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다 한 목숨이다
어디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날 때 그것은 우주의 큰 생명력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찬바람에 낙엽이 뒹구는 것도 우주 생명력의 한 부분이 낙엽이 되어 뒹굴고 있는 것이다. 등잔이나 초에 불이 밝혀지는 것은 기름과 심지를 매개물로 해서, 우주 가운데 있는 불기운이 환하게 켜지고 있는 소식이다.
입으로 훅 불어서 불꽃을 끄면 그 불은 어디로 가는가. 다시 큰 불의 바다로 돌아간다. 이와 같이 모든 개체의 생명은 큰 생명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들이다. 경우에 따라 가지는 시들어도 그 생명의 뿌리는 결코 시드는 일이 없다. 생명의 뿌리는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삭막하고 살벌해져간다. 대낮에 살인과 약탈이 버젓이 자행되고, 폭력과 폭행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어느 하루도 평온하고 무사한 날이 없다. 요즘은 신문을 펼쳐들거나 방송을 듣기가 심히 두렵다. 어디서 무슨 끔찍한 일이 또 벌어졌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으로 같은 사람을 죽이다니 이 어찌된 노릇인가. 그것도 돈 몇푼을 털기 위해, 순간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렇다 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어린이나 노인을 가리지 않고 잔인 무도하게 마구 살해한다. 이러고도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통탄을 금할 길 없다. 이제는 사람이 같은 사람을 못 미더워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끼리 서로를 못 미더워하면 무엇이 사람을 믿을 것인가. 기껏 국민소득 5천 불(지금은 아님)의 문턱에서 우리가 사람의 구실을 못한다면, 무엇을 위한 경제발전이며 민주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치닫기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비인간적인 작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지(大地)의 질서를 굳게 믿으면서 갈고 뿌리고 가꾸고 거두면서 분수 밖의 일에 헛눈을 팔지 않았다.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둔다는 평범한 이 진리를 대지를 증거로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사람이 설자리와 도리를 몸에 익히게 되었다.
'땅에서 멀어질수록 병원과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신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두는 대지의 질서를 등지면 사람은 병들 수밖에 더 있겠는가. 오늘과 같은 비인간적인 작태는 오로지 우주 질서인 이 인과관계를 무시한 데서 온 질병이다.
땀 흘려 일하는 정당한 노력 없이 '한탕'으로써 사람이 제 길에 들어설 수 있단 말인가. 그건 허황된 망상이요 환상이다. 뿌리지도 가꾸지도 안았으면서 어떻게 열매만을 거두어들일 수 있겠는가.
세상일이란 거저 되는 일도 공것도 절대로 없다. 얼핏 눈앞의 단면만 가지고 보면 '거저'와 '공것'이 흔히 있을 것 같지만, 그 심층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거두는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그와 같이 된 일도 아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인 이 생명현상과 인과관계만은 엄연한 세계의 질서임을 명심해 두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같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무슨 자격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경우에 따라 생명의 겉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뀔 수 있지만, 생명 그 자체는 절대로 소멸되는 법이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생명은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인다면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몸은 물질로 화합된 유기체이므로 어떤 충격을 가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인 그 영혼은 무엇으로도 죽일 수 없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살해당한 쪽에서는 대항할 힘이 달려 그 몸을 버리지만, 언젠가 이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시퍼런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원한이 이 윤회의 사슬이 되어 서로가 앙갚음을 되풀이하면서 세세생생(世世生生)토록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 어떤 종교의 이론이기 이전에 살고자 하는 모든 생명의 원리이다.
우리들이 어두운 생각에 갇혀서 살면 우리들의 삶이 어두워진다.
나쁜 음식, 나쁜 약, 나쁜 공기, 나쁜 소리, 나쁜 생활 습관은 나쁜 피를 만든다. 나쁜 피는 또한 나쁜 세포와 나쁜 몸과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낳게 마련이다. 어떤 현상이든지 우리가 불러들이기 때문에 찾아온다.
우리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채식을 위주로 살다가 요즘에 와서 갑자기 육식 위주로 식생활이 바뀌면서부터, 그리고 지나치게 흥청망청 소비가 조장되면서부터 우리들의 행동이 말할 수 없이 조급해지고 거칠어지고 난폭해지고 살벌해졌다.
정부고 개인이고 우리 사회가 인간의 설 자리는 무시한 채 경제적인 욕구만 충족하려고 하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갈등과 불행이 더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도리는 접어둔 채 경제적으로만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때문에, 그 물질의 더미에 깔려 오늘과 같은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한 목숨이라는 우주 생명의 원리를 믿고 의지하라. 남을 해치는 일이 곧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유혹에서도 넘어짐이 없이 사람의 자리를 지키라. 사람 몸 받기 어렵다는데, 이 몸으로 사람 구실 못 한다면 이 다음 생에는 또 어디서 무엇이 되어 견디기 어려운 윤회의 고통을 받게 될지 알겠는가. 1990.
=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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