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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갈천오토캠핑장+암산~미천골 산행

문성식 2012. 9. 1. 19:26
[르포] 양양 갈천오토캠핑장+암산~미천골 산행
▲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나무 거목. 암산 능선은 갖가지 거목들의 전시장이었다.

 “어휴~, 이렇게 복잡한 텐트를 어떻게 쳐. 그냥 비박하는 게 낫지 않겠어?”

지프 트렁크에 잔뜩 실린 오토캠핑 장비를 내리자 일행 모두 입이 떡 벌어진다. 늘 인원수에 딱 맞는 ‘전투용 텐트와 취사장비’를 가지고 다니던 기자 일행에게 취침공간 외에 생활공간과 햇볕 가리개 타프까지 갖춘 가옥형 대형 텐트는 낯설 수밖에 없다. 텐트를 설치하고, 타프를 띄우고, 거기다 취사용 테이블에 쌍버너를 얹고 테이블에 의자까지 세팅하고 나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재도전만에 오른 강원 오지의 명산

“그래도 좋긴 좋은데. 서서 걸어 다닐 수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아름드리 소나무 숲 속에 텐트를 치고 여유를 누리며 마음 놓고 취사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옆 텐트는 부부 두 사람만 단출하게 캠핑을 즐기고 있다. 가족이 더 있다면 애완견 두 마리. 이러한 호젓함은 캠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일 게다.

위쪽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텐트 역시 한 가족이었다. 아래쪽 부부 텐트는 작은 모닥불을 잠시 피웠다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 모든 일을 해결하는 반면 위쪽은 시끌벅적이다. 고기와 소시지를 굽고 찌개를 끓이고…. 이것 또한 캠핑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취사야영이 허용되던 1990년까지만 해도 등산의 즐거움 중 하나가 캠핑이었고, 밥해 먹는 재미였다. 그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는 게 오토캠핑이다 싶어졌다.

그런데 우린…. 기껏해야 삼겹살에 김치찌개가 전부이니. 황원선씨는 느닷없이 오토캠핑 취재산행에 동참한 김영미(강릉대 OB)씨에게 “앞으로 잘해 보자”며 의기투합을 요구하지만 글쎄, 텐트 치는 서투른 모습이나 밥 짓는 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틀림없이 봤을 텐데 또다시 함께 산에 올까?


▲ 억겁세월의 기를 뿜어내는 너덜지대에 올라서자 새 기운을 얻은 듯 얼굴빛이 환해졌다. 짙은 숲 아래로 갈천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암산 남서릉.
음력 4월 29일 그믐날이다. 달이 전혀 없으니 별은 더더욱 반짝인다. 오지는 이래서 좋다. 거기에 랜턴을 밝혀놓고 편안한 의자에 앉거나 매트리스에 드러누워 새카만 밤하늘을 점점이 수놓은 별을 바라보니 더 이상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으랴.

“뭔 날씨가 이래! 이렇게 일기예보가 안 맞아도 되는 거야!”

새벽 일찍 일어나 미천골자연휴양림 시설지구 최상단까지 차 한 대를 올려놓고 계획한 암산(岩山·1,152.7m)을 향해 20분이나 올랐을까,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염동우 기자는 카메라 노출이 나오지 않아 사진촬영이 어렵다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산행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취재 목적상 의미가 없다.

“빽, 빽~.”

이렇게 6월 12일 첫 번째 암산 취재 시도는 무산되고 두 번째 시도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인 15일 밤. 서울을 출발할 때 멀쩡하던 날씨는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내면을 들어설 무렵 요동을 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새카맣고 번개는 먹구름 곳곳을 찢을 듯한 기세로 난리 친다.

비가 워낙 많이 내려 닷새째 놔둔 텐트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하며 갈천오토캠핑장에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도 집 나간 자식 맞아주는 듯 따스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벗겨지고, 엊그제 텐트 친 날 밤 그랬듯이 별이 총총히 떠오른다. 그러자 ‘비박파’인 김영미씨와 염동우 기자는 텐트를 빠져나가 저마다 그럴싸한 거목 소나무 아래 매트리스를 펴고 드러누워 밤하늘의 신비로운 풍광을 즐긴다.

“아니 이거 인수봉 대슬랩보다 더 가파르잖아. 계속 이러면 장딴지에 쥐나겠는데.”

기자에게 암산의 풍광이 뛰어나다고 귀띔해 준 것은 갈천리 주민 엄익환(嚴翼桓·74)씨. 70 중반의 고령에도 젊음을 잃지 않고 있는 엄익환씨는 “암산은 구룡령 도로가 확·포장되면서 사라진 기와집바위, 오관석, 갈천약수 등과 함께 갈천5보(寶)로 꼽히는 명산”이라며 “능선 곳곳에 기암이 많고 정상에 서면 조망이 좋다”는 말로 귀를 솔깃하게 했다.

56번 국도인 구룡령 도로에서 시작되는 암산 산행은 무엇보다 거목이 인상적이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모아 잡아도 껴안기 어려울 만큼 굵게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 등 거목들이 능선 곳곳을 메우고 있고 능선 뒤로는 구룡령에서 점봉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기운차게 뻗어나가 있다. 그런 자연환경에 풍수지리적으로도 위치가 좋은 덕분인지 능선 곳곳에 묘가 들어서 있다.

“이럴 줄 알고 장갑도 가져왔어요. 긴 팔 옷도 예비로 챙겨두었고요.”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기는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였고, 간혹 제대로 가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길이 희미했다. 길이 만만치 않아지자 암산 산행에 재도전한 김영미씨는 씩 웃으며 철저한 준비를 자랑하고, 모처럼 취재산행에 동참한 배병달씨는 “이렇게 힘든 산 같았으면 미리 얘기해 주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툴툴댄다.

▲ 1. 오를수록 원시적 기운이 느껴지는 암산 능선길. 정상 못 미쳐 능선이다. 2. 암산 남동릉 산의 기암인 시루떡바위. 3. 암산 북릉에서 만난 참나무 거목. 세 사람이 껴안아도 모자랄 정도로 굵었다. 4. 불바라기약수가 있는 약수골 상단부.
바람이 강하게 분다. 구름이 살짝 덮여 있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런 우리 마음을 눈치챘는지 산새들이 지저귀며 숲의 분위기를 한결 정겹게 바꿔준다. 간간이 리본이 보인다. 약초꾼들이 묶어놓은 노끈도 있지만 산악회 리본도 보인다. 그래도 산꾼들이 뻥 뚫린 산길만 따르는 게 아니라 약초꾼들의 족적도 좇는다 싶어 ‘동료의식’에 뿌듯해진다.

“아니 무속인들 다 뭐 하는 거예요. 이런 데 와서 굿이라도 해야지. 그래야 기를 제대로 받을 거 아니에요.”

거목들은 하늘로 곧게 뻗기만 한 게 아니다. 땅에서 하늘 향해 줄기를 뻗자마자 수직으로 꺾여 땅과 수평을 이루며 자라는 굵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우주의 기를 다 끌어안으려는지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으며 자란 거목도 있다. 그렇듯 묘한 기가 느껴지는 거목이 암산에 많은 것은 역시 이 산이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일 게다.

물영동제 때 얼어붙은 제상 음식 뿌려지면서 기암 탄생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20분쯤 지난 오전 9시10분. 숲이 벗겨지면서 반짝이는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거대한 바윗덩이는 사면을 따라 켜켜이 맞물리면서 거대한 너덜겅을 이루고 있었다. 설악산 귀때기청봉에 비해 규모는 비할 바 못 되더라도 바윗덩이 하나하나의 크기는 훨씬 크고 모양도 다양했다.

그 너덜겅은 바위틈에서 맑고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며 대기를 정화시켜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멋진 조망도 선사해 주었다. 산허리를 가르며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구룡령 도로, 그 오른쪽으로 갈전곡봉(1,204m)을 거쳐 구름 덮인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바로 앞에 우뚝 솟구쳐 있다. 대간은 짙은 숲이 우거져 한층 더 기운이 넘친다. 이런 명당자리를 휙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물 한 모금 마시고 새소리 들어가며 너덜겅과 숲에서 나오는 맑은 대기를 실컷 마시고, 눈앞에 펼쳐진 백두대간에서 기운찬 기를 몸속 깊이 끌어 담는다.

“이게 시루떡바위 아니에요?”

산행 전 엄익환씨는 “암산이 삼석산(三石山)이라 불리는 것은 정상인 복판석봉 양옆에 가석산이 솟아 있기 때문”이라며 암산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전설을 몇 가지 얘기해 주었다.

▲ 1. "진드기 달라붙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김영미씨가 웃으며 진드기가 있나 살피고 있다. 2.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약수맛이 강하다는 불바라기약수.
“옛날 영동지구에서 용왕제 격인 ‘물영동제’를 지낼 때 제상에 차려놓은 음식 중 추위에 얼어붙은 시루떡을 던진 게 시루떡 바위가 되었고, 몽돌은 감자떡, 감투바위는 곶감을 집어던지면서 생긴 기암이라 전해요. 이 산에는 꿩이 없어요. 매가 다 잡아먹었기 때문이래요. 그 매바위도 산에 있어요. 그건 제상에 올려놓았던 얼어붙은 닭이라 전하고요.”

그러고 보니 조망을 즐기던 너덜지대의 바위들이 감자떡바위였던 셈이다. 너덜지대 위쪽의 시루떡바위(N37 54 57.5 E128 31 31.1 / 1,040m)에 다가서자 정상부가 눈에 든다. 밑에서 볼 때는 숲 우거진 평범한 산이었건만 예서는 바위절벽을 늘어뜨린 채 낙락장송이 우거져 있는 것이 전형적인 산수화풍의 멋진 봉이었다.
시루떡바위를 지나면서 능선길은 한층 험해진다. 넓적넓적한 바위가 나타나고, 오르내리막이 심해졌다. 그런가 하면 산목련이 하얀 함박꽃을 활짝 피워놓고 이끼 핀 바위에 야생화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자라고, 고사리가 대를 길게 뻗어 올리며 밭을 이루고 있는 등 원시적 분위기가 한층 깊어갔다. 그러다 아름드리 주목을 지나 석이버섯 덮인 바위를 거슬러 정상에 올라선다.

엄익환씨 말 그대로 ‘복판석봉’이라고도 불린다는 정상의 조망이 대단했다. 낙락장송 어우러진 바위벼랑은 그림 같은 풍광과 시원스런 조망을 선사한다. 서로 구룡령에서 점봉산을 향해 내리닫은 백두대간이, 동으로는 60리 길이라는 미천골이 깊이 파여 있고 조봉 능선이 그 뒤를 든든히 받쳐주며 하늘금을 긋고 있었다.

이제 대간을 향해 전진한다. 우리의 산행 코스는 암산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백두대간의 아미봉(1,280m)으로 다가선 다음 응복산(鷹伏山·1,359.6m)으로 향하다가 마늘봉(1,126.5m)에서 북쪽 불바라기약수로 떨어지는 것이다.

정상을 벗어나자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가 더욱 많아지고 몇몇 거목은 홀로 오랜 세월을 보내는 게 쓸쓸했던지 썩어 부러져나간 나무에 새로운 나무를 얹어 키우고 있기도 했다. 엄익환씨가 가석봉이라 얘기한 듯한 바위 턱을 내려서자 오른쪽으로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자연은 참으로 묘하다. 이렇듯 거목 숲 우거진 산에 어떻게 이리도 커다란 바윗덩이가 많은 너덜지대를 만들어놓았는지. 너덜지대에 닿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윗덩이 밑에서 억겁세월 움츠리고 있던 혼령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듯 섬뜩한 느낌마저 주는 냉기다.

앞장서 걷던 배병달씨가 뱀이 나올지 모른다는 말에 멈칫거리는 사이 황원선씨가 추월해 나아가다 살짝 구름이 몰려오자 방향을 잃고 엉뚱한 지릉으로 쫓아 붙다가 낭떠러지에 놀라 되돌아선다.

암산을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12시20분 아미봉으로 향한다. 희미하던 산길은 백두대간이 가까워 올수록 뚜렷해지는 반면 암산 일원에서 보이지 않던 흔적들이 나타나고 간혹 김영미씨는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과 함께 괴성을 지른다.

“진드기는 정말 싫어요. 학창시절 백두대간 종주할 때 가장 괴롭히던 놈들이에요. 피 빨아먹겠다고 한번 물면 절대 빠지지 않아요. 으으, 징그러워.”

산길을 따르는 사이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나타난다. 가려운 몸을 긁어대느라 껍질이 벗겨져 나가다 못해 빤질빤질해진 나무도 있고, 운동장처럼 널찍하게 다듬어진 곳도 나타난다. 이렇게 멧돼지가 많은 곳은 대개 진드기가 많다. 진드기라는 놈은 나뭇가지 같은 곳에 붙어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슬쩍 달라붙은 뒤 옷 안으로 들어가 가장 연한 살에 달라붙는다. 배꼽이나 사타구니 주변이 진드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간혹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가 머리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다 그대로 박혀 죽기도 한다.

▲ 1. 남산 남서릉 상의 너덜지대 마당바위.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가 바라보인다. 고개 왼쪽 산이 약수산이다. 2. 원시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불바라기약수 상단의 약수골.
이승복기념관이 있는 평창군 진부면 속사리 출신인 김영미씨는 강릉대 산악부 시절인 2002년 한해 휴학하면서 모교인 속사초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여자 산 친구와 함께 50박51일간의 백두대간 종주를 한 바 있고, 그 힘으로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도 오르고 로체(8,516m)도 올랐다. 여성 산악인으로서는 오은선씨에 이어 두 번째 7대륙 최고봉 완등자이기도 하다. 그런 ‘철의 여인’이건만 쌀알만 한 크기의 진드기의 급습에는 깜짝깜짝 놀란다.

마늘봉에서 불바라기약수까지는 멧돼지나 다니는 험로

“와~, 살았다. 이제 탄탄대로다.”

진드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솔바람에 땀 식히고 풀숲이나 산죽을 스치며 걷다 보니 백두대간상의 아미봉(1,280m) 정상에 올라선다(구룡령 3.32km, 응복산 3.39km). 봉 양옆으로 뻥 뚫린 산길이 나타나자 모두 얼굴에 미소가 맴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분쯤 지나면서 모두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탄탄대로처럼 뻥 뚫린 백두대간 길을 따라 응복산을 향하다 오후 2시20분 마늘봉(1,126.5m) 정상에서 계획대로 북쪽으로 뻗은 짤막한 지릉을 따라 불바라기약수로 향했다. 그 순간부터 약 2시간 동안 배병달씨와 황원선씨는 침묵과 툴툴거림의 연속이었다.

▲ 1. 암산 정상 부근의 능선은 제법 거친 바윗길로 이어진다. 2. 심산유곡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천골. 차단기 위쪽.
“아니 뭔 길이 이래. 내가 무슨 멧돼지야, 멧돼지 발자국 따라 내려가게.”

워낙 이름난 약수인지라 대간으로 길이 이어지려니 했던 짐작은 짐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대간을 벗어나자마자 우거진 숲으로 들어서고 밑으로 내려설수록 경사가 가팔라지고 발을 디딜 때마다 흙이 밀리거나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수시로 깜짝깜짝 놀라며 내려서야 했다. 능선이 너무 험해 얼굴색까지 변한 배병달씨가 “완전히 심마니나 다니는 길인 것 같다”고 하자 황원선씨는 “심마니가 미쳤어, 이런 델 다니게. 짐승도 안 다닐 거야”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 암산을 소개해준 엄익환씨. 6·25때 화를 피하기 위해 잠시 대구에서 살던 때를 제외하곤 평생 갈천에서 살아온 토박이 주민이다. 막내아들 정현씨와 함께 갈천오토캠핑장을 관리하는 엄씨는 암산과 미천골 외에도 구룡령 옛길 등 주변에 트레킹할 만한 곳이 많다며 많은 도시인들이 찾아주기를 부탁했다.
불바라기약수가 있는 약수골 상단 물줄기에 내려선 것은 오후 3시45분. 이후 불바라기약수 아래 계곡으로 떨어지기까지 또다시 1시간 가까이 험한 계곡을 타거나 사면을 가로질러야 했다. 막판에는 물줄기를 바로 밑에 두고도 절벽을 이룬 사면을 우회하기 위해 급경사 흙사면을 내려서자니 낭떠러지 아래 개울로 처박힐까 걱정스러워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간다. 유독 내리막에 약한 황원선씨의 입에서는 툴툴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얼마나 좋은 물이기에 이렇게 우리를 고생시킨 거야? 한 번 마셔봐야지.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약수라며?”

불바라기약수를 한 모금씩 마시며 갈증을 씻어낸 뒤 약수골을 빠져나오자 오후 햇살이 사리골이라고도 불린다는 미천골 골짜기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앞으로도 미천골자연휴양림 상단 차단기까지 4.8km, 이어 차단기에서 매표소까지 또다시 6.6km를 더 걸어나가야 한다. 취재팀 다섯 명 모두 긴 산행에 지친 상태지만 임도로 내려서자 불바라기약수를 향할 때와 달리 표정이 편안하다. 하지가 얼마 남지 않은 덕분에 오후 5시가 넘어가는데도 해는 중천에 떠 있다.

“뭘 해먹을까? 닭을 삶아? 아냐, 삼겹살이 낫겠다. 빨리 먹을 수 있고.”

모두 배가 홀쭉해진 상태. 벌써 엿새째 갈천오토캠핑장을 지키고 있는 텐트가 그리워지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경험 많은 산꾼이 앞장서야…아미산에서 구룡령으로 내려서면 수월

망산은 오지의 심산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자연미가 살아있는 산이다. 산길 또한 희미해 새로운 산다운 분위기를 줄곧 보여준다. 하지만 백두대간상의 마늘봉(1,126.5m)에서 미천골 상단 불바라기약수까지는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형도를 제대로 읽을 줄 알고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앞장서야 산행이 가능하다. 미천골을 잇는 산행이 자신 없다면 아미봉(1,280m)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능선길을 따라 약수산(1,306.2m)을 거쳐 56번 국도가 가로지르는 구룡령(1,013m)으로 내려서는 게 바람직하다.

암산 산행은 우선 기점을 찾는 게 관건이다. 갈천약수 입구에서 구룡령으로 향하노라면 갈천마을회관과 구룡령 옛길 입구를 지나 도로가 왼쪽으로 휜다. 이어 오른쪽으로 민가 한 채가 보이는 지점을 지나면 ‘명개리 17km’ 안내판이 나타나고 도로 오른쪽에 적사용(積沙用) 콘크리트 시설물이 나온 다음 도로는 오른쪽으로 급격히 꺾인다. 여기서 300m쯤 더 오르면 도로 왼쪽에 낙석방지용 축대가 보인다. 축대 직전 도로 왼쪽으로 6월 말 현재 공사용 자재가 쌓여 있는 공터가 산행 기점이다(좌표 N37 54 34.6 E128 30 45.7 / 501m).

공터에서 마주 보이는 마른 계곡은 ‘점골’이라 불리는 골짜기이며, 산길은 골 왼쪽 급사면을 가로지르며 시작된다. 곧 능선으로 올라붙는 산길을 따라 1시간쯤 오르면 거목숲이 벗겨지면서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너덜지대 맨 오른쪽 날등을 따라야 한다. 너덜지대를 올려치면 능선 오른쪽으로 암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오고 이후 짤막한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능선을 따르면 정상에 올라선다. 약 2시간.

정상에서 백두대간 상의 아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외가닥이지만 안개가 끼면 엉뚱한 지능선으로 빠져들 수 있으므로 조심하도록 한다. 약 2시간30분.

아미봉에서 구룡령까지는 3.32km 거리로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내려설 수 있다. 미천골로 내려서려면 남동쪽 응복산으로 향하다가 이후 두 번째 봉인 마늘봉(1,126.5m)에서 북릉을 따라야 한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형도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내려서야 한다. 표고 400m 거리지만 워낙 험난해 2시간 이상 걸린다. 약수골 사면 대부분이 짤막하지만 절벽을 이루고 있으므로 주의하도록 한다.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불바라기약수는 약수골 중단부에서 갈래 치는 청룡폭포 골(왼쪽)에 있는데, 폭포에 뚫린 샘 구멍을 호스로 이어받아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불바라기약수에서 5분쯤 내려서면 임도로 들어서고 이후 휴양림 상단 차단시설물까지는 4.8km(약 1시간), 차단시설물에서 휴양림매표소까지는 6.6km(1시간20분) 거리다. 휴양림 매표소를 통해 차단시설물까지 승용차를 몰고 들어올 수 있다.
  
교통·숙식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따를 경우 동홍천 나들목에서 나와 44번 국도 철정검문소 삼거리 → 우회전 451번 지방도로 → 상남면 → 현리 직전 방동교 삼거리에서 우회전 → 진동리 입구 → 조침령 터널 → 서림 삼거리 우회전 → 갈천오토캠핑장 순으로 진입하거나, 56번 국도를 타고 서석 → 유전삼거리 우회전 → 31·56번 국도 → 창촌 삼거리 좌회전 → 창촌 → 명개리 → 구룡령 → 갈천오토캠핑장 순으로 진입한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를 경우 봉평 나들목 → 봉평 → 보래령터널 → 창촌삼거리 우회전 → 구룡령 순으로 진입한다. 양양읍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 방향으로 약 5km 진행하다 논화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다. 이 도로를 따라 15분쯤 나아가면 미천골자연휴양림 입구에 이어 갈천오토캠핑장이 나온다.


맛집

갈천오토캠핑장에서 왕승골 금강선원 진입로 상에 위치한 시선촌(033-673-1677)은 토종닭요리가 일품이라고 주민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다. 토종닭백숙 40,000원, 닭도리탕 40,000원(공기밥 1,000원 추가), 오리양념구이 40,000원, 산채비빔밥·된장찌개 6,000원. 갈천오토캠핑장과 미천골 입구 사이의 도로변에 있는 그루터기(033-673-8767)는 오리주물럭·닭백숙·닭도리탕 40,000원, 민물매운탕 30,000~40,000원, 삼겹살(1인분 200g 9,000원), 산채비빔밥·된장찌개(6,000원)등의 음식을 내놓는다.

암산 산행 기점 부근인 갈천리와 미천리 일원에는 오토캠핑을 할 만한 곳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갈천오토캠핑장이라면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가장 대중적인 캠핑장이다. 또한 조침령터널 갈림목인 양양군 서면 서림리 서림 삼거리에서 갈천오토캠핑장 사이에는 38야영장(033-673-3803) 등 오토캠핑장이 여러 곳 있다.


▲ 1. 매표소에서 6.6km 떨어진 곳에 있는 차단시설. 불바라기약수는 여기서 임도를 따라 4.8km 더 올라가다가 지계곡으로 280m 들어서야 나타난다. 2. 미천골자연휴양림 시설물 중 맨위쪽에 위치한 숲속의 집 제3지구.
미천골자연휴양림  응복산·암산·조봉 능선에 둘러싸인 미천골 골짜기에 조성된 미천골자연휴양림에는 산림휴양관을 비롯한 3개 지역의 숙박시설과 오토캠핑장을 포함해 야영장 3개소가 조성돼 있다. 휴양림이 조성된 약 7km의 미천골계곡 일원은 계곡 풍광이 수려하고 사철 수량이 풍부해 특히 여름철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휴양림이다. 신라시대 고찰인 선림원지와 토종꿀을 치는 민가가 여럿 있어 문화유적 탐방과 자연교육을 겸할 수 있으며 휴양림시설지구가 끝나는 지점에서 불바라기약수까지 약 4.8km 구간은 거칠지만 임도가 잘 닦여 있어 약수 산행을 겸한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시설물 이용료(비수기/성수기) 3인실=21,000원/39,000원, 3~4인실=30,000원/50,000원, 4인실=32,000원/55,000원, 5~6인실=40,000원/70,000원, 6~8인실=50,000원/85,000원, 8~9인실=60,000원/98,000원, 10~11인실=70,000원/11만원, 12인실=90,000원/15만원. △캠프장 이용료 야영장=2,000원, 야영데크=4,000원, 오토캠프장=8,000원, 몽골텐트=10,000원. 입장료 1,000원, 주차료 경차 1,000원, 중소형 3,000원, 대형 5,000원.

접수는 인터넷을 통해 받으며 7, 8월 성수기에는 신청 후 추첨에 의해 시설물을 사용할 수 있다. 미천골 내에는 사유지가 많아 펜션도 여럿 있다. 문의 휴양림관리소 033-673-1806

휴양림 입구 56번 국도상에 서림야영장, 38야영장, 얼음골야영장 등의 오토캠핑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