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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의 모든 것이 식재료 문경 윤필암, 자연공양

문성식 2012. 3. 17. 05:24
산과 들의 모든 것이 식재료
문경 윤필암, 자연공양




산사에 널린 게 먹을거리다. 막 따온 진달래로 화전을 부치고, 밥을 움켜쥐어 만든 주먹밥 위에도 눈이 호사스러울 만치 화려한 색색의 야생화를 얹는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풍경이 아름다운 경북 문경의 윤필암.

민들레, 당귀, 쑥, 씀바귀 등의 산야초가 별 가공 없이 눈앞에서 뚝딱 봄나물이 되고, 반찬이 된다. “우린 사서 만드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사방에 먹을거리가 지천인데 살 게 뭐가 있어요. 저기 보세요. 섬기린, 초롱꽃, 진달래… 야생화가 곧 식재료죠.” 이곳 선원장 은우 스님의 말씀이다. 산사의 밥상은 자연과 같다. 그러나 푸성귀로 만들었다고 모두 사찰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산사의 상차림에는 세 가지 법도가 있다. 청정, 유연, 여법이 그것인데, 청정함은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가 깃들지 않은 청정한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유연함은 스님의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음식이 짜고 맵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여법은 양념을 하더라도 단 것, 짠 것, 신 것, 장류 순으로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조리법은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 행자 시절 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는 수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산사에서는 음식 만드는 과정 역시 수행의 하나이다 보니 조리법은 간단해 보여도 조리하는 데는 수행하듯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정성만큼 맛도 향도 깊은 건 당연한 일.


윤필암의 음식은 기본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나고, 그 뒷맛이 오래 남는다. 윤필암 요리를 한번 맛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찾는 것만 봐도 이곳만의 비책이 없을 리 없다. 선원장 은우 스님의 귀띔에 따르면, 그 비책은 흠집 난 파사과로 만든 초. 초는 모든 음식에 기본으로 들어가며 평소엔 물에도 타 음료수처럼 마실 만큼 일상적인 재료지만, 만드는 과정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 가을이면 주변 사과 농장들 덕분에 새빨갛게 물드는 윤필암에서는, 깨끗이 씻어 썬 파사과에 누룩을 뿌리고 설탕을 켜켜이 넣고 봉한 후 1년을 꼬박 숙성시킨다. 1년 후 삭은 찌꺼기를 걸러내어 버린 뒤 5년 이상 숙성시켜야 비로소 윤필암만의 초가 탄생된다. 또 이곳은 ‘야생화의 천국’으로 알려진 만큼 주변 산, 들에 이름 모를 꽃과 풀이 많아 죽순나물과 갓김치 등 싱싱한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더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이른 봄, 겨우살이를 위해 비축해 놓은 먹을거리들이 동이 나기 시작할 무렵이지만 윤필암은 넉넉한 저장고 덕분에 걱정이 없다.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의 장류와 장아찌류, 파, 마늘 대신 간장으로만 맛을 낸 김치가 윤필암의 봄을 책임진다. 저장고 한쪽엔 무청을 꾸덕꾸덕 말려 소금에 절여놓은 우거지가 눈에 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삶아 우거짓국, 우거지찌개 등을 해 먹는다. 섬유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무와 무청은 절집의 ‘산삼’이다. 스님들에게는 육류 이상의 영양 공급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그때 나는 제철 재료를 건조시켜 보관해 놓고 요긴하게 사용한다. 다시마, 목이버섯, 박고지, 무말랭이, 쑥가루 등은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식재료다.



[진달래화전]
재료- 찹쌀가루, 진달래 꽃잎, 설탕, 식용유
만들기 1_찹쌀가루는 따뜻한 물에 익반죽한다. 2_반죽한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빚어 기름 두른 팬에 지져낸다. 양쪽 모두 다 익었을 즈음 깨끗하게 씻어 물기 없앤 진달래 꽃잎을 얹는다. 3_쟁반에 설탕을 얇게 펴놓은 후 지져낸 화전을 올려 설탕을 살짝 묻힌다(찹쌀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엉겨 붙어버린다).

윤필암이 자리한 경북 문경은 오미자차 생산량의 40%가 재배되는 차의 고장. 오미자 과육에는 사과산이 많아 신장에 특히 좋고 피로 해소와 감기 예방에 좋으며, 기침과 갈증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오미자차, 송화차, 말차, 박화차… 절에서 차는 단순히 마실거리, 그 이상의 의미다. “차는 곧 배려하는 마음이죠. 좋은 물을 정성껏 끓이고, 다완에 찻잎을 넣고 찻물을 부어 우려 상대방의 찻잔에 옮겨주는 일련의 과정, 주변의 공기까지 따뜻하고 아늑하게 바꿔주는 게 차 한 잔의 힘입니다.” 은우 스님은 입이 자주 마르고 갈증이 심하다는 동행 기자에게는 오미자차를, 소화가 잘 안 된다는 기자에게는 개나리색 송화차에 붉은 매화꽃 한 잎을 얹어 내주신다. 특히 정신 안정에 좋은 박하차를 좋아한다는 스님은 좋은 물이 좋은 차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우린 차를 마신 후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입 안 가득 차향이 남아 있어 이 마무리 물 한 모금 역시 훌륭한 차가 됩니다. 그래서 절집에서는 물도 백차라 하여 차 대우를 하는 거예요.”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 샘물, 우물물이 찻물로 가장 좋다. 지하 암반수는 물은 깨끗하지만, 차 맛은 덜하다.


"차는 곧 배려하는 마음이죠. 좋은 물을 정성껏 끓이고, 다완에 찻잎을 넣고 찻물을 부어 우려 상대방의 찻잔에 옮겨주는 일련의 과정, 주변의 공기까지 따뜻하고 아늑하게 바꿔주는 게 차 한 잔의 힘입니다."

[출처]제이콘텐트리 여성중앙 | 기획 강민경 | 사진 문덕관 | 촬영협조 문경 윤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