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잔봉 정상에서 본 한반도 지형. 얼어붙은 괴산호와 속리산국립공원 군자산 줄기가 섞여 환상적인 한국화를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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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K’ 같은 신인 등용 TV 프로그램에 나와 순식간에 일반인에서 스타가 되는 세상이다. 괴산에도 슈퍼스타 K 같은,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걷기길이 있다. 괴산 산막이옛길이다. 산막이옛길은 괴산의 산골 중에서도 산골마을인 산막이마을까지 연결된 4km의 옛길이다.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까지 흔적처럼 남아 있는 옛길에 나무 데크를 놓고 정비해 복원했다. ‘산막이’란 마을 이름은 산 깊숙한 곳에 장막처럼 산이 둘러싸고 있다 하여 유래한다. 2년간의 조성사업을 거쳐 지난해 걷기코스로 개통했다.
여느 걷기길과 다른 것은 괴산댐 호수를 따라 걸어 산막이마을에 닿은 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재미 덕분에 산막이옛길은 걷기길의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괴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출발지인 주차장은 평범한 산골 풍경이다. 작은 고개를 올라서면 안내소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시야가 터지며 심상찮은 경치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겨울이고 평일이라 찾는 이 드문 산 입구를 지키는 이는 괴산 토박이인 김영식(65)씨다. 그는 “1957년 순 우리 기술을 적용,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 괴산댐”이라 자랑한다.
달천강 상류인 이곳은 물이 깨끗해 매년 일찍 어는데 보통 11월 중순부터 3월까지 빙판이라고 한다. 얼음이 녹는 시점부터는 하산 지점인 산막이마을에서 유람선도 운행한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사람이 적지만 봄, 가을이면 평일 2,000~3,000명, 주말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는다고 한다.
- ▲ 산막이옛길은 괴산댐 호수를 따라 길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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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씨는 임각수 괴산군수의 고향이 이곳 외사리 사오랑마을이고 산막이옛길은 군수가 유년시절 다닌 길이라 이곳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걷기코스로 개발했다고 귀띔한다. 김씨는 스틱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이곳 나무를 직접 다듬어 만든 ‘생긴대로 지팡이’를 나눠준다. 애정이 돈독해 보이는 부부나 커플이 지나가면 얼른 좇아가 작은 나무판을 주는데, 걷기길에 있는 연리지 앞에 소망을 적어 걸어두라고 한단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고향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코스는 걷기코스와 등산코스가 있다. 등산코스는 등잔봉과 천장봉을 넘어 산막이마을로 내려와 걷기길이나 유람선을 타고 돌아나갈 수 있다. 걷기와 등산, 배 유람까지 겸했으니 선택의 폭이 넓고 체력에 맞게 택할 수 있어 좋다.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던 봉우리라고 해서 유래한다. 450m로 높이가 낮고 바로 곁에 있는 속리산국립공원 군자산의 명성에 가려 있다. 이런 무명산에 최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인기는 한반도전망대의 수려한 경치 덕분이다.
이렇듯 산막이옛길은 괴산호를 끼고 있어 숲과 물, 산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1957년 괴산댐이 준공되자 깎아지른 암벽과 산비탈이 물에 잠기고 드러난 땅이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면서 자연 절경을 만들었다. 걷기길은 원래는 가파른 사면길이지만, 나무 데크를 설치하고 돌길을 황토로 포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쉽게 걸을 수 있는 가족단위 나들이길로 탈바꿈했다.
- ▲ 소나무숲의 출렁다리. 걷기길 곳곳에 잔잔한 재미가 있도록 시설물과 안내판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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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소를 출발한다. 유람선 선착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호수는 흰색이다. 빙판 위에 눈이 쌓였다. 얼음미녀 같은 호수를 감상하다 길을 이어가면 묘한 나무 한 쌍이 걸음을 세운다. 연리지(連理枝),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결이 통해 하나가 된 나무다. 알파벳 H자 모양의 참나무, 그 아래를 부부싸움을 한 부부가 돌면 화해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소원성취 돈벼락 빵~”, “옥순 승기 올해도 건강히”, “재희야 우리 예쁜 사랑 오래오래 변치 말자” 등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나무판이 주변에 걸려 있다.
등성이를 트래버스하여 넘어가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벤치와 시를 새긴 나무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시를 들여다보면 시인들이 직접 이곳에 와서 걸은 후 감상을 적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물과 바람과 산마저 / 열두 폭 산수화 그리려 붓질하는 / 산막이옛길’ -최윤영의 ‘괴산연가’ 중에서.
소나무 사이로는 멀리 괴산댐이 서 있다. 1950년대에 세워진 댐답게 댐치곤 작아 보인다. 세월의 흔적도 배인 것이 인공적인 시설물이라기보다 어우러진 그림 속 풍경 같다. 소나무숲에는 출렁다리를 놓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길에 잔잔한 재미를 더했다. 그 옆에는 특이한 나무가 있는데 해석이 더 재미있다. 일명 ‘정사목’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로 천년에 한 번 나올 정도로 희귀한 음양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사 장면을 닮은 것도 같다. 해석이 참 해학적이다.
- ▲ 부부싸움한 부부가 돌면 화해를 한다는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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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이 호수 쪽으로 고개를 들이민 곳에 망세루 전망대가 있다. 빙판에 눈 덮인 호수는 순백의 겨울 미녀다. 화선지의 흰 여백 속에 발자국이 길게 나 있어 여운을 준다.
걷기길을 이어가면 약수터가 있다. 앉은뱅이 약수로 앉은뱅이가 지나가다 물을 마시고 난 후 걸어서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괴산을 상징하는 산(山)자 모양을 한 괴산바위도 구경할 수 있다.
바위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 비록 모형이긴 하지만, 커다란 호랑이가 동굴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절벽 아래 입구를 낸 동굴은 밑은 흙, 위는 바위로 되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1968년까지 호랑이 또는 표범으로 보이는 동물이 실제로 드나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책로 곳곳에는 괴산호와 주위 산들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남매바위 위에 만든 정자에서는 좌우로 펼쳐진 호수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맛볼 수 있다. 괴음정은 호수 쪽으로 튀어나온 느티나무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고, 고공 전망대는 다리 아래를 투명유리로 깔아 깎아지른 40m 절벽 위의 스릴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 ▲ 1 미녀의 엉덩이를 닮은 나무. 사람들의 손길로 엉덩이 부분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2 61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강숙 할머니(가운데)와 9남매 중 큰 딸 변병례씨. 오른쪽은 안내소 지킴이인 괴산 토박이 김영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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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을 올라가면 아래로는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위로는 커다란 바위가 위세를 자랑하는 전망이 펼쳐진다. 산책로 중 가장 높은 지점으로, 이제는 산막이마을까지 내리막길이다. 산책로 주변에는 다래덩굴이 많은데, 길 중간에 다래덩굴 터널을 만들어놓았다. 산책로가 끝나는 산막이마을에 도착하면 괴산호를 운행하는 관광유람선 선착장이 나온다. 비록 얼어붙어 지금은 얼음판일 뿐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백미(白美)가 있다.
마을에는 식당 몇 곳과 얼어붙은 선착장이 있다. 현재 3가구가 남아 있으며 하얀집식당 이강숙(80) 할머니가 이곳의 산증인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시집와 61년째 이곳에서 살며 9남매를 길렀다. 9남매 낳는 동안 병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할머니는 “지금도 119 부르면 한 시간 안에 못 오는 곳”이라고 마을을 설명한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데크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빙판 위에 있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좇으면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걷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2월 중순 이후 호수에 들어가면 위험하다.
- ▲ 산막이옛길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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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가이드 주차장에서 산막이마을까지 2.8km에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돌아나가는 걸 감안하면 5.6km에 2~3시간 걸린다. 괴산댐 호수를 따라 데크길을 조성해 놓아 어린이와 노인들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온가족이 나들이 삼아 다녀올 수 있는 걷기길이다. 얼음이 녹으면 마을에서 유람선을 운행한다. 편도 5,000원, 왕복 8,000원이다.
등산은 천장봉 지나 삼성봉 직전 갈림길에서 산막이마을로 내려가는 코스가 가장 긴 코스인데 마을까지 6km에 3시간 정도 걸린다. 한반도전망대에서 진달래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코스는 마을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초보자도 힘들지 않게 갈수 있는 산행코스들이다.
교통 괴산시내버스터미널에서 외사리행 버스를 타고 외사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1일 7회 운행(07:45, 11:10, 12:30, 14:00, 15:10, 17:15, 17:50) 운행하며 15~20분 정도 걸린다. 외사리까지 온 버스는 돌아서 괴산으로 간다. 괴산시내버스터미널(043-834-3351). 승용차로 갈 경우 내비게이션에 주차장 주소인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546-1번지’를 검색하면 된다.
숙식(지역번호 043) 산막이마을에 숙소와 식당이 있다. 하얀집(832-5617)은 펜션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마을의 산증인인 이강숙(80) 할머니와 큰딸 변병례(55)씨가 후한 산골인심으로 손님을 맞는다. 김치찌개(5,000원), 올갱이국밥(5,000원), 김치전(5,000원), 잔치국수(5,000원), 토종닭백숙(4만 원) 등이 주 메뉴다. 숙박은 4인 기준 13평형이 13만 원(주말 기준)이다. 산막이산장 주막식당(832-5553) 역시 민박을 겸하고 있으며 마을 선착장에도 간이식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