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보 제4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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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당간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62.12.20 |
소 재 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
시 대 | 고려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 청주시 |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간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 하는 고려 광종 13년(962)으로,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 우리 문화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곳과 함께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의 세 곳에서만 철당간을 접할 수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현재 청주에는 이 유물과 관련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신라< 新羅 >·고려< 高麗 >를 통하여 수많은 사찰< 寺刹 >의 건립< 建立 >과 함께 설치< 設置 >된 당간< 幢竿 >들이 있었으나 대개가 현재 석조< 石造 >의 지주< 支柱 >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특히 당간에 명문< 銘文 >이 있어 그 건립년대< 建立年代 >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철당간과 공주< 公州 > 갑사< 甲寺 >의 철당간< 鐵幢竿 >뿐이다. 당간의 지주는 화강석< 花崗石 >으로 양지주가 마주 서 있고 그 사이에 철통< 鐵桶 >의 원형< 圓形 > 당간 20개를 연결시켜 12.7m의 철제당간을 세웠다. 주목< 注目 >할 것은 철제당간의 밑에서부터 셋째 번의 원형철통 표면< 表面 >에 철당기< 鐵幢記 > 명문이 양각< 陽刻 >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으로 건립년대< 建立年代 >가 준풍< 峻豊 > 3년, 곧 고려 광종< 光宗 > 13년(962) 3월 29일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 遺物 >이다. 현재 지주의 높이는 4.2m이고, 철제원통당간 1개의 높이는 0.63m이며 전체 높이는 12.7m에 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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