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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과 황옥공주의 신행길 - 가야 수로왕 하늘이 정해준 배필 인도 황옥공주를 만나다

문성식 2012. 11. 15. 13:20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꿈에서 '가락국왕 김수로는 하늘에서 내려 왕위에 올랐다.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는 상제님의 전언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자와 가락국으로 향했으나 수신(水神)이 노해 뱃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석탑을 싣고서야 무사히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정해준 배필을 찾아서

 

A.D 46년,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이역만리 타국에서 붉은 깃발 배를 타고 온 여인의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허황옥.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금관가야(김해)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의 공주 허황옥과 혼례를 올린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내용이다. 아유타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껏 말이 많다. 누군가는 인도 갠지스강 상류의 아요디아라고 했고 어떤 이는 태국 메남강 주변의 아유티아라고 주장했다. 또 황옥공주의 시호인 '보주태후' 덕분에 중국 사천성 가릉강 유역 '보주'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신행길의 주인공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알려진 허황옥(왼쪽)과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오른쪽)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두 황옥공주가 바다 건너 외국에서 왔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신기한 건 '외지인' 그것도 한반도 밖 '이방인'에 대한 반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수로왕과 황옥공주 사이에서 난 열 명의 아들 중 둘째와 셋째가 어머니 허황옥의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해 김씨와 허씨는 모두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후예다. 여기에 인천 이씨까지 더해진다. 허씨에서 갈린 인천 이씨는 고려 현종때의 '허겸'을 시조로 한다. 성(姓)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뿌리가 같다. 혼인할 수 없는 이유다.

 

수 천년 동안 잠들어 있던 이들의 로맨스는 <부산관광컨벤션뷰로>의 로드스토리 투어로 21세기, 새로 빛을 보게 되었다. '세기의 로맨스, 수로왕과 황옥공주의 신행길'이란 이름도 붙었다. 신행길이란 혼인할 때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거나 신부가 신랑집으로 가는 길을 뜻한다. 혼행길이라고도 불린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길이다. 황옥공주도 그랬을까?

 

신행길은 황옥공주가 가야에 처음 들어선 망산도와 유주암을 시작으로 이들이 초례를 치뤘다고 전해지는 흥국사를 지나 잠들어 있는 수로왕릉과 허황후릉까지 이어진다. 만남과 혼례, 죽음까지 아우르는 길이다. 아쉽지만 걸어서는 이동이 어렵다. 자가차량이 있으면 가장 좋다. 그게 아니라면 부산시에서 관광객들의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갖춘 브랜드 택시 등대콜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신행길'뿐만 아니라 부산 전역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길과 풍광을 일반 택시보다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

 

신행길을 만들기 위해 직접 인도까지 다녀온 <부산관광컨벤션뷰로> 최부림 실장은 “<삼국유사>를 야사(野史)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그 동안 김수로왕과 황옥공주의 이야기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며 “디테일한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신행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이야기”라며 이 길이 품은 스토리에 대해 집중하기를 바랐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 자녀들의 사랑이야기는 아니지만 2000여년 전의 국제결혼이라면 제법 센세이셔널한 일이 아니었을까.

 

황옥공주와 수로왕이 혼례와 첫날밤을 치른 흥국사

 

러브스토리 따라 가는 가야의 역사

 

황옥공주와 수로왕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되는 곳은 진해시 용원동 앞 바다의 망산도다. 이름부터 '기다림'을 품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살펴보자. 왕이 된지 7년이 넘도록 혼자인 수로왕은 혼인하라는 신하들의 청에 “하늘이 보내줄 것”이라며 유천간을 작은섬으로 보낸다. 지금의 망산도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허황옥 일행이 탄 배가 붉은 돛과 기를 달고 나타난다. 수로왕은 직접 황옥공주를 맞이해 혼례를 올린다.

 

이때 황옥공주가 타고 온 돌배가 뒤집혀 유주암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망산도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자리한 바위다. 망산도는 거북이 등짝같이 갈라진 바위들로 가득한데 이 역시 한반도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라 한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유주비각과 유주비가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세운 유주비는 1908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 허씨유주지지'라고 새겨진 문구가 이곳을 통해 허왕후가 가야로 들어와 수로왕을 만났음을 전한다. 아쉽지만 유주비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만났으니 혼례를 올려야 했을터다.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을 치르며 세기의 로맨스를 완성(?)한 공간이 바로 흥국사다. 부산 명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수로왕이 왕후 허황옥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유해 이곳을 '명월산'이라 이름 했다고 전해진다.

 

“수로왕은 이곳 명월산 흥국사에서 허황옥과 혼례를 치르고 환궁했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국제 결혼식이 열린 장소이지요. 흥국사에 남아있는 사왕석을 보더라도 이곳에 인도의 영향이 끼쳐졌다는 걸 알수 있어요. 두 마리 뱀이 부처를 호위하고 있는 문양,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지요.”

 

흥국사에서 수로왕 금관가야, 김해김씨의 시조 수로왕이 잠들어 있다. '납릉'이라고도 불린다. 납릉 정문에는 인도에서 흔한 쌍어문양이 새겨져 있다. 수로왕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상기시킨다. 금술 좋았다고 전해지는 수로왕비(김해에서는 수로왕비릉으로 통일해서 부르고 있다)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부분을 두고 학자들은 “수로왕과 허황옥은 각자 독자적인 정치 구역이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단다. 황옥공주가 그저 단순한 왕의 비(妃)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로왕과 해로했다고 전해지는 인도 아유타국 황옥공주, 수로왕비의 릉

 

수로왕의 탄생설화를 전하는 구지봉은 수로왕비릉 자락에 있다.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고 '구수봉'이라고도 부른다. 야트마한 언덕이지만 구지봉 자락은 가야의 건국설화를 품은 곳이다. 본래 이곳에는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들의 구간(九干)들이 있어 이들이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A.D 42년, 이곳 구지봉으로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담긴 금상자가 내려온다. 6개의 황금알 중 맨 처음 태어난 이는 수로(首露)란 이름을 얻는다. 가장 먼저 머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가 바로 6가야의 하나인 대가락, 가야국의 왕 김수로이다. 구지봉 정상에 자리한 거북이 머리 모양의 바위가 거북 설화를 한번 더 알려준다. 거북 바위 옆으로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의 필체를 담은 '구지봉석'이 있다. 뒤쪽에 자리한 전망대에서는 김해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락국의 건국신화를 품은 곳에서 가락국의 본진이던 김해를 보고 내려오는 길, 구지가가 기다리고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놓아라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가야국 시조, 수로왕의 탄생설화는 수로왕비릉에서 여전히 함께 머물고 있다. 세기의 로맨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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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남해제2고속도로지선→가락IC→가락대로 58번 지방도(부산신항역 방면)→부산종합화물터미널 지나서 우회전(창원 방면)→송정공원→망산도(~유주암~유주비각)→천자로→녹산산업19길→흥국사→가락대로→분성로→수로왕릉→수로왕비릉

 

※ 위 정보는 2012년 5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글·사진 이소원 취재기자 / 한국관광공사  

발행일  201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