농원->괴산->쌍곡계곡 입구에서 직진->태성차부수퍼식당 삼거리-> 우회전 ->4.7km->각연사
현지교통
괴산-태성리 간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태성리에서 하차, 1시간을 걸 어가면 각연사에 닿는다.
괴산이나 연풍면소재지에서 택시를 타면 1만5천원 정도. (문의 - 아산교통 043-834-3351)
주변관광지
쌍곡계곡, 선유동계곡, 조령산자연휴양림, 벽초 홍명희생가, 김기응가옥, 원풍리 마애 불좌상, 문경새재 도립공원, 수안보온천
입 장 료
주차시설
30대 가능(소형차)
도움전화
각연사 043-832-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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