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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도 깊숙한 내륙에 위치한 죽장면의 수석봉(水石峰)은 다소 생소하다. 영천군 자양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릉에 솟아 있지만 아는 사람이 드문 산이다. 산자락을 깊숙이 파고 흐르는 자호천의 물길은 영천댐의 젖줄이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몰려드는 인파로 넘쳐나지만 정작 수석봉은 조용하기만 하다. 아직은 등산로마저 제대로 찾기가 힘들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호젓한 산으로 찾는 사람 또한 많지 않음은 물론이다.
- ▲ 숫돌봉, 수틀봉으로 알려진 812.5m봉의 전망바위. 운치 있는 소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바위가 북서쪽 일대를 훤하게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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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이 가진 이름(수석봉)만으로 생각한다면 물과 돌이 어우러진 아름다움부터 연상하게 된다. 그렇지만 영 딴판인 것은 숫돌이 많이 나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숫돌은 칼, 낫, 도끼 따위의 쇠를 갈아서 날을 세우는 데 쓰는 돌로 경상도 지방에서는 수틀이라 이른다. 아직도 산 아래의 영천지방 마을에는 수십 년 전 동네 어른들이 이 산에서 채취해 짊어지고 왔다는 숫돌이 이제는 닳아서 손바닥만큼 작아진 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숫돌봉 또는 수틀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석봉은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다. 사실 수석봉 표석이 서 있는 봉우리는 국립지리원에서 제작한 지형도에 수석봉으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로는 문암봉(門岩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산자락의 마을 이름과 골짜기에도 문암(문바위)이라는 지명이 들어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최근 영천지역 사람들은 국립지리원에 민원을 접수했다고 한다.
- ▲ 31번 국도변에서 건너편에 자리한 보현사와 계곡 위쪽으로 수석봉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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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현재 지형도에 표기된 수석봉에서 북서쪽에 있는 812.5m의 암봉이 본래 수석봉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잘못된 지명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영천과 포항시가 지명위원회 등을 열어 논의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
산행은 들머리인 문암마을 이대감식당에서 보현암~문바윗골~광천리 갈림길능선~750.5봉~수석봉 정상에 올랐다가 812.5m의 암봉을 거쳐 805m봉을 지나 동릉을 따르다가 도덕골의 바울기도원~까치소~31번 국도로 내려섰다.
포항~죽장을 잇는 31번 국도변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서쪽 건너편에 자리한 보현사가 빤히 보이고 계곡 위쪽으로 수석봉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가뭄으로 말라버린 자호천을 건너 절집으로 들어섰지만 인적은 느낄 수 없고 대신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그렇게 오래된 절집은 아닌 듯 하고 주변에는 잡초에 묻혀 쓰러져가는 민가도 보인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절 뒤편으로 돌아드니 길은 왼편 계곡으로 이어진다.
- ▲ 자호천 상류의 죽장면 소재지와 건너편 봉화봉, 그 너머로 희미하게 조망되는 낙동정맥의 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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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곡이 문암골로 한동안 골짜기를 따라 오르게 된다. 골짜기는 파헤쳐진 산판길로 경사도 제법 가파르다. 수변구역이라 쓰인 표지를 지나 한 굽이를 넘어서면 계곡이 열리면서 멀리 산릉이 시야에 들어온다. 계곡 오른편에는 건물이 있었던 흔적과 지붕으로 쓰였던 듯한 녹슨 함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5분이면 닿는 갈림길에서 오른편 산길은 상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편 계곡 길로 들어선다. 계곡을 건너 산 사면을 따라 가로지르는 묵어버린 산판길로 이어진다. 이곳은 몇 년 전 벌목을 하면서 만든 산판도로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차츰 길이 묻히고 산딸기나무, 두릅나무 등이 잡목과 뒤섞여 자라면서 길 찾기가 애매하다. 여름에는 긴바지에 긴팔 옷을 필히 착용해야 할 것 같다.
일단 희미한 산판길이 두 갈래로 나눠지는 지점에서 작은 계곡을 건너 750.5m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을 보고 적당히 나아간다. 이미 산길은 찾을 수 없는 곳. 갈림길에서 30분이 지날 즈음이면 광천리로 연결되는 능선 길과 만난다. 뒤이어 영천시와 포항시를 나누는 경계 능선 갈림길에 이르고 곧 750.5봉에 닿는다.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한 이 능선 길은 포항 또는 영천지역 산꾼들이 간혹 시경계 종주산행을 하는 관계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리본도 종종 볼 수 있다.
- ▲ 드높은 겨울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한 도덕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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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 삼각점이 묻혀 있는 750.5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짧은 암릉지대를 오르면 전망바위를 만난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이 바위에 올라서서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니 거슬러 오른 골짜기 아래로 자호천이 휘돌아 흐른다. 하천 상류의 죽장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건너편에는 봉화봉(610m)이 우뚝하다. 발걸음을 돌려 인적을 느낄 수 없는 한적한 능선 길로 잇는다. 경사각이 밋밋한 오름길은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으로 덮여 있지만 길 찾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이는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증거다. 곧이어 무덤 2기를 차례로 지나 수석봉에 올라선다.
잡목이 무성한 헬기장 한쪽 귀퉁이에 수석봉이라 새긴 표석과 삼각점이 정상임을 알려준다. 상봉에서의 조망은 봉화봉 너머 침곡산에서 동남쪽의 운주산으로 뻗어가는 낙동정맥의 산릉만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정상에서 하산 길은 두 갈래다. 정상석을 기준으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보현사로 연결된다. 정상석 왼편으로 북서쪽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 ▲ 1.헬기장 한쪽 귀퉁이에 표석과 삼각점이 자리한 수석봉 정상. /2.갈림길 표시가 있는 사거리. 뚜렷한 산판길 왼편은 개양재, 오른편은 옛 화전민들의 집터가 남아 있는 샛별마을로 해서 도덕골로 이어진다. / 3.까치소 물결이 찰랑대는 자호천을 건너면 31번 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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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5m봉이 원래의 정상
능선이라기보다는 평탄하고 아늑한 숲길을 걷는 기분이다. 10분쯤이면 맞은편 능선을 두고 산길은 오른편으로 꺾어진다. 곧이어 묘지를 만나고 10분쯤 뒤면 812.5m봉이다. 이곳이 영천 쪽 사람들이 주장하는 본래의 수석봉이다. 왼편으로 약간 나아가면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바위전망대다.
운치 있는 소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바위 위에 오른다. 북서쪽 일대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면봉산을 비롯해 베틀봉, 작은 보현산 등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산들을 울타리 삼아 발아래로는 하늘 아래 첫 동네 두마리 일대다. 죽현(대태)고개 왼편으로 작은보현산, 천문대를 이고 있는 보현산, 기룡산, 꼭두방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되돌아 나와 북동쪽 능선을 따라 3분정도 내려서면 안부에 닿게 되는데 여기서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리본이 매달린 왼편의 확실한 산길은 죽현고개로 내려서는 시경계 종주능선 길이다. 안부에서 오른편 805m봉을 쳐다보고 무조건 오른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산길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다. 길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다니지 않다보니 낙엽에 묻혀버린 것이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산길은 주능선만 놓치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은 없다.
밋밋하게 오르게 되는 805m봉은 수목으로 휩싸여 조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봉우리에서 오른편으로 약간 꺾어들면 도덕골과 개일동을 가르는 동릉을 따르게 된다. 곧이어 봉분이 허물어진 묘지를 지나면 내리막이다. 안부를 지나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사거리 갈림길에 이른다.
누군가 친절하게 갈림길 표시를 해 참나무에 묶어 놓았다. 좌우로는 제법 넓고 뚜렷한 산판길로 왼편은 개양재를 거쳐 서운암으로 잇는 길이다. 오른편은 옛 화전민들의 집터가 남아 있는 샛별마을로 해서 도덕골로 이어진다. 단체 산행일 경우에는 여기서 뚜렷한 좌우의 넓은 산길로 내려서는 것이 상책이다. 여기서 계속 이어지는 능선은 길 찾기가 어렵고 시간도 40분 정도는 족히 지나야 기도원 아래 도덕골 산판도로에 닿는다.
일단 완만한 능선으로 접어들어 잠시 후면 밀양 박씨 묘지를 지나 곧 수풀에 반쯤 묻힌 블록이 깔린 헬기장이 나온다. 희미하던 산길은 이곳에서 끊어진다. 방향을 왼편으로 틀어 능선을 더듬어 이어가면 묘지 2기를 차례로 지난다. 오래전 벌목해 쌓아 놓은 썩은 나뭇가리 사이로 내려서면 낙엽송지대를 만난다. 낙엽송 지대를 등진 채 잡목덩굴을 헤집고 곧장 내려서는 능선을 따르면 산길을 만날 수 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은 자갈길이라 조심해서 발을 옮겨야 한다.
능선 길을 벗어날 즈음이면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고 오른편 계곡에 기도원이 보인다. 길은 왼편으로 떨어지면서 무너져가는 기도원의 옛 집이 있는 계곡을 만나고 곧이어 기도원으로 잇는 도로다. 도로를 따라 20분이면 까치소산장을 지나고, 까치소 물결이 찰랑대는 자호천을 건너 31번 국도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난다.
- 아늑한 맛이 있는 포항 내륙의 산
전망 좋은 812.5m봉이 원래 정상, 805m봉부터는 길 희미해-
산행길잡이
○보현사~집터~갈림길~750.5봉~수석봉~812.5봉(전망바위)~805m봉~사거리 갈림길~기도원 옛집~까치소 산장~31번 국도 (5시간 소요)
○보현사~약사전~동릉~수석봉~750.5봉~배고개 갈림길~광천리 (4시간 소요)
○보현사~약사전~동릉~수석봉~812.5봉~805봉~사거리 갈림길~샛별마을~기도원~까치소 산장~31번 국도 (4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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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수석봉 산행을 위한 대중교통은 우선 포항을 경유해 죽장면으로 가야 한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054-273-3281~3)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죽장행 700번 시내좌석버스(신안여객 054-256-8500)를 이용, 문암마을 또는 보현사 들머리에 내리면 된다.
서울→포항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ARS 1688-4700)에서 15~30분 간격(06:00~익일 00:30) 운행.
서울→포항 동서울 종합터미널(ARS 1688-5979)에서 10~30분 간격(06:00~23:30) 운행.
부산→포항 노포동 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10분 간격(05:10~23:30) 운행.
대구→포항 동부시외버스터미널(053-756-0017~9)에서 10분 간격(04:30~22:00) 운행.
숙식(지역번호 054)
산행 들머리 주변에는 숙식 해결이 마땅찮다. 숙식은 교통이 편리한 포항 시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포항은 철강도시로 호텔을 비롯한 깨끗한 장급 여관이 많다. 특히 기차역에서 가까운 죽도시장에서는 신선도가 좋은 활어회를 싼값에 맛볼 수 있다. 또 물회를 비롯한 과메기 등 다양한 먹거리 식당이 많다. 즉석에서 삶아주는 문어는 별미로 산꾼들의 술안주로 적당하다. 죽장면 일광리에는 향로산장(247-8848)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