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나무 거목. 암산 능선은 갖가지 거목들의 전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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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이렇게 복잡한 텐트를 어떻게 쳐. 그냥 비박하는 게 낫지 않겠어?”
지프 트렁크에 잔뜩 실린 오토캠핑 장비를 내리자 일행 모두 입이 떡 벌어진다. 늘 인원수에 딱 맞는 ‘전투용 텐트와 취사장비’를 가지고 다니던 기자 일행에게 취침공간 외에 생활공간과 햇볕 가리개 타프까지 갖춘 가옥형 대형 텐트는 낯설 수밖에 없다. 텐트를 설치하고, 타프를 띄우고, 거기다 취사용 테이블에 쌍버너를 얹고 테이블에 의자까지 세팅하고 나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재도전만에 오른 강원 오지의 명산
“그래도 좋긴 좋은데. 서서 걸어 다닐 수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아름드리 소나무 숲 속에 텐트를 치고 여유를 누리며 마음 놓고 취사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옆 텐트는 부부 두 사람만 단출하게 캠핑을 즐기고 있다. 가족이 더 있다면 애완견 두 마리. 이러한 호젓함은 캠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일 게다.
위쪽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텐트 역시 한 가족이었다. 아래쪽 부부 텐트는 작은 모닥불을 잠시 피웠다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 모든 일을 해결하는 반면 위쪽은 시끌벅적이다. 고기와 소시지를 굽고 찌개를 끓이고…. 이것 또한 캠핑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취사야영이 허용되던 1990년까지만 해도 등산의 즐거움 중 하나가 캠핑이었고, 밥해 먹는 재미였다. 그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는 게 오토캠핑이다 싶어졌다.
그런데 우린…. 기껏해야 삼겹살에 김치찌개가 전부이니. 황원선씨는 느닷없이 오토캠핑 취재산행에 동참한 김영미(강릉대 OB)씨에게 “앞으로 잘해 보자”며 의기투합을 요구하지만 글쎄, 텐트 치는 서투른 모습이나 밥 짓는 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틀림없이 봤을 텐데 또다시 함께 산에 올까?
- ▲ 억겁세월의 기를 뿜어내는 너덜지대에 올라서자 새 기운을 얻은 듯 얼굴빛이 환해졌다. 짙은 숲 아래로 갈천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암산 남서릉.
- 음력 4월 29일 그믐날이다. 달이 전혀 없으니 별은 더더욱 반짝인다. 오지는 이래서 좋다. 거기에 랜턴을 밝혀놓고 편안한 의자에 앉거나 매트리스에 드러누워 새카만 밤하늘을 점점이 수놓은 별을 바라보니 더 이상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으랴.
“뭔 날씨가 이래! 이렇게 일기예보가 안 맞아도 되는 거야!”
새벽 일찍 일어나 미천골자연휴양림 시설지구 최상단까지 차 한 대를 올려놓고 계획한 암산(岩山·1,152.7m)을 향해 20분이나 올랐을까,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염동우 기자는 카메라 노출이 나오지 않아 사진촬영이 어렵다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산행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취재 목적상 의미가 없다.
“빽, 빽~.”
이렇게 6월 12일 첫 번째 암산 취재 시도는 무산되고 두 번째 시도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인 15일 밤. 서울을 출발할 때 멀쩡하던 날씨는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내면을 들어설 무렵 요동을 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새카맣고 번개는 먹구름 곳곳을 찢을 듯한 기세로 난리 친다.
비가 워낙 많이 내려 닷새째 놔둔 텐트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하며 갈천오토캠핑장에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도 집 나간 자식 맞아주는 듯 따스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벗겨지고, 엊그제 텐트 친 날 밤 그랬듯이 별이 총총히 떠오른다. 그러자 ‘비박파’인 김영미씨와 염동우 기자는 텐트를 빠져나가 저마다 그럴싸한 거목 소나무 아래 매트리스를 펴고 드러누워 밤하늘의 신비로운 풍광을 즐긴다.
“아니 이거 인수봉 대슬랩보다 더 가파르잖아. 계속 이러면 장딴지에 쥐나겠는데.”
기자에게 암산의 풍광이 뛰어나다고 귀띔해 준 것은 갈천리 주민 엄익환(嚴翼桓·74)씨. 70 중반의 고령에도 젊음을 잃지 않고 있는 엄익환씨는 “암산은 구룡령 도로가 확·포장되면서 사라진 기와집바위, 오관석, 갈천약수 등과 함께 갈천5보(寶)로 꼽히는 명산”이라며 “능선 곳곳에 기암이 많고 정상에 서면 조망이 좋다”는 말로 귀를 솔깃하게 했다.
56번 국도인 구룡령 도로에서 시작되는 암산 산행은 무엇보다 거목이 인상적이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모아 잡아도 껴안기 어려울 만큼 굵게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 등 거목들이 능선 곳곳을 메우고 있고 능선 뒤로는 구룡령에서 점봉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기운차게 뻗어나가 있다. 그런 자연환경에 풍수지리적으로도 위치가 좋은 덕분인지 능선 곳곳에 묘가 들어서 있다.
“이럴 줄 알고 장갑도 가져왔어요. 긴 팔 옷도 예비로 챙겨두었고요.”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기는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였고, 간혹 제대로 가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길이 희미했다. 길이 만만치 않아지자 암산 산행에 재도전한 김영미씨는 씩 웃으며 철저한 준비를 자랑하고, 모처럼 취재산행에 동참한 배병달씨는 “이렇게 힘든 산 같았으면 미리 얘기해 주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툴툴댄다.
- ▲ 1. 오를수록 원시적 기운이 느껴지는 암산 능선길. 정상 못 미쳐 능선이다. 2. 암산 남동릉 산의 기암인 시루떡바위. 3. 암산 북릉에서 만난 참나무 거목. 세 사람이 껴안아도 모자랄 정도로 굵었다. 4. 불바라기약수가 있는 약수골 상단부.
- 바람이 강하게 분다. 구름이 살짝 덮여 있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런 우리 마음을 눈치챘는지 산새들이 지저귀며 숲의 분위기를 한결 정겹게 바꿔준다. 간간이 리본이 보인다. 약초꾼들이 묶어놓은 노끈도 있지만 산악회 리본도 보인다. 그래도 산꾼들이 뻥 뚫린 산길만 따르는 게 아니라 약초꾼들의 족적도 좇는다 싶어 ‘동료의식’에 뿌듯해진다.
“아니 무속인들 다 뭐 하는 거예요. 이런 데 와서 굿이라도 해야지. 그래야 기를 제대로 받을 거 아니에요.”
거목들은 하늘로 곧게 뻗기만 한 게 아니다. 땅에서 하늘 향해 줄기를 뻗자마자 수직으로 꺾여 땅과 수평을 이루며 자라는 굵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우주의 기를 다 끌어안으려는지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으며 자란 거목도 있다. 그렇듯 묘한 기가 느껴지는 거목이 암산에 많은 것은 역시 이 산이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일 게다.
물영동제 때 얼어붙은 제상 음식 뿌려지면서 기암 탄생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20분쯤 지난 오전 9시10분. 숲이 벗겨지면서 반짝이는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거대한 바윗덩이는 사면을 따라 켜켜이 맞물리면서 거대한 너덜겅을 이루고 있었다. 설악산 귀때기청봉에 비해 규모는 비할 바 못 되더라도 바윗덩이 하나하나의 크기는 훨씬 크고 모양도 다양했다.
- 그 너덜겅은 바위틈에서 맑고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며 대기를 정화시켜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멋진 조망도 선사해 주었다. 산허리를 가르며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구룡령 도로, 그 오른쪽으로 갈전곡봉(1,204m)을 거쳐 구름 덮인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바로 앞에 우뚝 솟구쳐 있다. 대간은 짙은 숲이 우거져 한층 더 기운이 넘친다. 이런 명당자리를 휙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물 한 모금 마시고 새소리 들어가며 너덜겅과 숲에서 나오는 맑은 대기를 실컷 마시고, 눈앞에 펼쳐진 백두대간에서 기운찬 기를 몸속 깊이 끌어 담는다.
“이게 시루떡바위 아니에요?”
산행 전 엄익환씨는 “암산이 삼석산(三石山)이라 불리는 것은 정상인 복판석봉 양옆에 가석산이 솟아 있기 때문”이라며 암산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전설을 몇 가지 얘기해 주었다.
- ▲ 1. "진드기 달라붙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김영미씨가 웃으며 진드기가 있나 살피고 있다. 2.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약수맛이 강하다는 불바라기약수.
- “옛날 영동지구에서 용왕제 격인 ‘물영동제’를 지낼 때 제상에 차려놓은 음식 중 추위에 얼어붙은 시루떡을 던진 게 시루떡 바위가 되었고, 몽돌은 감자떡, 감투바위는 곶감을 집어던지면서 생긴 기암이라 전해요. 이 산에는 꿩이 없어요. 매가 다 잡아먹었기 때문이래요. 그 매바위도 산에 있어요. 그건 제상에 올려놓았던 얼어붙은 닭이라 전하고요.”
그러고 보니 조망을 즐기던 너덜지대의 바위들이 감자떡바위였던 셈이다. 너덜지대 위쪽의 시루떡바위(N37 54 57.5 E128 31 31.1 / 1,040m)에 다가서자 정상부가 눈에 든다. 밑에서 볼 때는 숲 우거진 평범한 산이었건만 예서는 바위절벽을 늘어뜨린 채 낙락장송이 우거져 있는 것이 전형적인 산수화풍의 멋진 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