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믿음은 가슴에서 온다

문성식 2022. 3. 10. 12:17


      믿음은 가슴에서 온다 깨달음이 개인적인 체험이라면 닦음은 사회적인 의무와 나누어 가짐(廻向)으로 이어진다. 종교가 어느 문화현상보다는 값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되돌리고 나누어 가지는 대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와 후세까지 모범이 된 신앙인들은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꽃을 피우고 그 열매를 맺었다. 불교 경전에 수도자는 먼저 가난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가난하지 않고서는 보리심이나 어떤 진리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믿음은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슴에서 온다. 머리에서 오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머리는 늘 따지고 의심한다. 그러나 가슴은 받아들인다. 열린 가슴으로 믿을 때 그 믿음은 진실한 것이고 또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종교의 존재 이유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주는 데 있다. 그러한 통로를 열어주지 못한 종교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종교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인간을 자각시키는 일이다. 비인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 어떤 과학과 기술이라도 인간 회복과 생명 존중에 대한 종교의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종교적인 신조는 과학 용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대한 회답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시나 신화로 표현되어 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 종교라 해서 예외일 수 있겠는가. 어떤 종교든지 좋은 면이 있는가 하면, 그 그늘 아래 좋지 못한 면도 있게 마련이다. 종교도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마련한 여러 가지 문화현상 중의 하나다. 우리가 종교에 접근하려면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불교 등 부득이 종파적인 관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종파의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되면 드넓은 종교의 지평을 내다볼 시력을 잃는다. 집이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거룩한 교회와 큰절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상업주의와 허세에 물들지 않은 신앙인들인지 아닌지, 참으로 발심한 수행자들인지 아닌지에 따라 거룩한 교회나 큰절이 될 수 있다. 아니면 허울 좋은 장사꾼의 장터로 전락할 수도 있다. 모든 종교적인 집회에서 그 알맹이는 깨어 있는 맑은 혼이다. 이런 알맹이가 없는 교회와 절은 혼이 나가버린 시가 얼마짜리의 싸늘한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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