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상식

누가 스트레스를 나쁘다 말하나?

문성식 2011. 8. 1. 14:51

누가 스트레스를 나쁘다 말하나?

 

요즘 경제 뉴스를 계속 읽다가는 스트레스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상태에 이르는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의학 전문지 기사를 읽으면 된다. 그런 글은 스트레스가 신경세포(neuron)를 파괴해 지금부터 몇 년 또는 몇십 년 안에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이 남은 신경세포마저 쉽사리 파괴해버린다고 말한다. 심장병이나 다른 스트레스 관련 질병으로 이미 사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세계는 실직, 자산 감소, 파산, 끝없는 전쟁 등으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런 암울한 시대가 단기적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부정적 면은 알 만하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면은 어떤가? 그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면 건강에 오히려 이롭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스트레스가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가벼운 건망증부터 중증 치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뇌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 외에 다른 여러 신체 질병도 스트레스 탓이라고 했다. 물론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 때문에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고, 위스키 다섯 잔을 들이켜 스트레스를 풀려 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상식적 명제는 무시했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이롭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스펜서 래서스(Spencer Rathus)가 쓴 <심리학 : 개념과 연관성(Psychology : Concepts and Connections)>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일부 스트레스는 건강에 이로우며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당면 문제에 집중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과학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늘 스트레스가 해롭다는 한결같은 이야기만 들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낮거나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의 성과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감은 일의 집중도와 성과 높여
위험이나 불확실성, 변화에 맞서는 인체의 호르몬 작용을 ‘스트레스 반응(stress response)’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반응은 원시시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생겨났다. 지금도 스트레스가 우리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제어만 한다면 스트레스 반응은 우리의 생존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반응은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정력적으로 활동할 힘을 준다. 캘리포니아대(UCLA) 정신과 교수 주디스 올로프(Judis Orloff)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감당해내도록 우리 몸의 시스템을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일을 더 잘하도록 의욕을 북돋워준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해 나중에 받을 더 많은 스트레스에 대비하게 해준다. 극심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부 심리학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만이 아니라 ‘외상 후 성장(PTG·외상이나 사고의 결과로 나타난 긍정적 삶의 변화)’으로 불리는 현상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올로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임상 사례나 증거를 보면 일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이로웠다.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금 더 균형 잡힌 접근법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쁜 스트레스만 연구하면 우리는 바로 그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신경 과학계에서 외면한 스트레스의 장점
일련의 과학자들에게 ‘도움 되는 스트레스’를 물었을 때 대부분은 애초에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이롭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고 한 연구자는 말했다. 다른 과학자는 스트레스가 이로울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가 미미하고 단기적이며, 실험 쥐에게서나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건 무슨 까닭일까? 예를 들면 혼란 속에 뛰어들어 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좋아해 경찰이나 응급 전문의가 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를 거꾸로 이용하지 않는가? 그러나 연구자들은 그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는 헛소리”라고 피츠버그대 의과대학원의 심리신경면역학자 브루스 라빈(Bruce Rabin)은 말했다.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찾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고 믿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거나 태아 시절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cortisol·부신피질에서 생기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에 과도하게 노출돼 지속적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병리적 현상일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실제로 병에 걸린 것일까? 브루스 라빈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eustress

일상에 도움 되는 ‘유스트레스’의 존재
스트레스 연구의 개척자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기가 막혀서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 한스 셀리에(Hans Selye)는 1930년대에 캐나다 몬트리올대에서 스트레스 과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도움 되는’ 스트레스의 존재를 확신한 나머지 ‘유스트레스(eustress·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스트레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으며, 스트레스를 ‘삶의 소금’으로 간주했다. 또한 그는 우리 삶에서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변화를 걱정한다는 것은 변화를 창의적으로 더욱 주의 깊게 사고하는 현상의 이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창의적 사고는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이 발달한 뇌에서만 가능하다. 즉 스트레스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셀리에가 쥐를 대상으로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이다. 셀리에에게는 과학적 첨단 실험 기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행운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쥐에게 내분비 추출액(호르몬)을 주사하면 어떻게 되는지 연구했다. 그는 손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주사를 놓다가 쥐를 떨어뜨려 실험실 바닥에서 도망 다니는 쥐를 빗자루를 들고 쫓았다. 그의 쥐는 거의(심지어 생명체가 무해하다는 식염수를 주사한 쥐도 포함)가 궤양, 부신 확장, 면역 장애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셀리에는 이것을 실험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발견이라고 판단했다.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분비로 인지 감각 발달해
사실 셀리에의 쥐들은 그가 주사한 화학물질에 반응한 게 아니었다. 쥐들은 주삿바늘을 다루는 그의 서툰 손에 반응했다. 셀리에는 주사를 놓다가 쥐를 떨어뜨리거나 이곳저곳 찔러대거나 귀찮게 했다. 쥐들은 그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결국 셀리에는 주사를 잘 놓지 못해 쥐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준 셈이다. 셀리에는 그런 쥐들이 보인 반응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스트레스 반응이 애초에 발달한 이유, 즉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려고 스트레스 반응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쥐로서는 굶주려 야윈 고양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 요인은 없다. 그런 고양이를 만나면 쥐의 뇌는 위험을 인식하자마자 호르몬을 대량 분비한다. 처음에는 아드레날린, 그다음은 코르티솔이다. 그러면 근육에 에너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뇌의 여러 부위를 활성화해 일시적으로 특정 기억 기능을 향상시키고 감각의 인지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이렇게 무장한 쥐는 고양이가 자신을 힘으로 압도하거나 지력으로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고대하던 먹잇감을 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뇌를 흥건히 적신다. 이런 화학물질의 연쇄반응을 우리는 ‘스트레스(stress)’라고 부르는 것이다.

 


호르몬 분비의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으로 바뀌면
쥐의 경우 자극은 대개 고양이나 손재주가 없는 과학자 같은 상대의 물리적 위협에 국한되지만, 인간의 경우 거의 모든 것이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한다. 교통 체증, 손님 접대, 실직, 심지어 취직도 맹수의 공격만큼이나 우리 뇌에 많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듯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걱정한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스트레스 호르몬의 스위치를 ‘켜기’로 해놓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경향이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뇌의 신경세포가 호르몬의 자극에 지쳐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으로 바뀐다. 그 결과 셀리에의 쥐들이 당한 것과 똑같은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신경세포가 오그라들어 서로 신호를 전달하지 않고 학습과 기억 능력, 합리적 사고에 관여하는 해마 부위와 전전두 피질의 뇌 조직이 위축된다. 만성적으로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다른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런 만성적 효과는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면 저절로 없어진다. 시험을 준비하는 의과대학생들은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동안 내측 전전두 피질이 수축되지만 시험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쉬면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스트레스가 심한 사건을 겪은 뒤 반드시 한 달간 휴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쉰다 해도 그 시간을 또 다른 문제를 걱정하느라 허비한다. 그런 걱정은 원래 스트레스 요인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 스트레스가 우울증, 알츠하이머병과 관련 있는 이유는 신경세포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수년 동안 노출되면 극도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은 결국 우울증이나 치매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가 이로운 영향 끼쳐
하지만 우리는 대개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살바토레 매디(Salvatore Maddi)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리노이 벨 전화 회사가 해체 위기에 처했을 때 거기 다니던 직원 4백3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직원 대다수가 심적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 업무 성과가 형편없었고, 이혼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심장마비나 비만·뇌졸중에 걸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직원 전체의 3분의 1은 아무 탈이 없었다. 그들은 건강을 잘 유지했고 직장에서 살아남았거나 해고당해도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얻었다. 그런 사람들의 성장 환경은 평화롭고 안락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배경을 조사해본 결과 결코 그렇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직원 중 다수는 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었다. 학대나 정신적 외상은 아니라 해도 “아버지가 군인이라 이사를 자주 다녔거나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도 많았다”고 매디는 말했다. “그들은 그런 어린 시절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늘 그들이 집안의 희망이며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면서 그들을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들도 부모의 그런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런 요인이 그들을 강건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오히려 이로운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해낼 어떤 힘을 주었다는 뜻이다.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도 발견해
신경생물학 분야의 연구는 아직도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의 개인적 차이를 거의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의 효과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변하는 전환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전환점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거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이롭다고 말하는 걸 원치 않는 것이다. 피츠버그대학의 브루스 라빈은 “실제로 개인마다 그 수준이 다르게 마련인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는 개인마다 스트레스를 달리 경험하는데도 스트레스를 보편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띤다. 매디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이 설명의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다. 결국 어린이가 적응력이 뛰어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인으로 자라려면 적절히 통제된 약간의 스트레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왜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그럴수록 더 일을 잘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유전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serotonin)의 처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일부 유전자는 정신적 외상을 겪었는지 그 여부에 따라 우울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는 일상적 스트레스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스트레스와 직접 관련 있는 유전자가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유전자가 발견되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차인 뒤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과 그냥 한두 주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사람을 미리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반응 억제 능력, 남성보다 여성이 높아
X·Y염색체도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에 관여한다. 그러나 그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남성과 여성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수치가 올라간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보이는 행동은 성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UCLA의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Shelley Taylor)는 “여성은 애인이나 친구들에게 하소연할 가능성이 크며 그럴 경우 옥시토신(oxytocin·배려와 친교에서 활성화되는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돼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한다”면서 “스트레스 요인이 생겼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초기 호르몬 반응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없으면 뇌에 장기적으로 해를 미칠 위험이 적다.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도 1990년대 중반까지 그런 사실은 스트레스 심리학자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오지 않았다. 테일러는 그때까지 스트레스 연구가 동물이든 사람이든 거의 수컷과 남성을 상대로 실시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유전자와 환경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모호한 영역, 자궁이 있다. 임신부가 받는 스트레스가 나중에 자녀의 발육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그 증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신 중 적당한 스트레스는 태아의 발육에 이롭다
1998년 캐나다 퀘벡 주를 휩쓴 진눈깨비 돌풍 사고를 이겨낸 1백50여 명의 임신부(일부는 최장 40일까지 전기 없이 생활해야 했다)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자. 지난해 말 연구자들은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만 5세 때 지능지수(IQ)와 언어능력이 평균치보다 낮았다고 보고했다. 돌풍과 그 때문에 임신부가 받은 스트레스가 “우리가 조사한 모든 발육 분야에서 자녀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하지만 모든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겁낼 필요는 없다. 진눈깨비 돌풍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스트레스 요인과는 다르다. 그리고 이 연구의 대상이 된 여성들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당시 퀘벡 주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들의 자녀는 순전히 가난 때문에 IQ와 언어능력이 낮았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와 아동 발육에 관한 연구는 대개 이런 식의 결함이 있다고 존스 홉킨스대의 아동심리학자 디피에트로(Dipietro)는 말했다. 아울러 “스트레스가 아기에게 해롭지 않다는 연구에 자금을 지원한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이 낳은 아기가 생후 2주가 지났을 때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은 여성이 낳은 아기보다 신경 전달 속도가 더 빠르다(뇌가 더 성숙했다는 말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트레스에 찌든 어머니의 ‘내부 환경’(태아가 감지하는 심장박동, 혈압 등의 신호)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런 끊임없는 변화가 태아의 뇌를 자극해 사고 능력을 촉진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여성이 분주한 일상에서 흔히 부닥치는, 낮거나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는 태아의 발육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필수적’일지 모른다고 디피에트로는 주장한다.

 

스트레스 극복을 돕는 명상 프로그램
우리가 스트레스를 잘 다룰 능력을 타고나진 않았다 해도 우리 자신은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이 달라질 수 있을까? 전후 맥락을 고려해 올바른 판단을 할 정도로 현명한 우리 인간이 그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승려 같은 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의 정신적 안정과 마음의 평정은 절대 신비로운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뇌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서 변화할 수 있다. 명상이 이 과정을 촉진하는 듯하다. 명상을 수년 동안 수련한 승려들은 학습, 행복감과 관련한 뇌 부위의 활동이 활발하다. “우리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고 매사추세츠대 의과대학원 ‘의학, 건강, 사회, 마음 챙김 센터(Center for Mindfulness in Medicine)’의 사키 산토렐리(Saki Santorelli) 소장은 말했다. 이 센터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명상은 스트레스 극복에 도움을 준다. 심지어 명상이 이미 손상된 뇌의 일부를 복구하거나 보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승려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런 명상 훈련소에서 8주를 보낼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다행히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방법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길이 있다. 예컨대 윌리엄스 라이프 스킬스 프로그램(Williams Life Skills Program) 같은 단기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듀크대 정신과 교수 레드퍼드 윌리엄스(Redford Williams)의 연구에 기반을 둔 ‘축소판’ 인지 개조 프로그램으로 하루 반나절 만에 끝난다. 윌리엄스는 “득도는 아니라 해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자신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을 분석하는 기준을 배울 수 있다고도 했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가? 내가 화를 내야 하나?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나? 그런 고생을 할 가치가 있나? 등등.

 

스스로 통제하는 자유 있어야 스트레스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스트레스 관리 전술에는 ‘딜레마’가 숨어 있다. 그런 전술이 실제로 효과가 있기를 바라야 하며, 또 그것을 위해 기꺼이 전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또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운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잘못된 마음 상태로 행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물 실험이 있다. 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작은 우리에 쥐 두 마리를 넣은 뒤 각각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첫 번째 쥐는 원할 때마다 운동을 할 수 있게 했고, 두 번째 쥐의 쳇바퀴는 첫 번째 쥐가 운동하면 같이 돌 수밖에 없도록 쳇바퀴를 연결해놓았다. 운동(쳇바퀴 돌기)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개 운동은 명상처럼 스트레스를 줄이고 뇌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 첫 번째 쥐의 뇌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두 번째 쥐는 뇌세포를 많이 잃었다. 뇌에 당연히 이로워야 할 운동을 했지만 한 가지 결정적 요인이 없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유다. 자신이 원하는 ‘운동’ 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운동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단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서 운동을 경험했을 뿐이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이롭다는 사실을 직시하라
이 쳇바퀴 실험은 스트레스에 관한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스트레스 처리 과정에서 가장 큰 요인이 ‘우리가 삶에서 얼마나 통제력을 갖느냐(How much control we have over our lives)’는 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개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한다고 느낄 때 스트레스를 극복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굴복하고 만다. 명상을 아무리 많이 하고, 사고방식을 아무리 고쳐도 우리 삶의 일부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세상이 지옥으로 치닫는 요즘, 수많은 사람이 앞 실험의 두 번째 쥐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 하나 마음대로 제어한다고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스트레스 과학은 여기서도 어느 정도 희망을 준다. 셀리에로 돌아가보자. 그는 대공황 도중에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다. 어느 시대보다도 스트레스가 심했고 생존하려면 창의력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였다. 그 공황은 오래전에 끝났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공황이라 할 만한 상황으로 진입했다. 거기서 헤쳐나오려면 더욱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의 어떤 부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 거기에 신중히 전념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을 갖춘 뇌가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게 뻔하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