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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스타일 여행

문성식 2012. 3. 14. 23:52

에디터의 스타일 여행


저마다 언젠가 꼭 가보겠노라 아껴둔 곳이 있었다. 소소한 일탈을 꿈꾸는 에디터들의 서로 다른 세가지 이야기. 군산 빈티지 여행, 동해 바다 열차 여행, 가평 캠핑카 여행.



시간이 머문 곳 군산 거닐기

봄바람이 살랑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역마살을 달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시간이 멈춘 듯한 ‘빈티지’의 도시 군산. 그곳에서 잃어버린 낭만을 만끽한 하루는 일상의 메마른 감성을 채우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08:10 칙칙폭폭~ 기차 타고 출발일세!
기차를 타본 지 언제던가 더듬어봤다. 한참을 생각해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스스로 자신에게 참 인색했다는 점에서 잠시 반성.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과 덜컹이는 기차소리를 느끼는 찰나, 눈을 떠보니 벌써 도착했단다. 내 ‘3시간 30분’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다니! 놀라서 짐 챙기고 있는데 기차가 슬금슬금 움직인다. 당황한 나머지 빨간 버튼 누르고 수동으로 문 열어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도저히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며 군산에 발을 디뎠다.
11:44 맛깔스런 남도 한정식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미리 찜해놓은 식당 ‘한주옥’에 들렀다. 회와 아귀찜, 농어매운탕, 간장게장에 편육과 잡채, 삼치 등을 곁들인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을 받아 들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가격은 한 사람당 1만3천원. ‘꺄악’ 소리 지르고 싶다. 음식, 가격, 맛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맛집 탐방에 텐션 업! 기분 좋게 나오는데, 음식점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맛집 포스가 줄줄 흐른다. 역시, 군산에 오길 잘했군, 잘했어.



12:50 웰컴 투 군산
배가 부르니까 이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층층이 높게 오른 회색빌딩 숲에서 벗어나 단층 건물 위로 보이는 정겨운 하늘. 그 정겨움 사이로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져서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오래된 일본 목조 양식 건물이 눈에 띈다. 일제 강점기, 수탈당한 많은 물자가 군산을 통해 일본으로 넘어갔던 그 시기의 아픔이 서린 도시 군산. 역사의 잔재는 이렇게 거리 곳곳에 남겨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채, 잔잔하게 흘러가는 항구도시의 굳건함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가. 하늘이 푸르고, 햇빛은 따사로웠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자연스러웠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와 심은하가 뛰어 다니던 군산 서초등학교의 운동장. 영화의 80%가 이곳 월명동에서 촬영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단팥빵 중 내 마음속 1위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세워진 최초의 빵집. 문의 063-445-2772

13:30 멈춰버린 기찻길, 페이퍼 코리아선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1944년, 신문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옛 군산역에서 조춘동 사이에 준공한 2.5km의 짧은 기찻길.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의 지붕과 빨랫줄 사이를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달리던 페이퍼 코리아선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멈췄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자리도 얼마 후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된단다. 어디선가 노란 안전모를 쓴 역무원 아저씨가 비키라고 소리칠 것만 같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철로 옆에 말려둔 무말랭이와 시래기가 여기저기 무심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도 여전했다. 진한 삶의 향기도, 선로 옆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디딤돌에 놓인 고무신도, 자주 출몰하는 손님들의 방문에 심드렁한 백구도 모두 한가롭다. 시간은 이곳만 쏙 비켜가 있었다.




군산의 2대 명물 중화요리집 쌍용반점의 짬뽕. 조개로 우려낸 시원한 국물과 수타로 뽑은 쫄깃한 면발이 후루룩 잘도 넘어간다. 문의 063-443-1259

15:00 희망이 꽃피는 봄 해망굴과 월명공원
옛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 해망동을 연결하는 터널인 해망굴은 1926년 개통한 국가등록 문화재다. 그 앞에 ‘안녕!’이란 글귀는 여행객을 맞이하는 센스. 굴을 따라 건너가면 ‘아트인시티 2006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을 전체가 벽화 옷을 입은 해망동으로 이어진다. 숨은 그림 찾기 혹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각기 다른 작품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골목골목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유쾌함에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듯. 3년의 시간이 흘러 곳곳이 벗겨지고 빛바랜 모습은 빈티지 도시 군산에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해망동을 상징하는 물고기 그림을 따라 올라갔더니 어느새 해망굴 위로 펼쳐지는 월명공원에 도착했다. 면적만 무려 77만 평에 이르고 산책로만 12km에 이르는 이 공원은 봄꽃으로도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명소.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진달래와 개나리까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꼭대기에 위치한 수시탑 바로 아래에는 그네와 미끄럼틀, 정글짐이 있는 새치름한 비밀의 정원이 숨어 있다. 그 그네를 타고 밑을 내려다보면 군산이 한눈에 담기는데, 마치 탄산 가득한 페리에를 벌컥벌컥 들이결 때처럼 짜릿한 여운을 만끽 할 수 있었다.
20:00 시간을 찾아서,다시 서울로
걷고, 또 걸었다. 어수룩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보고 싶은 곳을 찾아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한 가게 앞을 세번 이나 오갔더니, 마치 집 앞처럼 친근해진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세상의 번잡한 소음도 음소거된 도시 군산.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는 결론이다. 시간의 틈을 간직한 이곳, 군산의 멋진 하루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색다른 봄 여행 동해로 떠나요

봄도 왔겠다, 날도 좋겠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여름이 오기 전에 바다 한번 보겠다고 나선 길. 당일치기 바다 여행이라고 인천만 가란 법 있나 싶어 목적지를 동해로 정했다. 열차를 타고 바다를 만날 때 그 기분이란!


동해 전망대 쪽에서 바라본 삼양 목장의 전경

입장료 7천원. 티켓을 사자 작은 봉지의 라면을 공짜로 줬는데 요 라면이 꽤 고마운 아이템이 되어 주었다. 올라가는 길에 하나, 내려오는 길에 하나, 살짝 허기진 속을 생라면으로 때웠으니.

7:00 횡계행 버스에 오르다
‘강원도 = 당일치기 절대 무리’ 조언자들을 뒤로하고 이른 아침, 과감하게 횡계행 버스에 올랐다. 장평과 진부를 거쳐 횡계로 가는 노선. 동서울 터미널에서 평창 횡계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2시간 반 걸렸다. 중간중간 지방의 작은 버스 터미널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첫 목적지는 대관령 삼양목장.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타고 약 15분 정도 들어가자 하얀 젖소 모양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10:00 목장에 도착하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영화 <연애소설> 나무도 보고 ‘은서 준서 집’에도 가고 무엇보다 <다찌마와 리>에 나온 언덕을 찾아내고 말겠어! 하는 마음가짐으로 목장을 찾았으나 에디터의 이런 들뜬 마음은 허허벌판에 아직 듬성듬성 녹지 않은 눈으로 덮여 있는, 전혀 봄 같지 않은 모습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뒤늦게 알았다. 대관령이라는 곳이 원래 5월 중순이나 돼야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는다는 사실을. 대략좌절 모드 돌입.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연애소설>에 나왔다는 나무는 앙상한 가지뿐이었다. 바다가 훤히 보인다는 동해 전망대에 올라 그래도 외쳤다. “야호! 나는 대관령이 좋아!”


활짝 핀 벚꽃이 아름답던 경포호 주변의 모습.

점심 메뉴는 당연 강릉 초당 순두부. 4백 년 된 집이라는 말에 왠지 경건한 자세로 식사에 임하게 되었다. 위치 강릉시 운정도 256-3 문의 033-644-3516

13:00 경포대로 향하다
횡계에서 강릉은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들른 곳은 경포대였다. 색다른 여행을 즐기고자 떠난 마당에 모두가 아는 경포대에 들른 이유는? 대관령에서 보지 못한 초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강원도 토박이 기사님의 조언 때문. 강릉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10분 남짓(서울의 교통카드로도 강릉 시내 버스를 탈 수 있다). 경포 호를 둥그렇게 에워싼 벚나무의 아련한 향과 햇살에 반짝이는 분홍빛 꽃잎이 여전히 솔로인 내 마음에도 봄볕이 들게 만들었다. ‘아, 아름다운 날이에요.’ 여름이면 엄청난 인파로 인해 물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경포대 해변은 평일이라 그런지 인적도 드물었다. 청록빛 바다와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이유 없이 배가 고파졌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을 채우는 것이란 말이지.


위치 강릉시 임당동 성호상가 104호 문의 033-648-2710

카페에서 나와 우연히 접어든 골목길에 생각지도 못한 매력이 숨어 있었다.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감각적인 초상화들.

15:40 강릉 시내 탐방기
강릉에는 제대로 된 커피 집이 두 곳 있다. 그중 한 곳이 커피 공장 테라로사. 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다는 공장 대신 내가 찾은 곳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직영 카페 되겠다. 가로수길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외관과 실내 인테리어, 바 뒤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앤티크 잔이 눈에 띄었다. 공장에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 콩의 유통 기한은 15일 이내로, 신선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테라로사의 커피 맛을 표현하자면 그저 눈물이 날 정도? 포대에 담긴 커피 콩 옆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커피 공장을 들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왼쪽]해지기전 추암 해수욕장의 모습. 아직 봄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가운데쪽]다양한 이벤트와 목소리가 아리따운 승무원 언니의 즐거운 안내 방송이 함께하는 바다 열차.

17:30 바다 열차를 타러 가자
오늘의 메인 코스. 강릉과 삼척을 잇는 그 이름 바다 열차! 하루에 3회 운행하는 강릉발 삼척행 라인은 5시 40분이 마지막 열차다. 부랴부랴 탑승 절차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방송이 시작됐다. 가는 길 심심치 말라고 상품을 건 퀴즈도 내주고 사연과 함께 신청 곡도 받는 등 열차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간혹 모르는 사람들과 웃으며 눈인사를 나누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는지. 강릉 시내를 빠져나와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지자 직접 해변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맛에 기분이 업됐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라는 정동진에 열차가 잠시 머무는 동안 재빨리 내려 사진을 쾅쾅 찍었다. 이렇게 되면 정동진 앞바다까지 구경 완료.


[오른쪽]열차의 전 좌석은 바다 쪽을 향해 있다. 바다를 보기 편하게 배치되어 있는 기차 좌석.

18:49 마지막 여행지 추암역 도착
해가 떨어지기 약 8분 전. 바다 열차 경험자들이 모두 추천한 곳 동해시 추암 역에 도착했다. 바닷가에 널린 오징어는 만날 수 있었으나 추암의 명물 촛대바위는 7시면 문을 닫는 까닭에 보지 못했다. 또다시 좌절 모드. 그나마 중간에 해가 지는 바람에 오징어를 씹으며 어두운 바다를 바라봐야 했지만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8분이긴 해도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았고, 촛대 바위는 아니지만 비스무레한 바위는 볼 수 있었으니. 여행의 팁이라면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촛대바위 쪽으로 달려가는 것. 군인 아저씨들이 문을 닫기 전, 잠시나마 촛대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만약 1박 2일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곳에서 잠을 자고 일출을 본 후 다음 날은 삼척으로 향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쨌든 촛대바위는 꼭 봐야 한단다. 연거푸 대략좌절 모드.

[출처]제이콘텐트리 쎄씨 | 기획 김수정 박소현 김태정 | 사진 이광재 유건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