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내 삶은 어디를 향해서 걸음을 내딛는가 / 법정 스님

문성식 2011. 12. 22. 05:30

     
    
      내 삶은 어디를 향해서 걸음을 내딛는가 이런 일을 한번 가상해 보십시오. 병원에 진찰을 하러 갔더니 의사가 앞으로 1년밖에 못 산다고 선고를 내립니다. 조금 통증이 있어서 이름 있는 의사한테 진단을 받으러 갔는데 그런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사람은 언젠가 이 몸을 가지고 한번은 반드시 죽습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만은 어김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불확실하지만 이 몸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죽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입니다. 1년 후 죽는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 이제 내가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가 문제 됩니다. 지금은 막연히 아무렇게나 살았는데, 살아갈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 때,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의사는 1년이라고 했지만 그날이 1년보다 빨리 올 수도 있고 그보다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그날이 옵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한계상황입니다. 우리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입니다. 이 한계상황에 부딪혔을 때 삶에서 무엇이 보다 절실할 것인지, 무엇이 우리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이고 하지 않아도 될 지엽적인 일인지, 스스로 판단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그날을 맞이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후회 없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과 관계된 존재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불운이나 불행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내가 남을 불행하게 만든 과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다 까닭이 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이것이 업의 율동이고 그 메아리입니다. 절이든 교회든 습관적으로 다니지 마십시오. 제가 절에 사는 스님인데 왜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종교를 기호식품이나 취미생활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절과 교회는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서 친절과 사랑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 친절과 사랑으로 인해서 삶이 충만해집니다. 눈에 보이는 절과 교회는 여러분들을 그 마음속 절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가 책을 읽다 보니 이런 자료가 나옵니다. 1959년 티베트에서 팔십이 넘은 노스님이 중국의 침략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옵니다. 그때 기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저런 노인이 아무 장비도 없이 어떻게 히말라야를 넘어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스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아무 장비도 없이 맨 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노스님이 대답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왔습니다." 그 노스님은 뚜렸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땅으로 가야겠다고 염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순간순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삽니다. 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어디를 향해서 걸음을 내딛는가에 있습니다. 각자 한 걸음 한 걸음 어디를 향해서 내딛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또 나에게 그렇게 뚜렷한 삶의 목표가 있는지 없는지 거듭거듭 물어야 합니다. - 법정 스님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