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회에 다니기 두려운 이유들 3.

문성식 2011. 9. 13. 17:54

이유 3 “불교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못간다.”

 

어떤 사람은 불교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어르신이 기독교인이라면 제가 뭐하러 전도하러 왔겠습니까?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전도하러 온 겁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전도하러 올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인 수가 약 1천2백만명입니다. 그 중에 대부분은 과거에 불교를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00년전만해도 한국인들은 대부분이 불교나 유교신자들이었습니다. 100년 전만해도 전부 불교나 유교인들이었으므로 한국의 1천2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불교나 유교를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기독교를 믿던 사람은 부모가 기독교인인 모태(母胎)신앙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불교를 믿어도 개종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불교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다.’는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한국의 1천2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은 과거에는 거의 다 불교,유교신자였다. 나도 불교신자지만 교회에 나갈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형제자매 중에 불교 스님이 있어서 교회에 절대로 못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스님인 형제자매가 죽으라면 죽겠습니까? 스님인 형제자매가 지옥에 가자고 하면 가겠습니까? 당신의 운명이 형제자매에게 달렸습니까? 당신의 운명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당신 자신입니다. 기독교인수가 1천2백만명입니다. 1천2백만명의 기독교인 중에 형제자매가 스님이고 주지인 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스님이 기독교인이 된 분들도 많고 스님이 목사님이 된 분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나의 운명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운명의 주인은 나자신 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운명은 형제자매나 다른 사람에게 질질 끌려가는 운명이 아니라 내가 주관적으로 체험하고 판단하고 평가해서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해야 합니다.

 

‘팔러가는 당나귀’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한 노인이 아들을 데리고 당나귀를 팔러 장으로 몰고 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조금 가다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여인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저 못난 사람들을 보아요, 타고 갔으면 좋을 걸, 터덜터덜 먼지 길에 걸어가는 꼴이야 !”
이 말을 듣고 노인은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얼마 안 간즉 노인 몇 사람이 앉아서 젊잖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런 고약한 일이 있나 ”하고 한 노인 말했습니다.
“저런 걸 보아도 내 말이 맞아 요새 젊은 것들은 조금도 늙은이를 생각하지 않아, 젊은 놈이 타고 가는데, 가엾은 늙은 아버지는 걷고 있는 걸 보아”


이 말을 듣고 아들을 내리게 하고, 아버지가 당나귀를 탔습니다. 이렇게 조금 가다가, 어린애를 안고 가는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아니 저런 소견없는 늙은이, 어쩌자고 저만 편히 타고 어린 자식을 걸리는고, 아이구 가엾어라!”
한 여인이 하는 말을 듣고, 늙은이는 아들을 자기 뒤에 태우고 거의 다 왔는데, “여보 점잖은 양반” 한 젊은이가 불렀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둘이나 타고 간단 말이오, 두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것보다 내 생각에는 둘이 당나귀를 매고 가는게 좋을 것 같소.”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내려서, 당나귀 다리를 장대에 비끄러매었습니다. 그리고 장대 한 끝씩 매고 갔습니다.

 가다가 다리있는 데까지 왔습니다. 이 우스운 꼴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를 내어 웃는 바람에, 당나귀는 놀라서 버물적거리기 시작하드니, 마침내 동여 매었던 끈이, 끊어져 당나귀는 그만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주관이 없이 다른 사람의 말에 좌우되어 살다가 당나귀를 잃어버리게 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결단과 선택에 달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미련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운명의 선택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100년 전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만해도 한국인들은 전부 불교나 유교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온 후 불교신자 유교신자 불교스님 유교유림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불과 100년 만에 1천 2백만명의 기독교인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불교신자이므로 교회에 절대로 갈 수 없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1천2백만 기독교인 중에 대부분이 과거에 불교,유교신자였으므로 나도 교회에 나갈 수 있고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