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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걷기코스 중 가장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석포에서 내수전을 잇는 내수전 옛길 걷기코스다. 울릉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걷기 코스이기도 하다. 울릉도는 섬 둘레를 일주하는 도로가 아직 완전히 개통되지 않았는데, 석포~내수전이 유일한 미개통 구간이다. 빙 돌아서 차로 가면 38km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동절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기에는 저동항에서 석포마을 아래 해안가인 섬목선착장까지 철부선이 운항한다.
과거 저동항과 섬목선착장을 연결하는 철부선이 기상 악화로 발이 묶이면 북면 주민들은 지게에 어물을 잔뜩 지고 내수전 옛길을 걸었다. 그리고 저동항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구해 다시 지게에 지고 가파른 산길을 넘어야 했다.
- ▲ 눈 내린 내수전 옛길을 걷는다. / 마지막 가구, 한 명의 주민만 남은 죽도가 예쁘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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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1km 정도 안의 숲길이다. 구불구불한 소로를 따라 사면을 트래버스하는 길이다. 겨울철에는 옛길을 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눈이 많이 쌓여 위험하기 때문이다.
걷기 마니아들은 보통 내수전을 출발해 내수전망대를 지나 옛길을 거쳐 석포마을에 닿은 다음, 섬목선착장으로 내려가 철부선을 타고 울릉도 동쪽 해안 절벽을 감상하며 저동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철부선이 운행하지 않는 겨울에는 차로 석포동까지 가서 내수전으로 걸어오는 것이 효율적이다. 일주도로에서 석포마을로 이어진 오르막은 택시기사들이 겨울철에는 기피하는 곳이므로 죽암에서 걸어 올라갈 각오를 해야 한다. 섬목선착장에서 산길 오르막을 따라 석포마을로 갈 수도 있지만 굉장히 가팔라 눈이 쌓인 겨울에는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석포마을 억덕배기 삼거리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1m 넘게 쌓인 눈과 횡횡한 바람, 사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이 걷기가 아니라 극한등반이라도 시작하는 것 같은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작부터 설피다. 벽처럼 높은 눈이라 설피를 신지 않고선 갈 수 없는 지경이다. 흙길 입구에는 안내판이 있다. 섬초롱꽃, 섬단풍, 흑비둘기, 섬말나리 같은 동식물이 자생한다고 써 있지만 지금은 눈천지일 따름이다.
- ▲ 1 내수전 옛길은 한겨울엔 눈이 깊어 설피를 신지 않으면가기 어렵다. / 2 정자와 감나무가 있는 정매화골 쉼터.1980년대 초반까지 사람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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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난코스다. 울릉도의 겨울은 육지와는 딴판임을 실감한다. 내수전 옛길이 가파른 비탈을 트래버스해 지나도록 되어 있는데 눈이 길을 삼켰다. 길 바깥의 안전 로프가 간간이 보인다. 한발 한발 실수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걷는다. 절벽은 아니지만 거의 준하는 수준의 낭떠러지가 왼쪽에 도사리고 있다. 오른발과 왼손의 스틱에 힘을 줘가며 조심스레 걷는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다.
함께 걷는 이는 이소민 울릉도 문화해설사다. 울릉도가 고향인 그는 육지로 떠났다가 3년 전 다시 돌아와 정착했다. 이씨는 대구 에이스산악회 소속으로 1980년대부터 산을 즐겼다. 1985년 가네쉬 히말 원정을 갔을 정도이며 미국과 알래스카, 유럽에서 등반을 하기도 했다. 가네쉬 히말 원정에서 남편인 조중호씨(한국서울산악회)를 만났으며 현재 저동에서 어택캠프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옛 마을들은 모두 빈 마을로 변해
초록으로 반갑게 사람을 맞는 건 식나무다. 청목이라고도 하며 바닷가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병충해에 강하며 목재는 가구재로 쓰고 잎은 사료를 만든다. 나무껍질과 잎은 뱀독이나 화상 등에 약으로 쓰여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나무다.
전봇대와 전선이 길을 따라오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리분지의 용출수를 수력발전으로 전력화해 남은 전력을 저동으로 보내는 용도다. 울릉도는 강수량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그 많은 눈과 비를 성인봉과 나리분지가 흠뻑 들이마셨다가 넘쳐 흘려보낸다. 1일 용출수만 해도 3,000여 톤에 달해 수력발전에 유리하다.
나무 사이로 바다가 여백을 채운다. 유난히 눈길을 끄는 섬은 죽도다. 마치 예술 하는 사람이 빚어 올린 것처럼 절벽으로 두른 다음 푹신해 보이는 초목이 위를 덮고 있다. 회색 절벽에 초록을 얹은 것이 거대한 생크림케이크 혹은 머핀 같다.
이소민 해설사는 죽도에 과거 세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한 가구만 살고 있다고 한다. 부모와 아들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나물을 채취하다 섬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이후 아버지도 죽고 아들만 남았다고 한다. 겨울에는 섬을 비우고 봄이 되면 돌아온다고 하는데 섬에서 혼자 사는 이의 외로움과 아늑해 보이는 섬의 모습이 잘 연동되지 않는다. 죽도에는 더덕밭이 2만 평 정도 있으며 울릉도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가 서식한다.
- 공식적으로는 산림청 땅이며, 울릉군에서 관리하며 임대형태로 주민이 산다고 한다. 저동에서 관광객을 실은 배가 죽도를 운항하는데 선착장에서 365개의 계단을 올라야 죽도의 흙을 밟을 수 있다. 죽도 안에도 산책로가 있으며 죽도에서 본 울릉도의 해넘이가 무척 곱다고 이소민 해설사는 얘기한다. 죽도는 내수전 옛길 내내 볼 수 있어 북극성처럼 온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양치식물이 빼곡한 원시림이었을 것이다.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바다 쪽으로 가면 와달리다. 과거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모두 떠나면서 길이 끊겨 위험한 곳이 되었다. 이정표에도 와달리로 가는 길에 X표시를 해놓았다. - 공식적으로는 산림청 땅이며, 울릉군에서 관리하며 임대형태로 주민이 산다고 한다. 저동에서 관광객을 실은 배가 죽도를 운항하는데 선착장에서 365개의 계단을 올라야 죽도의 흙을 밟을 수 있다. 죽도 안에도 산책로가 있으며 죽도에서 본 울릉도의 해넘이가 무척 곱다고 이소민 해설사는 얘기한다. 죽도는 내수전 옛길 내내 볼 수 있어 북극성처럼 온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 ▲ 내수전 옛길의 하이라이트인 동백숲. 울릉도 특유의 밀도 높은 원시 동백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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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읍과 북면의 경계를 지나자 점점 초록이 늘어난다. 한겨울의 짙은 초록은 동백숲이 만든 것이다. 아직 눈에 띄게 활짝 핀 동백꽃은 드물지만 간간이 땅에 떨어진 꽃봉오리가 보인다. 눈 속에 떨어진 동백 꽃망울을 살짝 비켜 밟는다. 검붉은 빛의 꽃이 많고 새빨간 동백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한 달 뒤면 농염한 붉은 빛으로 온통 터널을 이룰 것 같다. 동백꽃 꽃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소민 해설사는 한번에 툭 피어나고, 질 때는 꽃 전체가 툭 떨어지는 모양새가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꽃말과 닮았다고 한다.
정자가 있는 골짜기는 정매화골 쉼터다. 정매화라는 주막집 여인의 외딴집이 있었다고 해서 정매화골로 불린다. 1981년까지 이곳에 살던 이효영씨 부부가 19년 동안 폭설과 악천후를 만나 곤경에 빠진 섬주민과 관광객 300여 명을 구했다고 한다. 지금은 쉼터가 조성돼 있다.
- ▲ 1 눈 내린 모습마저 아늑해 보이는 정매화골 정자./2 흰 눈과 대조되는 식나무열매./3 숲을 점령했던 양치식물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4 울릉도가 고향인 문화해설사 이소민씨. 1985년에 히말라야 원정을 떠났던 원조 여성 산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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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사면 눈길을 끈덕지게 좇아가자 일주도로다. 도로라고 해서 걷기가 끝난 건 아니다. 도로 위로 수북이 쌓인 눈을 설피로 걸어 오른다. 내수전전망대 갈림목에 닿으니 날이 어둡다. 오징어철에 이른 아침 전망대를 찾으면 수평선을 온통 붉게 드리우는 일출과 불야성을 이룬 오징어잡이 배들의 기운 넘치는 광경을 만날 수 있다. 1km를 더 내려가 차가 다닐 수 있는 곳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떠난다.
걷기 길잡이 약 4km에 3시간 정도 소요
겨울철 내수전 옛길 걷기는 설피를 준비해야 한다. 1m 이상 눈이 쌓이는 이곳 특성상 길이 묻혀 위태로우므로 관광객이나 초보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설피 없이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갈 경우 발이 빠져 상당한 체력과 시간이 걸린다. 가급적 한겨울보다는 눈이 녹은 다음 가야 안전하게 길이 가진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순수한 흙길 구간은 3.7km이고 겨울철 눈이 쌓였을 때 3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도동에서 천부행 버스를 타고 천부까지 간다. 도동에서 06:30, 07:10, 07:50, 08:40, 09:30, 10:00, 10:50, 11:30, 12:20, 13:20, 13:50, 14:20, 15:10, 15:50, 16:40, 17:30, 18:10, 19:50에 출발한다. 1시간10분 걸린다.
천부에서 석포마을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07:00, 10:40, 13:30, 17:30 출발하며 20분 걸린다. 7시20분에 도착한 버스는 다시 돌아 섬목선착장을 거쳐 천부로 간다. 셔틀버스는 동절기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동절기에는 내수전 옛길 입구까지 택시들도 가길 꺼리므로 천부에서부터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3월부터는 저동항에서 섬목선착장까지 철부선이 1일 5회(08:00, 10:00, 13:00, 15:00, 17:00) 운행한다. 20분 걸리며 도착 후 10분 뒤에 저동항으로 돌아간다.
숙식·개념도 성인봉 르포 참조
- 미니 인터뷰
신임 울릉군수 최수일
“김포-울릉 간 항공편 만들어 교통혁명 이루겠다”
최수일 울릉군수는 지난 10ㆍ26 보궐선거에 당선된 신임군수다. 울릉도 토박이자 산악회 초기회원인 그는 걷기 자원을 개발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최 군수는 “우리 울릉도는 제주올레보다 앞선 2004년 라운드 트레일을 조성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걷기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동-남양 간, 남양-태하 간 걷기코스를 조성할 예정이며 성인봉 역시 새로운 등산로를 정비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그는 “울릉도가 겨울 관광이 비수기인데, 이를 보완하고자 겨울 축제와 산악스키 등을 부흥시켜 겨울에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게 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 추진 중인데 가령 나리분지에서 열기구를 타고 성인봉을 구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일례다. 또 화산섬이라 온천 개발 여지가 많은 만큼 해수온천을 개발해 겨울 관광상품으로 자리잡게 하겠다고 한다. 그는 “화산섬의 지열을 이용해 발전소를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며 “현실화되면 울릉도 전력 소비량의 절반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현재 발전기 차량 2대를 육지에서 들여와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데 지열을 통한 발전이 가능해지면 매연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생산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울릉도에서 현재 가장 불편한 점으로 교통을 꼽는다. 대안으로 50인승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을 건설해 김포-울릉도 간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교통혁명을 이루겠다는 포부다. 또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일주도로를 2016년까지는 반드시 완공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