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2]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시절
5학년 마치고 5학년으로 입학 ... '낙제'한 셈
<사진설명>
1. 1993년 폐허가 된 경북 군위 옛집을 찾아가 유년시절의 추억에 잠긴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은 성유스티노 신학교(예비과) 입학 직전까지 이 집에서 신앙과 꿈을 키웠다.
2. 성유스티노 신학교(예비과) 시절의 소년 김수환(앞줄 가운데).
사제품을 1951년에 받았으니까 성직의 길로 들어선 지 올해로 53년째가 된다.
반세기 넘게 걸어온 성직자의 길. 하느님께서 부족한 나를 도구로 쓰시기 위해 넘칠 정도로 많은 영광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첫 걸음을 되돌아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스님들은 머리깎고 출가를 한다지만 난 '가출'을 해서 신부가 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군위에서 5학년을 마칠 무렵이었다. 난 곧 동한 형의 뒤를 따라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예비과)에 진학하기로 돼 있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볼 일이 있어 며칠 동안 대구에 가 계시는 바람에 달수(큰형) 형님하고 단 둘이 집에 있었다.
다른 애들은 밥먹고 학교에 가는데 달수 형님은 밥차려 줄 생각은 안하고 "밖에서 뭐 사먹고 학교에 가라"면서 5전인가 주었다. 그때 액자 뒤에 감춰둔 10전이 내 수중에 있었다. 그걸 합쳐서 주머니에 찔러넣고 대구까지 130리 길을 걸어갔다.
어차피 조만간 학교를 그만두고 대구로 옮길 테고, 어머니도 보고 싶고 해서 형한테 말 한마디 없이 길을 나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마차를 타고 대구에 다녀왔다. 혹시나 해서 마차와 마주칠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도중에 배가 고파서 5전을 내고 떡을 샀는데 그걸 다 먹지 못해 손에 들고 뚜벅뚜벅 길을 걸었다.
내 뒤에서 자동차가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다가오길래 차를 세웠다. 운전사한테 남은 10전을 내보이면서 "아저씨, 요만큼만 태워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대구에 가는 길인데 거기까지 태워달라고 하면 될 걸 고지식하게 10전어치만 태워달라고 했더니 운전사는 정말 10리쯤 가서 나를 내려주었다. 나나 운전사나 고지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또 걸었다. 아무튼 아침에 군위에서 출발해 해가 지기전에 대구 시내 누나 집에 도착했다. 뜬금없이 철부지 막내동생이 나타나자 누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엄마는 오늘 군위로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네가 왔냐"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대구에 간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이튿날 부리나케 누나 집으로 찾아오셨다. 그 바람에 군위로 돌아가지 않고 누나 집에서 한동안 머물다 곧장 소신학교에 들어갔다. 결국 어머니를 만나러 홀로 130리 길을 걸은 것이 신학교 가는 길이 되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는 초등학교 5, 6학년 과정이었다. 군위에서 5학년을 마치고 들어갔는데도 학교측에서 입학시험 성적이 형편없었던지 5학년 과정부터 밟으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낙제를 해서 5학년을 두 번 다닌 셈이다.
예비과 생활이라는 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것이었으니 그 어린 나이에 재미를 부칠 리가 없었다. 기숙사는 또 왜 그렇게 덥고, 추운지….
기숙사는 난방시설이 안 돼 있어서 겨울이면 잠자리에 드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솜옷을 껴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좀 따뜻해지면 일어나서 옷을 벗어놓고 자곤 했다. 옷을 껴 입은 채로 곯아 떨어지는 날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땀을 많이 흘려 이불이 흥건히 젖었다. 그걸 낮에 내다 널면 날씨가 추워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런 날 밤 얼음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건 더 고역이었다.
하루는 신학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1원짜리 동전을 갖고 꾀를 냈다. 어차피 내 의지로 들어온 신학교가 아닌데다 난생 처음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당시 우리는 규칙상 개인적으로 돈을 갖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돈은 모두 담당 신부님께 맡겨 놓아야지 만일 돈을 갖고 있다 들키면 집으로 쫓아보낸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다.
어느날 아침, 새로 갈아입은 윗도리 주머니에서 딱딱한 뭔가가 손에 잡혔다. 뜻밖에도 1원짜리 동전이었다. 난 '악마'가 시키는 대로 책상서랍을 열고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그 동전을 놓아두었다.
'오후쯤이면 호랑이 신부님이 불러서 당장 보따리 싸라고 호통을 치시겠지.'
생각만해도 신이 났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밥을 먹고 돌아와도, 밖에 나가 운동을 하고 돌아와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도 신부님이 부르질 않았다. 결국 그 동전을 학교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1원짜리 동전을 갖고 부린 잔꾀는 실패로 돌아갔다.
서울 동성상업학교 시절에는 꾀병을 부려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아서인지 공부에도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 발목을 놓아주지 않으신 걸 보면 성직자의 길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던 같다. <계속>
[평화신문, 제725호(2003년 5월 25일), 정리=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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