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4
성경 이야기-4
D. 4부
23. 개역한글,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 현대어 성경, NIV 성경의 역사와 실체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어언 130여 년이 지났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초기부터 성경번역과 함께했기 때문에, 한국 성경의 역사도 130년에 가깝습니다.
이 한 세기 동안 한국교회는 여러 종류의 성서들을 갖게 되었는데, 1882년에 처음으로 번역된 <누가복음>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개역개정판>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성서들은 한글 성서번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a) 최초의 성경 <예수셩교젼셔>에 나타난 변개
최초의 한글 성경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중국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가 번역한 쪽복음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 1882>이다. 당시 우리 나라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막 풀려 문호가 개방된 상태이고, 로스는 중국과 접한 국경 지역인 "고려문"에서 한국 청년들과 만나 이응찬, 서상륜 등의 조력을 받아 한글 성경을 번역하게 되었다.
번역은 1877년에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매제인 맥킨타이어(J. MacIntyre)가 참여함으로 더 활력을 띠게 되었다. 이어 1883년에는 요한복음이 <예수셩교셩셔 요한늬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1885년에는 <신약 마가젼복음셔 언회>가, 그리고 1887년에는 <예수셩교젼셔>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완간되었다. 이 성경은 영국성서공회(British & Foreign Bible Sociey)의 후원으로 이루어졌고, 여러 사람이 참여하였지만 주로 로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보통 "로스역"이라고 불린다.
로스는 그의 번역 원칙을 1883년 1월에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 본문의 뜻과 일치하면서 한국어 어법에도 맞는 절대 직역을 한다.
2) 영어역본보다는 <개역 그리스 성경>을 기준으로 한다.
3) 필요한 경우에는 의역을 한다.
......
6) <개역 그리스 성경>을 그대로 따른다. 요한복음 8:1-11의 '간음한 여인 사건'과 마가복음 16:9-20은 사본상의 문제로 생략한다.
처음 이 성경은 중국어 성경인 <문리, 文理>역본에서 번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이어 영국에서는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편수한 헬라어 성경을 보내 주었고, 로스와 맥킨타이어는 <문리>성경에서 번역한 일차 원고를 헬라어 성경으로 2차 번역하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표준원문>의 권위를 뒤엎고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변개된 헬라어 성경을 편수했고, 역시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뒤엎고 <영어 개역본, RV, 1881>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한글 성경이 1882년에 출간되었으나, 한글 성서는 그 기원부터 RV로 시작하는 영어 성경의 변개 역사와 정확히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b) <구역성경>에 잘못 붙여진 이름
이어서 1900년에는 그때까지 발간된 성경 단편들을 모아 신약전서가 출간되었는데, 1887년에 나온 <예수셩교젼셔>가 로스의 개인역이라면, 이 성경은 "성서번역자회"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최초의 "공역"이라 할 수 있다. 1906년에는 이 성경을 수정하여 다시 <신약젼셔>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는데, 이를 소위 <공인성경, Authorized Version>이라고 부른다.
주의할 점은 <공인성경>이라고 불렸다고 해서 이 성경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이나 <표준원문>에서 번역된 성경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한 개인의 사역(私譯)이 아니라 어떤 단체의 이름으로 펴낸 공역(共譯)으로서 그것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영어에서는 "Authorized Version"이라는 표현이 오직 <킹제임스성경>에만 사용된다. 이 말은 "공인역본"이라기보다는 "권위역본"이라는 말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이 두 가지 명칭을 모두 취한다. 왜냐하면 이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 있는 성경이기 때문이며, 이 성경은 누구에게나 공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인성경"이나 "권위역본"이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바른 성경에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다. 따라서 바른 원문에서 번역하지 않은 한글 성경에 "공인성경"이나 "Authorized Vers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영미권에서는 종교개혁 이래로 바른 성경이 자리를 잡아 왔고, <킹제임스성경>은 300년 이상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르러 이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변개된 성서들이 학자들의 권위를 빌려 머리를 들게 되었다. 반면 처음부터 바른 성경이 없었던 우리 나라에서는 변개된 성경이 그 권위의 자리를 고스란히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06년의 이 <신약젼셔>는 1911년에 구약까지 번역이 완성되어, 한국 교회는 처음으로 신구약성경 전체, 즉 <셩경젼셔>를 갖게 되었다(구약이 처음 나왔을 때는 신구약이 합본된 것이 아니라, <구약젼셔>가 두 권으로 [창세기에서 에스라까지 한 권, 욥기에서 말라키까지 또 한 권] 발행되었고, <신약젼셔>가 별도로 있었다.). 이 성경은 후에 개역성경의 모체가 되었으며, 서로 구분하기 위해 "구역"(舊譯)성경이라고 부른다.
c) 개역성경의 오류가 지적된다.
드디어 1938년에 개역성경이 등장했다. 이 이름은 1911년의 성경을 "개역"했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다. 이후 개역성경은 그 이름에 걸맞게 64번의 "개역"을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오늘날 사용하는 개역성경은 1956년 판이고,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고쳐진 것이다.
이 성경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회에 절대적인 성경으로 자리해 왔다. 1906년에 얻은 "공인 성경"이라는 이름이 <구역성경>을 거쳐 개역성경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개역성경은 최근까지 큰 방해 없이 영미권에서 <킹제임스성경>이 누려 오던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흠정역"이라는 이름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이 땅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 개역성경은 한국 교회에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서 비판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여러 다른 번역본들의 출현이 요구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된 <현대인의 성경, 1986>이나 성서교재간행사에서 출간된 <현대어 성경, 1992>, 한국표준성서협회의 <표준신약전서, 1983> 등인데, 이는 미국에서도 수십 종씩 발간되어 쏟아지는 여러 현대 역본들의 조류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는 먼저 성서공회 자체 내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개역성경이 여러 번에 걸친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역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지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틀린 원문을 사용한 것을 시인했다거나, <킹제임스성경>에 비춰 보니 오역이 많다는 그런 올바른 회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지 개역성경은 문체가 고어체이고, 또 한문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글 세대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많아 "표현들"을 바꿔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한번도 원문에 대한 시비는 대두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개역성경의 판권이 비록 대한성서공회에 있기는 하지만, 사실 개역성경은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성경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름으로 번역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역성경은 1911년의 <구역성경>의 개정이었고, 그것은 1906년의 <신약젼셔>를 따른 것이며, 그것이 비록 "성서번역자회"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많은 부분은 서상륜이나 로스역 등 개인역에서 가져온 것이고, 더욱이 "성서번역자회"는 지금의 대한성서공회의 모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들로 대한성서공회는 개역성경을 바꾸려고 시도했는데, 그 결과로 대한성서공회의 이름으로 처음 나온 성경이 <신약전서 새번역, 1967>이었다. 이 성경은 후에 <표준새번역>의 모체가 된다.
d) 에큐메니칼 성서, <공동번역>
그러나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다. 하긴 아직 신약만 내놓은 <새번역>이 개역성경의 자리를 차지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으리라. 이에 성서공회는 <새번역>에 대한 지속적인 작업을 함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였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신, 구교간의 통일된 성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공동번역 성서, 1977>이다. 이것은 신, 구교간의 연합이라는 한국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커다란 한 획을 성서공회의 이름으로 긋는 엄청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서공회는 기본적으로 카톨릭과 개신교는 하나며,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이상 둘 사이에 다른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개역성경은 원래부터 카톨릭 성서였다. 왜냐하면 그 원문 자체가 로마 카톨릭의 변개된 원문이기 때문이다. 번역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일지 모르나, 삭제된 것이라든지(마 17:21, 행 8:37 등) 그리스도의 신성이 격하된 것이라든지(눅 23:42 등), 삼위일체의 교리를 감춘다든지(요일 5:7), 보혈의 공로를 무시하는(골 1:14) 부분은 원문이 같기에 로마 카톨릭 성서와 개역성경은 똑같이 변개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모든 표현에 있어서도 로마 카톨릭과 똑같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한국 교회를 로마 교황의 치마폭 안으로 집어 넣으려는 로마의 음모에 넘어간 것이다. 외적으로는 대한성서공회가 이제는 개신교만의 단체가 아니라 로마 카톨릭까지도 관장하는 단체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그들의 숨은 의도였던 것이다.
<공동번역>의 번역위원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로 카톨릭측에서는 선종완 신부와 개신교측에서는 문익환 목사를 들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얼마 전에 작고한 문익환 목사는 자유주의 목사이자 민중운동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평가되기로는, 그는 시(詩)문학과 히브리어에 능통한 학자로, 구약번역에 친히 참여한 학자이다. 특히 <공동번역>의 아가서는 그의 문학성과 히브리어 실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공동번역>에 관계해서 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 중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문 목사는 구약을 번역하다가 때때로 어떤 단어로 번역해야 할지 몰라 고심한 적이 많았다. 선 신부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데, 그럴 때면 선 신부가 문 목사에게 담배 한 대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대 피우시고 생각하시죠. 한 대 하시면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생각날거요" 그러면 문 목사는 그가 권해 준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단어를 생각해 내곤 했다고 한다. 선 신부는 다른 신부들과는 달리 담배를 즐기지 않는데, 오직 문 목사의 번역을 위해 담배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한다. 한 마디로 <공동번역>은 시인들이 술 한 잔 하며 풍유를 읊듯이 번역된 책이다.
사실 대한성서공회는 <공동번역>을 출간함과 동시에 개역성경을 폐기시키려고까지 계획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카톨릭 교회는 이 새로운 성경을 받아들였지만,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공동번역>을 거부하고 개역성경을 옹호한 것이다. 이제 개역성경은 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성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동번역>의 출간은 카톨릭 교회에게 "좋은" 성경을 제공해 준 의의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성서공회의 자존심이 담긴 문제였다. 성서공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표준새번역>이라는 새로운 성경의 출간에 온 힘을 기울였다. <공동번역>이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카톨릭의 참여로 실패한 경험을 살려, <표준새번역>에는 한국교회에서 인정받는 학자들과 보수교단들을 주로 참여시킨 것이다. 성서공회는 이 성경을 소개함에 있어서, 번역에 참여한 학자들과 교단들의 이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이는 한국교회에 충분히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e) <표준새번역>의 실패
하지만 드디어 1993년에 <성경전서 표준새번역>이 출간되었을 때, 한국교회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이 나올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반대를 한 것이다. 각 기독교 신문들과 잡지들에는 3년 이상 이 성경에 대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대한성서공회의 부총무인 민영진 박사는 이에 대해 일일이 답변해 주기에 바빴다.
<표준새번역>에 대한 각계의 비판은 "표현이 세속적이다." "여호와를 주로 바꾸었다." "직역이 아니다." 등 무수했다. 개중에는 논리적이지 못하고, 설득력이 부족한 비판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판 속에서 개역성경에 대한 한국 교회의 절대적인 의존도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몇몇 교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표준새번역>을 외면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성서공회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들은 1983년부터 1992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 동안 개역성경의 수정이나 교정이 아닌 전혀 새로운 번역, 개역성경의 뒤를 이어 한국의 대표적인 성경으로 자리잡을 이 성경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이미 인쇄되어 나온 <표준새번역>이 외면당하자 일단 많은 군인 교회들에 "보급"해 버렸지만, 그들은 이 번역본을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다.
<표준새번역>이 "의역"이라는 비판이 가장 많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의역("내용동등성 번역")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주장한다(민영진, "성경번역에 있어서 직역과 의역" [<그 말씀> 93년 5월호, pp.104-112) 의역이면서도 오히려 원문에 더 충실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원문"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에서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전서>(UBS 3판)로(<표준새번역> 서문을 볼 것)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젼셔>(로스역)와 마찬가지로 변개된 원문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이처럼 <표준새번역>이 옳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더 깍아 내려지는 성경은 개역성경이다. 그들은 개역성경이 틀린 성경임을 한국 교회에 더 많이 알리려고 힘쓴다. 그래야 그들의 성경인 <표준새번역>이 더 우수한 성경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성서공회의 목적은 개역성경을 폐지하고 자기들이 번역한 성경이 대표성경이 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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