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겨울

문성식 2022. 5. 28. 08:08


        겨울 겨울은 우리 모두를 뿌리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날들을 잠재우고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절이다. 그동안 걸쳤던 얼마쯤의 허영과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분수와 속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며칠 전 밀어닥친 눈보라로 가지 끝에 매달린 잎새들이 죄다 지고 말았다. 나무들의 발치에 누워 있는 가랑잎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가지에서 떠난 잎들은 조금씩 삭아가면서 새봄의 기운으로 변신할 것이다. 때아닌 눈보라에 후줄근하게 서있던 파초를 베어내고 흙을 두둑이 덮어 주었다. 이제 내 뜰에서는 여름의 자취와 가을의 향기가 사라지고 텅 빈 자리에 찬 그늘이 내리고 있다. 말끔히 비질한 뜰에 찬 그늘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문득문득 계절의 무상감이 떠오른다.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무들은 빈 가지인 채로 서 있다. 떨쳐 버릴 것을 모두 떨쳐 버리고 덤덤하게 서 있는 나무들. 그것은 마치 세월에 부대끼고 풍상에 시달린 우리 모두의 주름진 얼굴만 같다. = 법정 스님의 봄여름 가을 겨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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