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 뉴스를 계속 읽다가는 스트레스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상태에 이르는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의학 전문지 기사를 읽으면 된다. 그런 글은 스트레스가 신경세포(neuron)를 파괴해 지금부터 몇 년 또는 몇십 년 안에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이 남은 신경세포마저 쉽사리 파괴해버린다고 말한다. 심장병이나 다른 스트레스 관련 질병으로 이미 사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세계는 실직, 자산 감소, 파산, 끝없는 전쟁 등으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런 암울한 시대가 단기적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부정적 면은 알 만하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면은 어떤가? 그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면 건강에 오히려 이롭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스트레스가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가벼운 건망증부터 중증 치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뇌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 외에 다른 여러 신체 질병도 스트레스 탓이라고 했다. 물론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 때문에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고, 위스키 다섯 잔을 들이켜 스트레스를 풀려 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상식적 명제는 무시했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이롭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스펜서 래서스(Spencer Rathus)가 쓴 <심리학 : 개념과 연관성(Psychology : Concepts and Connections)>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일부 스트레스는 건강에 이로우며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당면 문제에 집중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과학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늘 스트레스가 해롭다는 한결같은 이야기만 들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낮거나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의 성과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감은 일의 집중도와 성과 높여 위험이나 불확실성, 변화에 맞서는 인체의 호르몬 작용을 ‘스트레스 반응(stress response)’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반응은 원시시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생겨났다. 지금도 스트레스가 우리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제어만 한다면 스트레스 반응은 우리의 생존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반응은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정력적으로 활동할 힘을 준다. 캘리포니아대(UCLA) 정신과 교수 주디스 올로프(Judis Orloff)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감당해내도록 우리 몸의 시스템을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일을 더 잘하도록 의욕을 북돋워준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해 나중에 받을 더 많은 스트레스에 대비하게 해준다. 극심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부 심리학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만이 아니라 ‘외상 후 성장(PTG·외상이나 사고의 결과로 나타난 긍정적 삶의 변화)’으로 불리는 현상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올로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임상 사례나 증거를 보면 일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이로웠다.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금 더 균형 잡힌 접근법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쁜 스트레스만 연구하면 우리는 바로 그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신경 과학계에서 외면한 스트레스의 장점 일련의 과학자들에게 ‘도움 되는 스트레스’를 물었을 때 대부분은 애초에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이롭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고 한 연구자는 말했다. 다른 과학자는 스트레스가 이로울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가 미미하고 단기적이며, 실험 쥐에게서나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건 무슨 까닭일까? 예를 들면 혼란 속에 뛰어들어 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좋아해 경찰이나 응급 전문의가 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를 거꾸로 이용하지 않는가? 그러나 연구자들은 그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는 헛소리”라고 피츠버그대 의과대학원의 심리신경면역학자 브루스 라빈(Bruce Rabin)은 말했다.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찾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고 믿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거나 태아 시절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cortisol·부신피질에서 생기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에 과도하게 노출돼 지속적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병리적 현상일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실제로 병에 걸린 것일까? 브루스 라빈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eustress
일상에 도움 되는 ‘유스트레스’의 존재 스트레스 연구의 개척자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기가 막혀서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 한스 셀리에(Hans Selye)는 1930년대에 캐나다 몬트리올대에서 스트레스 과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도움 되는’ 스트레스의 존재를 확신한 나머지 ‘유스트레스(eustress·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스트레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으며, 스트레스를 ‘삶의 소금’으로 간주했다. 또한 그는 우리 삶에서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변화를 걱정한다는 것은 변화를 창의적으로 더욱 주의 깊게 사고하는 현상의 이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창의적 사고는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이 발달한 뇌에서만 가능하다. 즉 스트레스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셀리에가 쥐를 대상으로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이다. 셀리에에게는 과학적 첨단 실험 기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행운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쥐에게 내분비 추출액(호르몬)을 주사하면 어떻게 되는지 연구했다. 그는 손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주사를 놓다가 쥐를 떨어뜨려 실험실 바닥에서 도망 다니는 쥐를 빗자루를 들고 쫓았다. 그의 쥐는 거의(심지어 생명체가 무해하다는 식염수를 주사한 쥐도 포함)가 궤양, 부신 확장, 면역 장애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셀리에는 이것을 실험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발견이라고 판단했다.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분비로 인지 감각 발달해 사실 셀리에의 쥐들은 그가 주사한 화학물질에 반응한 게 아니었다. 쥐들은 주삿바늘을 다루는 그의 서툰 손에 반응했다. 셀리에는 주사를 놓다가 쥐를 떨어뜨리거나 이곳저곳 찔러대거나 귀찮게 했다. 쥐들은 그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결국 셀리에는 주사를 잘 놓지 못해 쥐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준 셈이다. 셀리에는 그런 쥐들이 보인 반응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스트레스 반응이 애초에 발달한 이유, 즉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려고 스트레스 반응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쥐로서는 굶주려 야윈 고양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 요인은 없다. 그런 고양이를 만나면 쥐의 뇌는 위험을 인식하자마자 호르몬을 대량 분비한다. 처음에는 아드레날린, 그다음은 코르티솔이다. 그러면 근육에 에너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뇌의 여러 부위를 활성화해 일시적으로 특정 기억 기능을 향상시키고 감각의 인지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이렇게 무장한 쥐는 고양이가 자신을 힘으로 압도하거나 지력으로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고대하던 먹잇감을 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뇌를 흥건히 적신다. 이런 화학물질의 연쇄반응을 우리는 ‘스트레스(stress)’라고 부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