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마음을 비운다는 것 / 김수환 추기경님

문성식 2011. 12. 22. 07:21

     
    
        마음을 비운다는 것 기도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미친 듯이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모든 지옥을 맛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지탱하기를 돕지 마시고 제가 뻗어 나가는 것을 돕지 마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저의 온 신의가 이지러질 때 그때에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 가고 싶은 것은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헤르만 헤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맨 끝에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죽임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라는 기도의 내용이 이 시와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비울 수 있을까요? '나'를 비우는 것은 나의 뜻을 거슬러서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 탐하는 일, 싫은 사람, 피곤한 시간을 맞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 더욱이 어두움 속에 내던져진 채 위로도 빛도 없는 가운데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와 같습니다. '나'가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비울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비우고 내던질 수 있을 때에 있습니다.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높은 분이었지만 낮아지고 부(富)한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 되었는데 나는 거꾸로 낮은 자가 높이 오르고 가난한 자가 부하게 되어 주님과 '반대로 살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님의 잠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