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가시기 전 쫄깃한 그 이름 한번 불러보자. 꼬막, 꼬오오오~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 그는 그저 수많은 어패류에 불과했다. ‘꼬오오’에 쫄깃, ‘막’에 짭조름. 육감적인 남도 갯벌에서 나고 자란 그 이름 앞에 ‘벌교’가 붙었으니 꼬막의 최고봉, 벌교 꼬막이로다. 지금, 꼬막품은 벌교로 간다.
남도는 푸짐하다. 산과 들에 넉넉한 뻘까지 품었으니 당연할 터. 특히 한반도에서 맛에 관해서라면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호남지방의 남도는 정말로 그러하다. 해산물과 농산물 등 풍부한 재료를 갖췄으니 다양한 요리가 발달했을 것이요, 푸짐한 ‘맛’이 있으니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여흥’도 필요했을 터다. 맛과 소리가 발달한 이유다. 이처럼 고장의 앞뒤를 살펴보면 정말 많은 얘깃거리가 스며있다. 눈으로 품을 자연, 귀로 담을 소리, 여기에 혀가 감탄할 맛이 있으니 어찌 남도를 외면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가장 본능적이며 직접적인 세치 혀가 먼저다.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맛, 찬바람 불어 올 즈음 제철을 맞는 벌교 꼬막을 찾아, 찬바람이 가실 즈음 길을 나섰다.
벌교에서 꼬막을 맛보지 않으면 섭섭하다. 꼬막만 맛보러 왔다기에는 너무 많은 생채기를 품은 곳이라 미안하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중심으로 벌교를 살펴보며 어떨까. 쫄깃한 꼬막이 응원한다
모두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지났건만 아직 바람이 차다. 향긋한 꽃바람이 한반도를 채우기 전 겨울과 헤어지기 위해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모두가 봄맞이에 취해있을 때 한 계절을 묵묵히 지켜준 겨울을 보내러 남도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가장 먼저 봄이 도착하는 곳이니 생각해보면 겨울을 보내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지 않은가. 복잡한 해안선이 만들어낸 풍경과 다양한 먹을거리를 품고 있는 남도의 겨울을 그리며, 꼬막을 찾아 나섰다.
벌교에도 장이 선다. 벌교천을 중심으로 오일장이 열린다. 날짜가 맞다면 놓치지 말자
벌교 지명의 유래 이야기를 품은 홍교
순천과 보성 사이, 여자만과 순천만에 안긴 푸근하고 푸짐한 갯벌을 품은 벌교. 이 고장은 이념의 대립으로 빚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소설 속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어 주인공들도 언젠가 이곳에 머물렀던 것 같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더불어 소설에서 글자로 만난 꼬막의 쫄깃한 맛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이제는 벌교하면 ‘꼬막’이 바로 따라 나온다. 꼬막 중 최고로 치는 ‘벌교 꼬막’ 아니던가.
<태백산맥> 소설 속 무대 오롯이 품은 벌교
벌교 꼬막을 맛보러 왔다지만 벌교를 살피려면 <태백산맥>이 먼저다. 사실 벌교 꼬막의 맛이 궁금해진 이유도 <태백산맥> 덕분이었으니까. 소설은 1948년, 여순사건이 일어나던 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좌익이 장악했던 벌교가 다시 군경의 수중으로 들어간 뒤 좌익 비밀당원인 장하섭이 벌교로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하섭이 몸을 숨겼던 소화의 거처는 물론 가까이 자리한 현부잣집도 보인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다면 반가운 장소들이다. 한옥이 기본이지만 곳곳에 일본풍이 더해졌다.
이번엔 벌교 읍내로 가보자. 벌교 읍내를 관통하는 벌교천에서는 그 위에 걸린 다리들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염상구가 벌교의 주먹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우두머리였던 쌍칼과 담력을 겨루던 철다리도 보인다. 이념의 대립으로 피비린내를 풍기던 부용교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흔히들 ‘소화다리’라고 부른다. 소설 속의 소화 때문인가 싶었건만 1931년 소화 6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란다.
이 소화다리, 부용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여순사건 때 여기서 우익인사와 지주 등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란군이 진압되었을 때는 반대로 좌익 인사들의 피가 흥건했다. 이제는 낡아 인도로만 쓰이고 그 옆에 차량 통행이 가능한 새로운 다리를 붙였다.
염상진이 지주들에게서 빼앗은 쌀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쌓아 놓았던 홍교(보물 제304호)는 소화다리 상류에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뗏목으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벌교(筏橋)라는 지명이 유래한 연유다. 뗏목다리가 있던 자리에 세운 홍교는 1729년(영조 5) 초안선사에 의해 석교(石橋)로 건립되었다. 무지개다리가 된 것은 1737년(영조 13) 다리를 다시 고치면서였다.
이외에도 벌교에는 중도방죽, 야학교회를 비롯해 토벌대 숙소로 쓰이던 남도여관, 김범우의 집 등이 남아있다. 나라 잃은 슬픔과 대립된 이념이 칼을 겨누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품은 공간이다.
드디어 쫄깃한 꼬막 맛볼 시간
참꼬막과 새꼬막으로 나뉘는 꼬막. 깊게 주름이 패인 왼쪽이 참꼬막, 상대적으로 얕은 주름이 새꼬막이다. 새꼬막은 ‘똥꼬막’으로도 불린다. 가격도 싸다. 평평한 맛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새꼬막이 더 입맛에 맞을 수도 있겠다.
꼬막을 까는 방법도 다르다. 참꼬막(왼쪽)은 꼬막이 맞물린 곳을 돌려서, 새꼬막(오른쪽)은 집게를 벌려 속살을 발라낸다
소설과 너무도 닮은 공간 덕분에 입맛을 잃었다고? 그래도 벌교까지 왔는데 꼬막 맛은 보고 가야한다. <태백산맥>에 등장한 꼬막을 살펴보자. 정하섭을 맞은 소화가 아침을 준비하면서 꼬막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장면부터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하고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맛’이라 비유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자, 이제 꼬막의 실체를 탐험할 시간이다. 이 쫄깃한 꼬막은 벌교천의 민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갯강 주변 갯벌에서 제일 잘 자라고 맛도 가장 좋다. 그래서일까. 여자만을 품은 갯벌을 두고 벌교 사람들은 ‘참뻘’이라 부른다. 여기서 나는 꼬막이 ‘참꼬막’이다. 주름골이 깊고 껍질이 단단하다. 짭조름하면서 쫄깃하면서 바다냄새까지 품고 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반찬으로도 맛있으니 별미중 별미로다
참꼬막과 새꼬막 본연의 맛을 봤다면 색다르게 변신한 꼬막을 맛볼 순서다. 꼬막전(위 왼쪽), 꼬막 탕수육(위 오른쪽), 꼬막 무침(아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도 비유로 등장하듯이 벌교의 명물은 역시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이다. 정하섭을 맞은 소화가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꼬막이 없음을 아수워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벌교 꼬막에 대해 조리법까지 자세히 풀어놓는다.
이렇듯 꼬막은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꼬막은 훌륭한 밑반찬이지만 호사가들은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하고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 맛‘이라 비유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참꼬막만 있는 게 아니다. 거시기한 이름 ‘똥꼬막’이라고 부르는 새꼬막은 양식 꼬막을 말한다. 참고막에 비해 상대적으로 껍질의 주름이 얕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살짝 맛이 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한다. 참꼬막과 새꼬막을 놓고 보면 겉모습만으로도 확연히 구분이 가능하다. 참꼬막은 추석부터 설날 무렵까지가 제일 맛있지만 이른 봄 3월까지도 쫄깃하고 탱탱한 꼬막을 맛보기에는 무리없다는 사실!
글, 사진: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msommer@naver.com)
여행정보
▶교통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IC→2번 국도→벌교 <수도권에서 5시간30분 소요>
대중교통
서울→벌교 센트럴시티호남선(02-2088-2635)에서 매일 1회(15:10/토 08:10, 08:30, 일 08:10 증편) 운행, 4시간30분 소요. 요금 2만9000원
부산→벌교 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매일 40~50분 간격(06:30~18:30)으로 17여 회 운행. 3시간 소요, 요금 1만4300원.
▶숙박
벌교 읍내에 자리한 그랜드모텔(061-858-5050), 대도장(061-858-0239) 등을 이용하면 된다. 가족 여행이라면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의 낙안읍성 민박집이 좋다.
▶별미
벌교에선 어느 식당이나 양념꼬막을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꼬막 전문집에서 꼬막 정식을 시키면 삶은 꼬막·양념 꼬막·꼬막 회무침·꼬막 된장국·꼬막전 등 꼬막요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부용교(소화다리) 앞 벌교꼬막식당(061-857-7675)과 거시기꼬막식당(061-858-2255)을 많이 찾는다. 꼬막 정식 1인분에 1만2000원에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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