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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2백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만족도’를 조사, 연구한 노익상씨.
“우리나라 부부들은 참 무덤덤하게 사는 것 같아요. 그냥 섹스만 할 줄 알았지 사랑을 표현할 줄도 잘 모르고요”
최근 결혼한 부부 1천2백쌍을 대상으로 ‘한국 도시 기혼남녀의 배우자 만족도’를 조사, 박사과정 논문을 발표한 노익상씨(55·한국리서치 대표). 그는 “우리나라 부부들 대부분이 배우자의 사랑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가운데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 한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의 차원을 넘어 한이불 밑에서 살을 맞대고 사는 것이 부부지간. 그만큼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중요한 관계를 맺고 사는 부부관계에 대해 그는 어느 순간 스스로 ‘부부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내(남편)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희 회사가 워낙 바쁜데다 저 또한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다 보니 거의 매일 밤 12시, 1시에 집에 들어갔죠. 결혼한 이후 15년 동안 그렇게 지내다 어느 토요일 오후 3시쯤 평소 잘 가던 술집이 문을 닫아 딱히 갈 데도 없고 해서 집엘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집사람을 비롯하여 아이들 모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예요. ‘저 사람이 어디 아픈가’ ‘뭔 일이 있나’ 하는 눈초리였죠. 처음으로 대낮에 집에 들어가 좀 쉬려고 했는데 내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실에 앉아 있자니 그것도 어색하고…. 도대체 내가 이 집안에서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15년간의 결혼생활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가 아빠나 남편으로서 뭘 했는지 싶더라고요.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주변에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특히 ‘부부란 무엇인가’ 싶더라고요.”
그는 부부라는 게 상당이 중요하고 미묘한 관계임에도 그동안 우리나라엔 부부의 갈등이니 외도니 하는 것은 많아도 노년이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부부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한 것을 보지 못했기에 실제 결혼해서 살고 있는 부부들을 통해 행복한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의 모습을 유형화하여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싶어 ‘부부 만족도’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밝혔다.
부부간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를 느끼는 열정은 2~3년 만에 사라져
남편이나 아내 모두 결혼 후 2~3년이 지나면 상대방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하게 하락하며 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초기에는 서로 열정을 가지고 대하기에 상대방이 뭘 해도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는 거죠. 말하자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요, 만지고 있어도 더 만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섹스를 하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하지만 그 열정이라는 것은 상당히 많은 에너지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실 오래 지속될 수가 없어요. 그 열정이 식어버리고 나면 서로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서로 만족해하며 행복하게 사는 부부는 열정을 친근감이라는 긍정적인 감성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결혼 초기나 젊었을 때는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런 열정이 식은 후 만족도가 가장 높은 유형은 친구처럼 지내는 부부를 꼽고 있다. 하다못해 연속극이라도 같이 보며 웃고 서로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대화를 많이 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실제 조사 결과 섹스를 자주 하는 부부나 그렇지 않은 부부나 서로에 대한 만족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근감의 형성에서는 결혼 전에 연인이라기보단 서로 친구처럼 편하고 스스럼 없이 사귀다가 결혼한 부부가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더 오랜 기간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만족도가 높은 편인데 우리나라 부부 중 47%가 이런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쪽이 상대방을, 혹은 두 사람 모두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결혼하게 된 경우가 23%를 차지했는데 이들 중 식어버린 열정의 공백을 친근감 형성으로 극복한 부부는 매우 만족스러운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또 다른 열정을 원하는 부부는 아주 불행한 관계로 전락하는 등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보다는 요모조모 조건을 따져서 결혼한 사람들의 경우 결혼 초기에는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열정을 이어가다 그 열정이 식으면 상대방에 대한 실망감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좀더 따져보고 더 좋은 조건을 가진 배우자를 만났어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늘 불만을 느끼고 결혼을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19%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사랑과 연민을 착각하거나 사랑의 감정보다는 자존심만 강한 사람들의 경우 열정이 식으면 상대방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왕자병’ ‘공주병’에 걸린 사람들이 대표적인 유형으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상대방에게 엄청난 헌신을 요구,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거나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런 경우가 11%로 나타났다.
“친근감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을 많이 제공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 속을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죠. 또 친근감을 형성하는 과정은 결혼 초기부터 만들어가야 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부부간에 손도 제대로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 10년 뒤에 잡는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어색해서 그렇게 못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