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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배곯는 사람 있으랴 山海珍味 진주 밥상

문성식 2012. 3. 17. 05:21
    이곳에서 배곯는 사람 있으랴
    山海珍味 진주 밥상




    산과 바다, 들과 강까지 진주를 향한다. 원하는 게 있으면 주변을 쓱 한 번 둘러보다 손을 뻗기만 하면 되는 풍요로운 곳, 그래서 꼬인 구석없이 너그러운 고장이 진주다. 진주에 갈 일이 있거든 숟가락 젓가락 일랑은 놔두고 그곳 인심 담아 올 마음 그릇 하나 꼭 챙기시길.

    진주(晉州)는 경상남도의 眞珠다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 진주. 예로부터 지명에 ‘州’ 자가 붙은 곳은 ‘잘사는 고장’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대개 하천 하류에 형성돼 토양이 비옥한 편이라 농사가 잘되는 게 당연하고, 농지와 하천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기에 먹을거리가 풍부하게 마련이다. 진주 역시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이 지역 북서부에는 소백산맥이, 동남부에는 해안산맥이 뻗어 있고, 경남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남강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른다. 또한 이 남강 유역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하천 연변에는 비옥한 토지가 형성돼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진주라는 도시는 동서남북으로 1시간 내의 거리에 바다, 산, 강, 호수, 평야를 모두 가지고 있는 천혜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지형적 장점은 자연히 풍요한 먹을거리를 선사한다. 먹고사는 데 급급하지 않으니 맛은 물론 멋까지 챙길 여유가 생겼을 테고, 단연 경상남도의 眞珠라고 할 만하다.

    전라도 음식보다 더 짜고 맵다는 진주 음식
    ‘짜고 매운 음식’ 하면 전라도를 먼저 떠올린다. 경상도, 특히 진주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진주는 더운 지역이다 보니 식품 보관을 위한 염장법이 발달했고, 더위에 시달린 몸에 짠기를 보충하기 위해 간을 세게 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식재료가 풍부하면 양념도 발달하게 마련이다. 자연히 양념은 진해지고, 진한 맛은 짜고 매운 맛으로 표현된다. 안 그래도 매운 고추장에 고춧가루와 배즙을 더해 만든 배고추장이 대표적인 진주 양념. 또 바닷가의 영향을 받아 짠 젓갈 문화도 발달했다.






    진주대첩을 이끈 힘, 진주비빔밥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3000명의 군사로 3만명의 왜군을 물리쳤던 전쟁으로, 임진왜란 육지전의 첫 승리라는 데 의의를 둔다. 임진왜란 발발 한 해 전 조정에서는 일본의 침입을 예상하고 전국의 각 성에 축성령을 내렸다. 대부분의 지역에선 백성들의 원성이 두려워 이를 지키지 않았는데, 진주성은 내성과 외성을 보수함과 동시에 성 밖에 해자(성곽 둘레의 호수)를 파 전쟁에 대비했다고 한다. 아마도 진주 사람들이 워낙 순해서, 아니면 성을 쌓으면 상금을 내린다고 하여 돌을 들어 나르진 않았을 것이다. 먹을거리 풍부한 진주는 흉년이 들면 산에 올라 풀을 뜯고, 강이 마르면 바다에 그물을 던질 수 있는 풍요로움 덕에 적어도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 전쟁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는지. 진주비빔밥은 이 진주대첩과 관련이 깊다. 진주성 싸움에서 부녀자들은 군관을 위해 밥을 지어 날랐는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밥에 각종 나물을 얹은 데서 진주비빔밥이 유래하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진주 음식
    오래된 맛집에 가면 인테리어에 실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너무 현대적이어서 혹은 너무 구식이어서. 진주 시내 대안동 골목 안에 자리한 천황식당은 3대에 걸쳐 80년 넘게 진주의 전통 음식인 ‘진주비빔밥’을 만들어오고 있는, 별미를 판다기보단 전통 음식을 계승해 오고 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멀게는 ‘과거’, 가깝게는 ‘추억’을 만나고 돌아올 수 있을 법한 건물 안팎 분위기와 현대인의 입맛과 타협하지 않은 비빔밥 맛이 딱 맞아떨어진다.

    다 맛있는 진주 음식
    진주에는 유독 이름 앞에 ‘진주’라는 수식어가 붙은 음식이 많다. 향토 음식을 보면 그 지방의 특색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게 보통인데, 진주 음식엔 여기도 진주, 저기도 진주字가 붙어 오히려 특별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점수 후하게 줘서 그러한 게 아니라 바다 대표, 강 대표, 산 대표, 밭 대표… 하나씩만 꼽아도 벌써 몇 개인가.

    풍류가 있는 음식, 진주냉면

    ‘남남북녀’(남자는 남쪽 지방 사람이 잘나고 여자는 북쪽 지방 사람이 곱다)라는 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북 평양기생, 남 진주기생’이란 말이 다 있다. 『조선의 민속전통』에 의하면 당시 진주에는 미색과 재색을 겸비한 관아의 기생들이 많았는데, 조선이 망하자 기생들과 숙수(요리사)들이 권번과 요정으로 나오면서 기생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진주냉면은 이들이 돈 많은 양반이나 한량들과 함께 야심한 밤에 야참으로 시켜다 먹거나 인력거를 타고 와서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기생뿐 아니라 부유한 가정에서도 냉면을 배달시켜 먹어 냉면집에는 배달을 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 명씩 있을 정도였다고. 진주냉면에 올리는 고명 중 육전(납작하게 저민 쇠고기를 간장,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후 달걀 물에 묻혀 프라이팬에서 지져 만드는 고기 전의 일종)은 이러한 양반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맛은 물론 멋까지 챙기는, 풍류가 엿보인다.

    [출처]제이콘텐트리 여성중앙 | 기획 정미경 | 사진 문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