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22)

문성식 2011. 8. 22. 10:30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22)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지내도록 하였다. 이후 로마 전례력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다음 팔일째 되는 날인 8월 22일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로 바꾸었다. 이날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 우리의 모후가 되셨음을 기념한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믿음이 빛을 내는 것을 보고 감사드린다. 바오로 사도는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주님의 부활을 믿으며 영광 속에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데 게으르지 말라고 당부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시며 그들의 삶이 불행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위선과 탐욕과 형식에 매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그들의 삶의 태도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섰습니다. 다시 일으키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여러분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시작입니다. 1,1-5.8ㄴ-10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하느님께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그분의 아드님, 곧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3-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새싹이 때 아닌 서리에 상하게 되면 피어나지 못하듯,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따스한 격려가 없다면 이 차가운 세상에서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고 가려진 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존 포웰의 『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시는 것은 그들의 찬 서리 같은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인정과 사랑이 피어나야 할 세상에 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오히려 차갑고 경직된 세상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두렵고 외롭습니다. 존 포웰이 지적하는 것처럼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영상은 신에 대한 경외심만을 강요하는, 두렵고 무서운 우상이 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두려운 하느님의 영상을 종교적 규범을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 이겨 내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지키기 어려운 숱한 법을 만들어 강요하면서(마태 23,4 참조), 그들은 내적으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외적으로는 명예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불행은 거짓 권위와 위선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데 있습니다. 종교를 통하여 위선자가 되고 허망한 권력을 일삼으니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그런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사랑은 영원하리(사랑의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