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 - 한성진 목사

문성식 2013. 12. 9. 22:35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 - 한성진 목사
(시66:16-20)


계속하여 기도론에 관하여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시간에는 "응답 받지 못한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제목은 더욱 완전한 기도
응답을 위한 말씀입니다. 또 한 주제를 여러 방향에서 말씀드리다 보니 중복되기도 합니다만 은혜로운 심정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응답 받을 수 없는 조건도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일까요?
먼저 응답이 없는 가장 큰 원인은 기도하지 않을 때입니다.
약4:3 상반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잘못 구한다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고쳐서라도 응답해 주시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가장 큰 죄는 예수 믿지 않는 죄요 가장 큰 실수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의 살인 간음 인구조사 등의 범죄도 승리와 평화가 넘칠 때 근신하여 기도하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사사시대에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도덕적 물질적으로 타락했지만 더 큰 원인은 복과 평안함을 주실 때 기도하지 않은 것이 주 원인이었습니다. 중세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의 무궁한 가능성의 시대를 주시니까 이것을 활용하지 않고 방심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기도 응답에 관한 말씀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인데 앞의 말씀 외에도 정욕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해서는 안된다.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등의 교훈을 많이 했습니다.
육신적인 욕심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동기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한다면 그것에 대한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모르드개도 대단한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에스더를 키워 파사 제국의 왕후를 만들어 자기 민족을 보호하려는 큰 뜻을 품었습니다. 그러니까 대권을 꿈꾸었습니다. 그런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정당성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에 느헤미야가 하나님 성전과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예와 권세를 입혀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위대한 것도 역시 이런 사심의 기도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아침에도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기독교 TV에서 동영상으로 어느 컴퓨터 프로그램 업계의 여성 사업가의 성공담을 듣는데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사명감으로 충성할 때 다른 사람에게 접대하지 않았지만 우리 나라의 유수한 기관들의 전자망을 조성해 주고 외국 기업과도 제휴를 맺는 복을 주셨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때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까요?
시66:18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했습니다. 즉 마음에 죄악을 품고 기도할 때입니다.

시35:13에 다윗도 악인들이 자기를 괴롭게 할 때 기도 줄을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사랑하며 기도할 때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다고 말씀합니다.
사59:2 이하에서도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
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하셨습니다.

그 다음 말씀 안에서 하지 않을 때입니다.
잠28:9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가 주 안에 있고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객관적인 뜻인 성경과 주관적인 뜻인 개개인에 대한 섭리가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를 봅시다.

고후12:7-10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병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개인적인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어느 소년이 세계인을 다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청년이 되어 그의 기도의 폭은 더 작
아져서 민족을 모두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실패하였습니다. 중년이 되어 그의 기도의 제목은 한 지역으로 작아졌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전도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가까운 친척마저도 전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제 그의 머리 백발이 된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기의 기도가 잘못된 기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함께 하셔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놀라운 전도의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듣지 아니하십니다.
사29:13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을 지적하실 때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문제점은 외형적으로는 모두들 그렇게 좋은 신자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유대인들만이 아닌 먼저 믿었고 경험도 많이 했으며 충성도 많이 한 사람들이 가장 잘 범할 수 있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즉 방심하다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식고 외형만 남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은혜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빈 껍질이 됩니다.
말1:7-9에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로 지적하신 무가치한 제물을 드리는 문제 때문에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는 말씀도 신약적으로 보
면 몸과 마음 드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의심할 때입니다.
약1: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외식할 때입니다(마6:5).
눅 18:11-12에 보면 바리새인의 외식적인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러나 이 기도는 의롭다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마6:7에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중언부언이란 잡다할 정도로 말을 길게 끌거나 아무 의미 없는 말을 거듭 반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문을 외운다든가 이렇게 뜻 없이 반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생각하시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40:1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하였습니다. 하박국도 합2:3을 보면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개집은 하루도 안 걸립니다. 그러나 궁궐은 수년 그 이상이 걸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아름답고 크게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십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란 없다'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응답도 응답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기도했다면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불순종할 때입니다(신1:43-46, 막11:25-26).
다음은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입니다(신3:26).
다음은 교만하고 완악할 때입니다(삿20:19-23, 슥7:12-13, 대하 7:14).

다음은 다른 자의 고통을 외면할 때입니다.
잠21:13에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을 때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며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렘7:16-18). 겔20:31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열심 없는 기도(렘29:13)나 뚜렷한 목적이나 무엇을 구하는지 모르는 기도에도 역시 응답이 없습니다(마6:7).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도 중요하지만 나의 믿음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서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기 전에도 아십니다. 그러나 기도는 사단을 물리치는 무기이므로 강하게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타인의 죄를 용서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6:14-15, 막 11:25-26).
그래야 너희 천부께서도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낙망하고 염려하며 구해서는 안됩니다(눅18:1-8, 빌4:6).
오직 믿고 감사하며 구해야 합니다.

<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 가지 기도 응답이 없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무 응답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회개하면서 하나
님 뜻대로 끝까지 구하면 응답되지 않을 기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