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그들은 나를 너무나 모릅니다 / 김수환 추기경

문성식 2012. 2. 6. 20:12

     
    
      그들은 나를 너무나 모릅니다 '나는 세상 종말까지 죽음의 고통 속에 있으리라'고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역사의 종말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 나의 자녀들인 크리스찬들은 이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채찍과 편태를 받고 사지가 찢기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죽어 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모릅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소경입니다. 그들은 참된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죽어 가는데 어찌 삶을 즐길 수 있습니까? '주여,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은 과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인간은 말합니다. 만일 누가 당신을 해치면 나는 당신을 방어할 것입니다. 주께서 죽음과 싸우고 계시면 나는 단연코 주님의 편입니다.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사람들은 속고 있다고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믿고 또 때론 극히 진지합니다. 나는 이것을 즐거이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막히게 그릇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아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점차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메마르게 하고 속이 텅 비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내 성상(聖像)을 섬기는 걸로써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나도 그들을 일 년에 열두 번만 사랑한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규칙적으로 예배를 바치고 미사에 참석하고 금요일에 제(祭)를 지키고 나의 성상(聖像) 앞에서 촛불을 켜고 혹은 어떤 기도를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석고도 아니요, 돌도 구리도 아닙니다. 나는 살아 있고 쑤시고 아프며 고통받는 몸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있지만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나는 박봉을 받습니다. 나는 실업자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판자촌입니다. 나는 폐(肺)를 앓고 있고 다리 밑에서 잡니다. 나는 영어(囹圄)의 몸이요 착취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작은 형제들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만하면 말은 분명합니다.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헌데,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행여나 측은히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하고 기다렸지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는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었습니다. 나는 감금되고 따귀를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