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지 못했으므로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머리로써보다 마음으로 알고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더라도 믿음은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성과 이치에 부합됩니다.
'보지 못하니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얼핏 듣기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결과를 보고 그 원인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4대조, 5대 조상을
뵈온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기 위해서는 4,5대조가
계셨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 여기 지금 내 앞에 마이크가 있습니다.
누가 이 마이크를 만든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못 보았다고 해서 마이크를 만든 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나라와 세계의 여러 방송국에서
보내는 많은 소리와 사진이 전파를 타고
공중 속을 왔다갔다 합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잡히는 소리나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채널을 맞추면
즉시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소리나 사진을 보내는
사람을 전혀 보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있어서
그것을 보낸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연 속에 볼륨이 너무 커서
인간은 들을 수 없는데, 동물의 귀에는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19-20킬로사이클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개, 박쥐, 돌고래가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하는 것은
그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동물의 소리가 없다고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해도
존재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어떤 결과를 보고서 그 원인을 보지는 못해도
쉽게 추리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을 깊이 믿는 사람들이었고,
오늘도 과학자들 중 많은 이가
역시 믿음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미생물학자인 파브르는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을 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미생물 속의 생명의 신비를 보고
하느님 없이는 도저히 이런 생명의 신비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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